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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2012년 새해 아침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1. 1.
일년 전 태국에서 교통사고가 나 왼쪽 다리에 심은 철심 제거술을 받았다.
철심을 받은 수술보다 더 하랴, 싶었지만,
남들은 철심 제거술을 받고 지발로 걸어서 퇴원한다고 하건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미 누군가에게 인심좋게 건넨  목발을 다시 샀고 그 목발로도 부족해
엉덩이와 무릎으로 기어다녔다.
친구들은 인간의 진화를 거슬러 올라가 네발 다리 짐승을 보는 듯하다고 그랬다.
인간-> 호모 에렉투스 -> 뭐드라, 뭐드라 암튼 뭐시기들의 과정 ->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쯤

소설가 고 박완서 씨가 그랬다.
언젠가 전화받다가 팔을 잘못 짚어서 한 쪽 팔에 기부스를 하게 되었는데
글쎄, 한 쪽 팔을 쓰지 못하니까 전체적으로 몸의 균형이 안 맞아서
한 달 동안 꼼짝없이 집 안에서 지냈다고 말이다.
왼쪽 다리를 다시 쉴 수 밖에 없어 집 안에 꼭 들어박힌 지금,
그 심정이 구구절절 이해가 되었다.
몸의 존엄을 온 몸으로 체감하는 기분 말이다.
마취에 깨어날 때 내 눈꺼풀이 움직인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처럼
아픈 다리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민감하게 포착되었다.
내 몸인데도 마치 이식된 다리가 기게장치를 통해서 작동하는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그 움직임이 감지된다.
'몸에 갇힌 사람들'이 된 듯하다.

무통주사는 의료보험이 되지 않았다.
설마 철심 빼는 수술인데, 사고난지 일년이나 지났는데 뭐 얼마나 아플까 싶어
무통주사를 보류해 놨건만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살을 째는 메스가 아직도 다리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여
마취에 깨자마자 무통주사요, 무통주사, 라고 외쳤다.
수술 후 2일 내에 맞는 무통주사는 의료보험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옆 방 환자 중 한 명이 무통주사를 못 맞고 밤새 끙끙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참 부당했다.
고통에 끙끙 앓는 하룻밤이 천년만년 같았을 것이다.

네 발로 기어 올라와 5층에 위치한 집에 왔는데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말과 연시를 함께 보낼 친구들,
주발, 기묘, 씨앗, 깡, 그래, 양갱.
올해 연말에는 생협 재료로 소박하고 따순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지는 않았지만
중국집 배달 음식이라도 좋아, 함께 할 수 있다면.

친구들의 온기는 마음의 무통주사 같다.
뼈가 으스러지고 살갗이 째지는 마음의 상처도
마음의 무통주사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견딜 수 있다. 
게댜가 보험 적용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관계 자체가 삶의 보험이니까.

farewell 2011
연말이 조용히 지나간다.
연초의 결심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부터 이주 후, 실밥을 뽑으니까.
그렇듯, 시간이 가면 상처는 낫는다.
그러니까, 괜찮아.

입원실을 떠나 집에 도착했을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 나온 짐 모리슨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너의 소울 키친에서 하룻밤 재워줘,
 그 아늑한 스토브로 따스하게 만들어줘" (p122)

친구들과 함께 연말 카운트다운하는 오늘 밤,
집은 소울 키친 같았고 친구들은 아늑한 스토브 같았다.


 
씨앗(=안동처녀보살)이 봐준 2012년 운세 타로 중 내 카드
정의의 여신처럼 여러가지 선택지 중 신중하게 판단을 잘 해야하는 2012년이랍니다.
안동 처녀보살은 곧 결혼을 통해 안동 유부보살로 변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