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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어둠 속의 희망]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일러요. 인내심이라고는 한 줌의 방광 주머니보다 작았기에, 때때로 지하 3000미터 천연 암반수보다 더 깊이 절망했다. MB가 대통령이던 시절, 무슨 집회만 있으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날이 쨍쨍하다는 예보에 준비도 안 했는데, '호랑이 장가 가는 날'처럼 집회 장소에 비가 쏟아졌다. 저 건너의 하늘은 우리를 놀리듯 맑았다. 4대강 공사 반대한다고 남태령을 넘는 삼보일배 행진을 하는데 폭우가 쏟아져 아스팔트 고갯길에서 폭포수처럼 빗물이 쏟아져내렸다. 길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내 곁을 스쳐가는 자동차 바퀴에서도 계곡물처럼 빗물이 튀었으니, '하늘도 울고 나도 울고' 이런 시츄에이션이었다. 나도 서울 시장 돼서 내가 믿는 신에게 '서울을 봉헌'하면 MB님의 영롱한 '신빨'이 생길까. 그 시절 MB는 날씨마저 따라주는.. 더보기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부제는 '시선에 지친 우리의 이야기'이다.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사례를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시선에 지치지도 않는데, 그건 바로 스무살 무렵부터 『달빛 아래에서의 만찬』 같은 책들을 잔뜩 읽어서 그런 거라고. 페미니즘이 아니었다면 적금을 깨서 필러 시술을 받고 값비싼 안티 에이징 화장품을 사는 중년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네 자체로 아름답다'가 아니라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네가 살고 싶은 데로 살아도 충분히 살 만하다는 사실이었다. '네 자체로 아름답다'는 광고들은 멋지다. 성차별적인 이미지로 여성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광고들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더보기
디즈 이즈 타이베이! 페미니즘 서점과 레즈비언 샵 처음에 갔을 때 대만은 일본과 태국을 절반씩 섞어놓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시끌벅적한 대로를 조금만 벗어나 있는 고즈넉한 동네가 흡사 일본의 골목길 같았고, '이런 것을 만들다니!' 싶은 아기자기한 팬시 제품이 일본만큼 많았고, 길거리 음식이 널려있는 야시장은 방콕을 닮았다. 서울과는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느낌이었다. 두 번째 타이베이에 갔을 때, 이 나라에 살아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일본과 태국의 경우 살고 싶지는 않다. 타이베이에는 그 도시를 지배하는 오래된 건물들의 군상처럼 착 가라앉은 공기가 떠다닌다. '가라앉았다'는 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우중충하거나 우울한 느낌이 아니라, 단정하고 소박한 댄디함이랄까. 애써 뽐내거나 내세우지 않은, 참빗으로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무채색.. 더보기
그녀의 책을 읽을 시간이 기다려진다, 리베카 솔닛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의 부제는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다. 그렇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이 부제보다 더이상 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가 페미니즘, 문학, 예술, 평화, 환경에 대해 쓴 글들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삶, 홀로 일어서는 삶, 그리고 그 '홀로'를 넘어, 타인이라는 '넘사벽'을 넘어, 자기 연민을 넘어, 다른 생명의 고통에 가닿으려 노력하는 연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초여름에 우에노 치즈코 강의가 열렸던 서울여성가족재단의 팀장께서 다음에는 누구를 초대할까, 하길래 주저 없이 대답했었다. "리베카 솔닛이요!" 나처럼 생각하는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다음이 되기도 전에 리베카 솔닛이 내한했다. 아쉽게도 그 주말에 일이 있어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 더보기
사랑은 사치일까? 사랑은 사치일까: 여유 없는 일상에서 자꾸만 감정이 생기는 당신에게 벨 훅스 저, 양지하 역 언젠가부터 사랑이니, 섹스니, 잠자리니, 남자니, 감정이니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종합 비타민제니, 오메가 쓰리니, 목 디스크니, 도수치료니 이런 이야기를 한다. (플러스: "걔네는 도대체 왜 그러니?"라는 어린 것들 뒷다마 까는 꼰대 대화) 슬쩍 동향을 보니 나보다 한 연배 위인 386 세대는 믿고 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요양원 정보가 대화의 중심. 이미 충만한 관계에 안착한 사람은 바로 그래서, 이미 속을 파헤쳐놓는 사랑의 상처에 지긋지긋하게 데인 사람은 바로 그렇기에, 젊지 않은 우리는 더 이상 사랑 이야기를 안 한다. 벨 훅스의 사랑에 대한 페미니즘 책을 이토록 늦게 집은 든 까닭이다. 벨.. 더보기
[외모?왜뭐!] '문제는 마네킹이야' 무대 뒤 풍경 저번 주 주말 실태조사 결과 정리하고 보도자료 작성하니라, 살이 마르는 줄 알았다. 의류 사이즈 실태조사 1차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기자회견 날짜는 이미 잡혔고, 실제 인체를 본따 만드는 '커스텀 마네킹'은 해외 동영상을 봤을 뿐, 우리가 실제로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는 월요일에 가서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도자료 쓰랴, 기자회견용 피켓과 플랑 만들라, 인포그래픽 자료 만들라, 커스텀 마네킹 걱정하랴, 실로 직장인 10년차 인생 10년 만에 처음으로 밥 먹을 시간을 쪼개가며 일했다는 거 아닌감. 31개 의류 브랜드 사이즈 실태조사 결과가 담긴 보도자료 읽기 20170726 문제는마네킹이야 기자회견 보도자료 from 여성환경연대 마네킹 업체에 키 178센치에 허리 24인치의 일반 마네킹이 아닌, .. 더보기
나를 변화시킨 공부, 페미니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인터넷 책방 ‘알라딘’의 메일링을 받아본다. 근 2년간 이곳에 소개된 페미니즘 신간이 그 2년을 뺀 모든 시간 동안 올라온 페미니즘 책보다 많은 듯하다. 최근 나온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며 이 언니들이 이렇게 할 말이 많고 이렇게 지축을 흔드는 멋진 사유를 해왔는데, 지금껏 기회가 없어 제 안에서만 삭혀오다 이제야 꺼내놓는구나 하는 감상에 젖었다. 초여름, 빛이 사위어가는 저녁, 수박은 이르고 시원한 참외가 땡기는 계절, 바람은 살랑살랑, 그리고 페미니즘 책들. 그 중에서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가 좋았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저자만 살펴봐도 안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두말할 필요 없는 정희진 선생이 엮었다. 일본에 ‘우에노 치즈코 따위 무섭지 않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더보기
젠더 트러블, 인정 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다 어제 ‘두산아트센터’ 인문학 강연 이현재 선생님 강의 ‘젠더 트러블, 인정 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보다’에 다녀왔다. 1시간 반 강연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에 “아이고, 내가 왜 이러나?”라며 이현재 샘이 눈물을 닦으셨는데, 덩달아 울컥했다. 선생님이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여성들에게조차 외면당했던 페미니즘이 근 2년간 ‘리부트’되었고, ‘두산아트센터’에서 강연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러링에 있어서는 한국이 독보적인 수준으로 ‘행동력’을 보였으니 이제 페미니즘을 배우려면 해외가 아니라 한국으로 와야 할 거다, 라는 자긍심(?). 그러니까 내 눈물은 끊어질 듯 근근이 명맥을 이어 온, 페미니즘을 공부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시니어 페미’들에 대한 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