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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여자의 욕망을 알긴 알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 15.





욕망하는 여자_과학이 외면했던 섹스의 진실 (대니얼 버그너)

 

미운우리새끼를 본 적은 없지만 TV 평론가들의 글로 배워서, ‘아재+육아일기+가부장제+혼자서 산다를 버무려 놓은 방송으로 알고 있다. 뜬금없이 『이기적 섹스』를 빌려달라며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도, 연말 모임도, 새해 덕담도 기승전건강이 된 내 삶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나의 X-룸메 씨앗이 며칠 전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 미우새? 허지웅이랑 김건모 등등 나오는 거. 거기서 요즘 허지웅이 성욕 없다고 남성호르몬 검사하러 가는 장면이 나와. 검사해보니 허지웅 남성호르몬이 3인가? 이거 엄청 낮은데, 신동엽은 7인가 하거든. 이 병원 의사 소개해준 사람이 신동엽이라나 뭐라나. ㅋㅋ 암튼 허지웅이 이걸로 놀림감이 되거든, 타 프로그램에서도 이걸로 계속 다른 패널들한테 걱정을 위시한 놀림을 받구, 결국 가스냄새 싫어해서 가스렌지도 집에 없는 허지웅이 남성호르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햇반 생활 청산을 위해 가스렌지까지 집에 들여놔내가 짱 나는 거는 남자들은 정말 비공식 영역(성매매)와 공식영역(결혼제도, 방송) 등등 두루두루 참으로 성적자유를 누리는구나이런 거. 만약에 강수지가 제가 요즘 성욕이 없어서 이러면서 호르몬 수치를 검사했는데… 3 나오고 막 이러면 박나래가 아, 나는 7인데, 호르몬 수치 폭발인데이러는 방송이 상상이 가심?" 


아니! 부모님과 밥상 머리에서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하필 물고 빠는 장면이 뜬 것처럼 당황스러울 거 같다. 강수지와 박나래 님이 성욕 어쩌고 저쩌고 이러면서 병원 찾아가면 부모님 눈치 보니라 밥 체할 듯 -_- (혼자서 절대 본방 사수하고파…)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더욱 이갈리아의 딸들 버전의 언니쓰 성욕방송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남성의 성욕은 아프리카 초원서 사자가 가젤을 사냥하는 것마냥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반면 여성의 주체적인 성욕은 선정적으로 취급되는 사회니까 말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이런 반박이 들리는 듯하다. “남자들은 아랫도리 불끈불끈하는 동물적 존재잖아, 남자들은 원래 여자들보다 성욕이 강하잖아, 여자들 성욕은 남자들과 달리 원나잇 말고 정서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타오르잖아등등. 남자들 성욕은 뼈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니까 사회적으로 남자들 성욕은 인정해야지 어쩌겠어 쯤의 상식’적 언사들. , 이 책은 과학적 연구결과와 통계 수치로 무장하고서 여성의 성욕에 대한 그간의 상식을 깨부순다. 과연 니들이 욕망하는 여자를 알긴 알어?


에로스를 말할 때 남자는 동물이다라는 말은 마치 심리학적 근거가 있는 정설처럼 통한다. 사회라는 틀 안에서 길들여졌다지만 남자(라는 동물)들은 대부분 경계를 오락가락한다. … 가령 남자의 정신은 뇌의 가장 말단의 진화가 덜 된 신경 부위에 여자보다 쉽게 지배 당하다든가, 특정한 신체 부위를 눈으로 보기만 해도 부득불 아랫도리가 불끈거릴 수밖에 없도록 진화적으로 프로그램화되었다든가 하는 이론들이다. …그런데 왜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동물이라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을까?” 12


