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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모로코 메르주가] 사막, 여행, 나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1. 19.





서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마을의 끝 메르주가에 도착했을 때야, 나는 뜨거운 것을 직접 느껴봐야 뜨거운 맛을 아는 우둔한 사람임을 새삼 알게 되었다. 청춘을 넘어서니 이제야 내가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그러니까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것을 어느 정도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 느꼈었는데. (아, 망할 놈의 이십 대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니었다. 착각이었다


사막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여름형 인간이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한낮 온도가 45~50도까지 올라가는 메르주가에서 6일을 보낸다는 말에도 그러시던지라고 응답했다. 여기 와서 비로서 내가 알던 여름의 범위가 갱신되었다. 그저 숨을 들이쉰 것만으로도 허파 폐포 꽈리의 습기를 모조리 말려버릴 듯한 공기에 압도당했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한낮에 노트북을 켜면 말 그대로 기계가 타버릴 것만 같다. 쿨러가 없는 나는 노트북 케이스를 물에 적시고 꽉 짠 다음 물기 서린 케이스를 노트북 아래에 놓고 글을 쓴다. 불에 타 버리는 것보다는 천천히 습기에 잠식당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것도 이십 분에 한 번씩은 다시 물에 적셔 줘야 축축한 기운을 유지한다.) 그리고 홀딱 벗고 앉아 글을 쓰다가 정 못 견디겠다 싶을 때 30초간 물 샤워를 한 후 물기 한 방울 닦지 않고 마르게 놔둔다. 피부에 얹혀있던 물방울은 죄다 1분 안에 기화한다.



모로코적인 풍경 (마라케시 부띠끄 호텔 '리아드' 내부)

오직 시각으로만 접하는 사진으로는, 아름답다. 

타일마저도 아, 뜨거! 

노트북 케이스를 물에 적신 후 그 위에 노트북을 두고 쓴다.  노트북이 타 버릴 거 같아!


아마도 나는 하루키가 말한 소설가유형의 사람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못 써도 유형이 그렇다는 거

하루키는 사물과 사건을 단박에 이해하는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 나서서 해볼 때까지는 파악을 못 하는 사람, 오히려 해보고 나니 더욱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바로 소설가 유형이라고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스스로를 파악 못 하고 있다가 사막에 와서야 여름을 좋아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피부 위 물방울이 기화되는 순간만 잠시 살 것 같다. 이런 극한의 기온에서 사람이 어떻게 사나 생각하며 어질어질하다가, 결국 얼음이 들어있는 시원한 물 한 잔을 마신다. 현지인들이 마시는 뜨거운 민트 차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현지인들은 뜨거운 민트차를 마신다.

숙소 루프탑 너머로 언뜻 보이는 주황색 거시기가, 바로 사막.



여행이란 모르고 있던 자기를 발견해 가는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 아닐까

오직 자신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해서우리는 여행이란 낭만 아래 돈을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첫 장면이 그려지는 사막 언저리 마을의 황량한 분위기 속에서 하릴없이 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데미안>>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소명은 오직 한 가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이 사막을 겪고 나면 나는 조금이나마 나 자신에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