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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BT] 휴먼 사이언스 로맨틱 다큐멘터리, 여섯빛깔 무지개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 12.



게이들의 프렌즈, 20년차 동인녀(후죠시)로서 이반 용어와 문화에 관한 한 가족오락관같은 퀴즈를 풀어낼 자신이 있었다. 가령 끼와 비슷하지만 좀더 공격적이고 기가 센 것을 가리키는 단어는 무엇일까요?”라고 물으면 가장 먼저 부자를 누르고 기갈입니다.” 이렇게 답 할 요령이었다. “‘바텀을 가리키는 한글 용어는?” “마짜입니다.”, “‘일탈은 무엇의 줄임 말일까요?” “일반 스타일입니다.” 뭐, 이런 것들. 이런 퀴즈라면 슬럼독 밀리어네어쯤이야. ㅋㅋ 의 자신감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깨달음으로 변했다. 이 세계에는 내가 모르는 학습할 것이 무궁무진 넘쳐나는구나...


『여성 빛깔 무지개』는 힙한 문화 아이콘에 한국 LGBT의 무궁한 역사적 행로와 해외 게이 문화 코드를 버무리고, 그 사이사이 이성애자 여자들마저도 밑줄 짝 긋고 학습해야 할 게이 언니들의 연애 경험담이 교훈처럼 삽입되어 있다. 그뿐이랴. 성 소수자 차별의 싸늘한 현실에 맞불을 켜며 씩씩하게 성장해온 인권운동이 인간극장 식으로 펼쳐지며, 인터뷰 말미마다 이 땅의 청소년 성 소수자들을 위한 ‘파이팅’ 넘치는 격려가 이어진다. 애써 북돋는 모습이 아니어도 ‘지금, 여기’를 잘 살아가는 LGBT의 모습 자체가 파이팅이 된다. 서울시청 신청사 점거농성 때 레즈비언 딸을 위해 현장에서 지지 발언한 엄마 아빠의 목소리, 시골 노모의 칠순 잔치에 ‘끼순이’ 언니들이 몽땅 내려가 시골 양반들과 게이들이 어울린, 전국노래자랑 저리 가는 전대미문의 파티를 벌이고 그 대가로 큰형님께 영덕 대게 50만원어치를 얻어먹고 돌아온 이야기 등이 그렇다. 


실로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웨이’ 공연과 드래그퀸 쇼의 퍼포먼스와 차별금지법의 고갱이와 청소년 권장도서에 필적하는 문학적 교훈과 ‘대물바텀’부터 ‘익스-헤테로 레즈비언’까지 삼라만상 LGBT들의 군상을 한 큐에 보는, 참말 재미난 교양서가 아닌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이성애자 남자들과 보수 기독교 교인들의 필독서로 지정돼야 한다!!!


                   

주옥 같은 내용들을 공유하고 싶지만, 장장 600쪽에 육박하는 책에서 주옥 같은 부분이 400쪽이라 그저 읽어보시라고 권하는 수밖에. 다만 LGBT와 인권 운동가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성애자 여자들에게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게이 언니의 독설을 특별히 선정해 공개한다. 어쩜 내가 (이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의 순탄하고 행복한 연애 생활을 위해 해주고 싶었던 말과 이렇게 똑같지? 입 속의 혀 같네.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못할 수도 있음 ㄷ ㄷ ㄷ)    

                   


“PC(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스트 게이는 하나하나에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에, 그 분노의 근원이 뭔지를 알지 못하면 영원히 이 패턴이 반복됩니다. PC한 페미니스트 게이는 친구로 지내는 게 더 낫지, 애인으로서는 정말 엄청 피곤한 상대에요.” 43

-> 운동권 남자를 만나는 여자들 밑줄 쫙! 운동권이 무조건 연애상대로 꽝이라는 뜻이 아니라 (왜 이래, 내가 바로 마흔 넘은 운동권이야 ㅋㅋ), 그 사람의 분노의 근원은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해소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남자 친구하고는 인생의 큰 문제만 얘기하면 되고, 내가 뭘 원하는지 초기에 프로그래밍을 하면 되는 거예요. 남자는 로봇입니다. 프로그램을 빨리 학습하는 능력이 있느냐만 보면 돼요. 그리고 그걸 준수하는 인간성이 있는가공대는 남자는 숙지시켜 놓으면 합니다, 인풋 정보가 있고 프로그래밍이 되었으면 액션을 합니다. … 짜증내지 마세요. 알아서 해주길 바라고, 내 마음을 읽기를 바라는 건, 게이나 하는 거예요. 내 마음을 읽었으면 그건 무서운 상황입니다. 도망쳐야 해요. ‘스몰 토크(small talk)’는 게이 친구랑 하세요.” 77

-> 알아서 해주길 바라고 내 마음을 읽기를 바라는 건 게이나 하는 거예요, 이 부분에서 빵 터짐. 프로그래밍 하면 버그 일으키지 않고 고대로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남자인지를 볼 것. 요거이 바로 남자 고르는 눈 아니겠는가.


이성애자 여자 친구가 오빠, 나 이혼하면 어떡하지?”라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 뭐가 어때? 일곱 번까진 괜찮아. 일곱 번까진 친구들도 네 남편의 순서를 기억할 수 있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작아지지만 않으면 돼.”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여덟 번째부터는 사람들이 기억을 못 했어요. … 일곱 빛깔 무지개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일곱 단위까지는 기억을 할 수가 있어서, 결혼 일곱 번 괜찮습니다.”  88


임근준 님의 <련애박사의 고난이도 동성련애 108법칙>에서 따온 부분인데, 이런 말들은 귀에 인이 박히도록 일곱 번 이상 들어도 은혜로울 거 같다.     

이런 연애 실용서와 대비되는 진지한 구절들도 많은데, 한 구절을 소개하면 이렇다.


전해성 씨 얘기를 하면 대부분이 모르는 거예요. 전해성 씨를 모르는 레즈비언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저는 좀 의문이 들어요. … 역사라고 하는 건 자꾸 가시화하고, 기념하고, 반복을 해야 그게 역사이기 때문에 레즈비언 공동체 안에서도 초창기 레즈비언 운동에 기여한 선구자를 재조명하는 흐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288


엄청 건설적이고 반성적이며 미래를 준비하는 포스가 느껴지지 않은가. 나는 감동 먹고 말았다. (전해성을 찾아서 공부했다고!) 이러다가 한 순간 아래와 같은 단락에서는 빵 터지고 말았으니


제가 1990년대에 채식 레즈비언들을 주로 봐왔기 때문에 편견이 좀 있어요. 레즈비언=. … 주로 외국물을 드신 분들이 채식을 하고, 토종 레즈비언분들은 맨날 닭발이나 돼지 껍데기를 먹으러 가거나 하더라고요. 돼지 껍데기의 맛을 처음 저한테 가르쳐준 사람들은 다 불다이크 형님들입니다.” 29

-> 내 경험상 실로 순도 90%의 진실이 담겨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제야 이 책을 발견하다니 나는 바보바보바보

요즘처럼 추운 겨울날 따땃한 침대에 누워 노란 고구마 까먹는 듯한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덤으로 게이, 레즈비언 앱들과 게이 포르노의 한 획을 그은 감독 이름, 게이 문학, 게이 아이콘이 되는 연예인 등의 정보도 가득 담겨 있다. 게이 합창단 지보이스를 찍은 뮤지컬 다큐멘터리 영화 위켄즈와 함께 보면 시너지 효과 백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