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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37

[모로코 메르주가] 사막, 여행, 나 서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마을의 끝 ‘메르주가’에 도착했을 때야, 나는 뜨거운 것을 직접 느껴봐야 뜨거운 맛을 아는 우둔한 사람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청춘을 넘어서니 이제야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그러니까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느꼈었는데. (아, 망할 놈의 이십 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사막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여름형 인간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낮 온도가 45도~50도까지 올라가는 메르주가에서 6일을 보낸다는 말에도 ‘그러시던지’라고 응답했다. 여기 와서 비로서 내가 알던 여름의 범위.. 2016. 11. 19.
[스페인 세비야] 몸의 움직임을 예술로, 플라멩코 몸치인 나는 체육시간과 운동회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수리영역 I 때문에 수능 점수를 말아먹었지만 달리기나 공놀이를 할 바에야 미적분을 푸는 것이 100배 더 좋았고, 엄마 뱃속에서부터 잘 움직이지 않는 태아로서 체육을 '디스'했을 거야, 라고 믿어왔다. 매년 국민학교 운동회 때마다 전교생이 학년별, 학급별로 100미터 달리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코피란 것이 좀 나봤으면 좋겠다고 빌었었다. 그러면 달리기에서 빠질 수 있을 테니까. 국민학교 6년 내내 나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늘 한참 뒤진 꼴등이었다. 뭐 어때, 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못 만나서였는지, 내 몸이 '찐따'같다고 느꼈고 그래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때 체육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그 (뚱뚱하지 않은) 몸으로 100미터를 25.. 2016. 11. 17.
[포르투갈 신트라] 찬물로 말갛게 씻은 듯한 기분이 드는 관광지 신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페나(pena)성과 무어(mouros)성. 저 멀리 산 위에 보이는 알록달록한 성이 바로 페나성 미키마우스의 귀처럼 산 위에 동그랗게 솟아있는 두 개의 성을 스쳐 지나 나는 다른 관광지를 갔다. 하나는 신트라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헤갈레이라 궁전(Quinta da Regaleira)’, 그리고 또 하나는 걸어서는 갈 수 없지만 (어차피 시티 버스 표 끊었다규!) 성 아시시 공동체가 살았다는 마을 ‘카푸초스(convent of the Capuchos)’. 사실 신트라에는 한적하게 수영하고 맛난 거 먹고 격하게 쉬러 왔다. 그런데 와 보니 한여름이고 나발이고 바닷물이 어찌나 찬지 현지인들도 바다는 놔두고 그 옆의 야외 수영장에서 노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야심 차.. 2016. 11. 12.
[캄보디아 씨엠립] 잔인한 세상의 잔혹한 이야기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목록 20위 안에는 들 것 같아서 나도 한번 감행해봤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 나를 못 믿으시는 부모님과 부모님과 취향이라고는 도통 맞지가 않는 나란 딸이 만나니 자유여행이 순탄할 리 없을 듯. 그래서 부모님 이기는 자식 없다며 (효녀 코스프레!) 난생 처음 패키지 투어를 택했다. 처음에는 패키지 투어가 내키지 않아 부모님께 자유여행을 권했으나 들려오는 것은 콧방귀뿐이었다. 아주 야무지시고 똑똑하시게도 패키지 투어 가격을 알아보신 후 도대체 자유여행은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프로그램은 뭔데, 이렇게 따지시는데 '내사마' 수가 있나. 나야 무료해서 죽을 만큼 카페서 죽치고 나서야 슬슬 관광지를 찾는 비효율적 여행자가 아니었던가. 물론 부모님 여행경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도 없다... 2016.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