왜 성차에 따라 성욕의 발현이 이렇게나 다를까? 성욕에서만큼은 본성이냐, 양육이냐의 논쟁에서 본성이 우위를 차지한 듯 보인다.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동물이지만, 금성에서 온 포유류와 화성에서 온 파충류처럼 같은 동물임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이를 행동경제학의 게임이론처럼 세련된 용어로 설명한다. 가령 부모투자이론에 따르면 남성은 값싼 정자를 퍼뜨림으로써 유전자의 계승을 보장하고 확장하도록 프로그램화되었고, 여성은 좋은 유전자를 가졌음직하고 자신과 자녀에게 장기적으로 충실한 공급자가 될 만한 남성을 신중하게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투자 효율을 극대화하도록 짜여 있는 대본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62~63) 그래서 남자들은 계속 싸지르는행동 패턴을 보이고, 여자들은 그들을 잡아두기 위해 동물 종 중 유일하게 외적으로 발정기가 드러나지 않도록 진화했다. 대중가요는 이를 시적으로 응축한 가사를 유포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책에서 소개되는 성과학자들은 영화 고스터바스터즈에서나 나올 법한 최첨단 기계들로 여성의 성욕을 파헤친다. 귀신도 잡을 법한 최신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은 몸과 마음이 똑같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섹스 장면과 자연경관을 보여주는 실험에서 동물적인 남성들은 보노보의 교미 사진에 성욕이 사그라진 반면, 여성들은 흥분을 느낀다질 내 혈류량을 측정한 수치는 그녀들의 흥분을 증명하지만, 이성으로 답하는 설문조사는 이를 부정한다. 비슷한 사례로 여성들은 남성과 달리 낯선 사람에게서 거의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하지만, 혈류측정기는 여성들의 성적 이상형이 바로 낯선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남성들의 이상형은 새로운 여자고, 여성들의 이상형은 돈 많은 남자라는 낭설은 틀렸다. 그렇게 말해지고 그렇게 믿어지고 그렇게 따르도록 만드는 사회적 기제가 있을 뿐이다. 혈류측정기는 여성들이 원하는 이상형 역시 낯선 사람임을 보여준다. “오랜 연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설령 꿈에 그리던 완벽한 외모의 연인일지라도 낯선 남자나 여자에게는 비할 적수가 못 되었다. 낯선 사람과의 섹스는 거의 폭풍 수준으로 질 내 혈류량을 증가시켰다.” (43


지은이가 이 모든 연구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여자들의 정신과 그들의 외음부가 하는 말 사이의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여자들은 자신의 성욕을 즉각적으로 점화시키는 수많은 기회를 의식적으로 폄하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것일까?” 30


사회의 관습과 의무 때문에 암컷 원숭이들조차 순순히 따라는 강렬한 욕망을 여성들은 너무 빈번하게 억누르고 심지어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 78


이 약(여성용 비아그라인 플리반세린) FDA에 제출할 때는 효과가 좋긴 하지만 너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키십시오. 약효가 너무 좋은 것이 플리반세린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이 약이 여자들을 색정증 환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적으로 공격적인 여자를 만들어낸다는 두려움 말입니다. 그러면 사회가 파괴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239


진화심리학의 부모투자이론은 반박의 여지가 없듯 보인다. 심지어 3분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스피드 데이팅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10,000명의 데이팅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까다롭고  승낙을 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한다. 그런데 두 명의 심리학자가 나타나 만약 진행자가 조건을 바꿔 여성분들은 자리를 옮기세요!’라고 외친다면, 그래서 여자들이 일어서서 성큼성큼 남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시험해본다. (259)


결과는 단도직입적이었다. 어쩌면 데이트의 시작을 주도하면서 신체적으로 스며든 어떤 기운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회적 구조는 직관과 결정과 에로스를 바꾸어 놓았다. … 여자들은 자리를 이동했을 때 남자들만큼이나 무차별적으로 수락한다는 대답을 많이 했다. 방을 종횡으로 가로질러 남자들에게 접근했을 때 여자들의 성욕은 그야말로 흘러 넘치고 있었다. 규칙을 바꾸자 앞에 느닷없이 새로운 현실이 펼쳐진 것이다.” (261)


여성의 성욕을 담백하고 솔직하고 과학적으로 풀어 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성적 판타지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이 마흔의 기승전건강도 좋지만, 밤마다 룸메들과 한 방에 모여 섹스 이야기를 하다 같이 잠들거나, 죽기 전에 오선생을 만날 수나 있을까, 라며 성불감증을 고민하던 이십 대가 아련하게 떠올랐다무엇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게가 덜 실린 여성의 성욕에 대한 관심이 반갑다고나 할까. 음란마귀를 마음에 탑재한 채 이기적인 섹스를 말하고 행하고 긍정하는, 동물적인 여자가 되어야지! 여성운동의 명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언제고 참이다.


, 그리고 이 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강간 판타지나 욕망의 대상으로 결박되는 나르시시즘의 오르가슴에 대해서도 까놓고 말한다. 물론 자신의 머리 속에서 언제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판타지와 실제로 신체 통제권을 박탈당한 채 위험에 처하는 실제의 강간은 하늘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