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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세대론 그리고 철학자와 하녀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 1.

어느 순간 내가 이런 말들을 습관적으로 (라고 쓰고 '힐난조'라고 읽는다) 내뱉고 있음을 발견했다. 

"요새 젊은 것들은 말이야" 


비록 망원시장에서 장 볼 때 '아줌마'라는 소리를 가끔 듣는 나이에 도달했지만 (그리고 곧 그 가게는 내 외면을 받게 된다.) 그래도 셀프 '꼰대'가 되기를 자처하다니. 몇 년 전만 해도 시청 광장 앞에서 '무상급식' 찬성 서명에 이름을 적어넣다가 "어머니, 잘 생각하신 거에요."라는 멘트에 무상급식이고 나발이고, 진보고 정치적 올바름이고 뭐고, 걍 서명 용지 쫙쫙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빡쳤었는데 (중년여성을 모두 어머니라고 칭하는 이 느자구 없음이란), 나 스스로 나이 든 세대의 전매특허 '요새 것들'로 입맛을 다시고 있다. 그렇게 운운하는 자체가 꼰대가 되는 지름길임이라는 것도 책을 읽은 뒤에야 따끔하게 깨달았다.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란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이른바 사회운동이 왕성하게 전개되던 시기에는 대학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때의 학생들이 요즘 학생들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요즘 학생들은 틀에 박혀서, 뭐랄까 관리의 후예들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55쪽 


여기서 사회운동이 왕성하게 전개되던 시기는 1931~1932년 사이를 말한다. 그러니 '관리의 후예들'같다는 '젊은이들'은 우리 세대에게는 가요무대를 시청하시는 원로급 세대 쯤 되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이다지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똑같단 말인가. 내 입에서도 만국공통의 멘트가 술술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윗 문장의 고풍적인 단어들만 교양머리 없는 단어로 바꿔주면 된다. 젊은이 비판론은 젊음을 한 줌씩 잃어가는 자들이 어쩔 수 없이 앓는 환지통 같은 것일까. 





그럼에도 현실에서 접하는 '젊은이들'을 참아내는데 막대한 에너지가 든다. 솔까말, 요새 하는 업무 중 제일 힘들다. 헬조선의 시츄에이션도 알겠고, 20대의 흔들리는 방황도 이해가 가고, 나도 저렇게 찌질하고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되는 젊은 시절을 그런 줄도 모른 채 뻔뻔하게 건너왔지만, 어릴 때부터 '헬조선'이 거푸집처럼 주조해버린 듯한 인성을 보며, 입 속에서 터지는 절망을 되뇌게 되는 것이다. '헬조선'에서 탈출할 구석이 없겠구나, 타인이 타인에게 지옥이라는 것을 이토록 잘 알게 해주다니. 


어쩜 그리 깍쟁이들처럼 평소에는 교양 있고 챙겨주는 척 하지만 정작 자기 품을 내놓아야 할 때는 쏙 빠지는지, 머리와 입으로 수많은 걱정과 비판과 시뮬레이션만 하다가 결국 번아웃된 상태로 아무 것도 안 하려 하는지, 그리고 헬조선과 사람을 키워내지 않고 부속품으로 보는 조직과 사회를 원망하며 자신연민에 눈물을 흘리는지. 극우파이든, 진보적이든 이번 세대의 공통적 정서는 ‘일베’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즉 남의 불행보다 더 극심한 자신의 불행을 경쟁적으로 전시하는 것. 다만 ‘일베’는 그 정서를 ‘복수는 나의 것’으로 삼아 야비하게 실천하지만, 나머지 청년들은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적으로 곪아간다.

 

새해가 왔고 나는 한 살을 더 먹었다. 친구와 만나 “요새 젊은 애들은 말이야”라고 말하려다, 이렇게 계속 ‘젊은 것’들 운운하다가는 진짜로 늙어버릴까 봐 무서워졌다. 정수리에서 앞머리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흰머리, 발톱 주변에 알알이 들어찬 죽은 세포들의 무덤인 각질, 근육이 굳어버려서 어쩔 수 없이 아침마다 해줘야 하는 스트레칭. 쇠해가는 육체에 저항하는 심정으로 ‘젊은 것’들이라고 싸잡아 명명하지도, 섣불리 판단하지도 않기로 한다. 


새해 다짐을 해본다. 한참 욕을 해대다가 이 무슨 ‘급 정색 정신 수양’이란 말인가. 뭐, 노답이니까. ‘헬조선’에서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낙관할 근거도 없으니, 스스로 ‘타인은 지독한 지옥’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단도리 할 수밖에. 나에게 지옥처럼 여겨지는 ‘젊은 사람들’에게 나 역시 지옥처럼 굴었을 것이었다.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를 꺼내 읽었다. 그가 풀이해 놓은 철학이 나의 새해 다짐에 필요했다. “천국에는 철학이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 (20쪽)


그렇다면 지옥에서 좋은 삶을 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포리즘이 현현한 이 책에는 나름의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었다.

“‘있어줌.’ 이 말에서는 ‘있음’과 ‘줌’, 다시 말해 ‘존재’와 ‘선물’이 일치한다. 독일어에서는 ‘무엇이 있다’는 말을 ‘Es gibt~’라고 한다. 여기서 ‘gibt’라는 동사는 ‘주다’는 뜻의 ‘geben’에서 온 말이다. 그러니 ‘있음’이 좀 ‘줌’이다. 존재가 선물이라는 말이다.” (25쪽) 


먼저 판단하지 않고, 섣불리 미워하지 않고, 내처 냉소하지 않기, 그리고 존재가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용을 쓰는 삶을 떠올렸다. ‘헬조선’의 혐오에 대처하는 방법은 서로가 서로에게 환대와 선물을 내어주는 것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더 많이 감당해야 할 세대는 환대와 선물을 내리사랑으로 받아온 윗 세대이다. 이런 지점에 섰을 때에야 ‘세대론’은 쓸모를 발휘한다.

 

마지막으로 <<철학자와 하녀>>에서 발견한 함석헌 선생의 어록으로 ‘젊은이’ 운운했던 과거를 정리하고자 한다. “잘못을 좀 잊읍시다. 양심이 둔해져서가 아니라, 날카로우면서도 잊는 겁니다.” (121쪽) 내가 그들을 대했던 태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들이 보였던 행동에 대해서도 말이다.

 

2016년 새해 첫날, 나는 나이 든 세대의 반열에 서서 ‘꼰대’같은 글을 쓴다. ‘꼰대’로 늙어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헬조선을 생존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