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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 book78

결혼하는 친구의 혼수선물로 찔러주고픈 <<풀잎은 노래한다>> 유명한 작가들, 특히 상 좀 탔다는 작가들 책은 젠체하기 위해 어거지로 끝까지 읽은 적이 많다. 들춰본 볼라뇨의 책을 통털어 '후장사실주의자'라는 말만 좋았고, 대학 교양수업시간에 레포트까지 써 낸 마르케스의 은 내 머릿속에 마법적 리얼리즘이 들어찼는지 주인공 구분이 안 되고, 필립 로스의 책은... 이렇게 막 나가는 (자기가 하고 싶은) 성적 판타지를 써대기만 해도 대가라 불리는군, 싶어 맥이 풀렸다. 배낭여행 때 도미토리에서 마주치는 좀 지적이고 견문 넓은 외쿡의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을 들먹이는 통에, 17분씩 끊어서 일주일 (주 5일 기준!)에 걸쳐 숙제하듯 봤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그러니까 유수의 문학상을 타거나 세계문학전집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내게 문학판 이었던 셈. 를 끊.. 2016. 2. 13.
응답하라 1988, 라일락 붉게 피던 집, 그리고 응답하는 텍스트 연말연초의 기나긴 휴가 동안 불효자가 되기로 작심한듯, 그리고 스스로에게 동면을 허하듯 고향 집에도 가지 않고 서울 집과 동네에 콕 처박혀 있었다. 영 심심해서 좀이 날 것 같아 이제 직장이라도 나가볼까, 이런 마음이 들기를 고대하며. 그 마음을 깨 버린 것은 '응답하라 1988'과 '섹스앤더시티'였다. 봐도봐도 또 재미지는, 이제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섹스앤더시티'와 '응답하라' 시리즈. 니들이 있는데 내가 어찌 직장이 그리우랴. 암, 여전히 휴가가 고픈 것은 다 니들 탓이다. 아아, 봉블리~ '응쌍팔'의 추억 돋는 동네와 가족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공익광고처럼 건전했고,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드라마를 만든 팔 할이 '가족 감성팔이'였다. 작정하고 가족과 동네를 호출하는 것 .. 2016. 1. 6.
헬조선, 세대론 그리고 철학자와 하녀 어느 순간 내가 이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라고 쓰고 '힐난조'라고 읽는다) 내뱉고 있음을 발견했다. "요새 젊은 것들은 말이야" 비록 망원시장에서 장 볼 때 '아줌마'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 나이에 도달했지만 (그리고 곧 그 가게는 내 외면을 받게 된다.) 그래도 셀프 '꼰대'가 되기를 자처하다니. 몇 년 전만 해도 시청 광장 앞에서 '무상급식' 찬성 서명에 이름을 적어넣다가 "어머니, 잘 생각하신 거에요."라는 멘트에 무상급식이고 나발이고, 진보고 정치적 올바름이고 뭐고, 걍 서명 용지 쫙쫙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빡쳤었는데 (중년여성을 모두 어머니라고 칭하는 이 느자구 없음이란), 나 스스로 나이 든 세대의 전매특허 '요새 것들'로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렇게 운운하는 자체가 꼰대가 되는 지름길임이라는.. 2016. 1. 1.
[화씨 451] 우리 손에 책이 쥐어져 있는 시대 책이 없다면, 마음이 망부석이 될거야 『신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식도암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자신을 낯설어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건강한 시절 청력과 시력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고 말이다. 우선은 '건강한 일반인'의 나라에 속해 있는 나 역시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아예 아웃 오브 안중이었지만, 불의의 사고나 노화로 시력을 잃게 된다면 그 컴컴한 시절을 어떻게 견뎌 나가야 할지 혼자 비극에 빠져들던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소파나 침대 위에서 기다리는 와중에, 커피를 쪼르르 내려 책 읽을 채비를 하는 순간을 가장 애정애정한다. 그런데 만약 그런 순간들을 인생에서 탈각시켜야 한다면. 이.. 2015.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