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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 2.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슈페판 볼만, 조이한 · 김정근 옮김 (2012), 웅진지식하우스

 

책에 대한 주옥 같은 어록들과 책 읽는 여자들에 대한 매혹적인 그림으로 단디눈호강 시키는 책

이 책을 이렇게 늦게야 발견하다니.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는 질문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에서 책을 통해 자의식을 구축하고 명박산성처럼 책산성을 쌓아 올려 '오로지 홀로'의 세상에 접신한 그녀들의 모습은 도발적이고도 아름답다. 나 역시 이제 막 문을 열고 있던 스몰커피에 첫 번째로 당도해 커피를 홀짝이며 이 위험한 책을 단숨에 읽었다. 그 순간만큼은 스몰커피의 공기가 둘로 나뉘지 않았을까. 책과 나 사이의 스몰한 세계와 그 바깥 스몰커피의 세계.

 

책은 불행한 사람에게는 나무랄 데 없는 상냥한 벗이다. 인생을 즐기도록 해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인생을 견디도록 해준다.” 올리버 골드 스미스

 

긴 하루 끝에 좋은 책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그날은 더 행복해진다.” 캐슬린 노리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최후의 심판 날의 동이 트고, 위대한 정복자와 법률학자가 자신들에게 주어질 보상을 받기 위해서 올 때 전능하신 신께서 우리가 팔에 책을 끼고서 걸어가는 것을 보시게 되면, 그때 그분은 베드로 쪽으로 몸을 돌려 질투심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는 하기 힘든 어조로 말씀하실 것이다.보아라, 이들은 더 이상 어떤 보상도 필요하지 않아. 이곳 천국에서는 그들에게 어떤 것도 줄 수 없어. 그들은 책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버지니아 울프, 엘케 하이덴라이히(261) 재인용

 

중세시대에 마녀와 함께 불태워진 책 이야기를 읽을 때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한 대사를 떠올렸다.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안락과 자기 위안에 머물지 않는 책,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이 넘나들며 여러 번 곱씹게 하는 책, 그리하여 삶을 조금씩 바꾸고 나 자신을 확장시키도록 유혹하는 위험한 책들.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한밤은 보들레르의 표현대로 하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 뿐인 시간이다. 나는 그 한밤에 책과 함께 누워서 숱한 이야기를 나눈다.” 정혜윤 (11)


오늘 밤, 나는 어떤 책과 함께 누워서 숱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나. 이제 그만 카페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시간이 있을까. 

팔머, 그물침대에서 보내는 오후, 1882년


하녀의 오롯한 시간, 책을 읽는 동안 만큼은 하녀나 여주인이나 평등한 세계에 산다. 

피터 얀센스 엘링가, 책 읽는 여인, 1668년/70년 


책 내용이 이국적이었던 걸까. 

장 에티엔 리오타르, 마담 아델라이드, 1753년

  

간절하게 책에서 손에서, 결국 심장으로 전해지는 울림

프란츠 아이블, 독서하는 처녀, 1850년


성스러운 책 읽기의 순간

구스타프 아돌프 헤니히, 독서하는 소녀, 1828년


고양이처럼 느른하게 책을 쥐고 누워서.

라몬 카사스 이 카르보, 무도회 이후, 1895년


당신이 그림을 그리든 말든, 기모노를 입히든 벗기든 난 책을 읽을 거임, 

그런데 '처녀'라고 부르지는 말아줄래? 

테오도르 루셀, 책 읽는 처녀, 1886/87년


왜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한지 그녀의 레이저 눈빛 광선으로 설명하는 듯

아, 이 책에 실린 그림 중 이 그림이 나는 제일 좋드라.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꿈, 1896년


정적인 고요의 공기로 둘러싸인 순간

페테르 일스테드, 책을 읽는 처녀가 있는 실내 풍경, 1908년 


'쩍벌'의 기개로 책을 읽으리. 

여자 작가가 그리면 쩍벌도 매력적이야.

가브리엘레 뮌터, 글 읽는 여자, 1927년 


인생의 하루 정도는 그녀 앞에 놓인 찻잔이 되고 싶다.

알렉산드르 알렉사드로비치 데이네카, 책을 들고 있는 여자, 1934년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그저 책을 붙들 뿐.

에드워드 호퍼, 호텔방, 1931년


존 레논과 오노 요코의 '베드 피스 bed peace' 이미지가 떠오르는 사진

진심 평화로운 침대 풍경이구나. 세상의 모든 아침이 날마다 이와 같기를. 

시어도어 밀러 (왼쪽에 찍힌 종군 사진 기자 '리 밀러'의 아버지), 리 밀러와 타냐 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