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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2. 31.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


말 그대로다.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일하기가 부지불식간에 닥쳤다. 나는 이 고질병이 국내 시민단체를 뛰어넘어 미국 시민단체에서도 등장한 만국공통의 역병인지도 몰랐고, 세대나 리더십 분야인지도 몰랐다. 그저 마음 까놓고 만나는 친구들에게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하는 뒷다마를 까다가, 아니 내가 꼰대 짓 일삼는 중년이 돼부렀어!!! 하는 자각에 최신 가요 100을 스트리밍에 걸어놓고 아이돌을 학습했더랬다. 세상의 모든 어버이가 연습 없이 첫째 아이의 부모가 되듯, 나도 연습 없이 중간관리자가 되었다. 그 결과 준비되지 못한 자들이 으레 그렇듯, 나 역시 스스로를 괴롭혔고 다른 이들은 더욱 괴롭혔다. 그럼에도 구조적 차원-세대간의 갈등과 이로 인해 신뢰가 깨진 조직-을 보지 못했었다. 이 책에 실린 사례는 개인의 인성 문제도 아니고, 네 조직만의 문제도 아니야라는 위로를 건네준다. 나는 죽음 수용 5단계처럼 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을 오가던 중간관리자의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문제를 조망할 시야를 확보했다. 그리고 명절 연휴 마지막 날 꽉 찬 쓰레기 봉투 내다버리듯 치우고만 싶었던 내 세대-X세대-의 책임감과 리더십에 대해 쿨하게생각할 여지를 얻었다.


베테랑, 베이비붐, X세대, 밀레니엄 세대라는 4세대의 갈등이 나타나는 모양새가 어쩜 이리 판박이인지, 읽다가 이거슨 우리 단체가 아니라 미국 이야기였지, 하고 재확인했다. 다만 국내 시민단체의 경우 X세대에 속하는 1965~1973(?)년생이 베이비붐 세대와 활동방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아마 소규모의 젊은 국내 시민단체에서는 이미 X세대의 위층이 리더로서 조직을 끌어가기 때문이리라. 그들 중 많은 수가 조직에 개인의 사생활을 낮져밤져로 받쳐가며 지금을 만들어냈다.   


조직의 리더들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배웠고, 생각해보고 자시고 간에 좌우지간 리더를 떠맡게 됐기 때문에 지식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다(65)”. 하지만 몸이 아니라 시스템 속 매뉴얼에 따라 일을 배우고 싶은 후배들의 볼멘 얼굴을 앞에 한 채 빨간 펜으로 실무를 관리하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후원 인맥을 관리하고, 다음 날 새벽 댓바람에 조찬회의에 참석하고, (다들 바빠서 아침 7시 회의로 낙찰!) 그 날 저녁 집회에 나가 발언을 한다. 제일 많은 일을 하고 제일 무거운 책임감을 떠 안았건만 돌아오는 것은 책임 추궁과 비판과 불만이다. 어찌 안 지치고 버티랴. 소모되고 소진됐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는 활동가가 많지만, 소모도로만 따지만 이들의 만렙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당장 리더십 전환을 준비하고 후배들을 키우고는 물론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을지, 혹은 조직을 떠날지 등 자신을 위한 삶을 상상할 여력도 없다.

 

그런가 하면 “X세대는 베이비붐과 밀레니엄 세대의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다.(103) 그들은 의견수렴형위계 구조가 느리고 불투명하다며 분개했다. … 무엇보다 실무자의 의견을 경청해놓고 실제로는 반영하지 않는 긴 회의에 지쳤다고 한다.(174)” 이들은 개인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운동권 열정과 문화를 어느 정도 공유하는 세대다. 어찌어찌 조직에 남아있는 이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태는 리더가 되는 것이다.기존 리더들이 헌신적으로 조직을 세워 리더십 모델을 구축했지만, 의도치 않게 젊은 세대에게 비영리조직의 리더가 되면 개인의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고 느끼게 한 건 아이러니다. 현재 리더조차도 원치 않는 업무가 고스란히 대물림 된다면 젊은 세대가 리더를 맡으려 할 리 만무하다(186)”. 솔까말내가 조직을 그만둔다면 아마 리더 자리(사무국장, 사무처장) 무서워서인데, 조직에서는 중간관리자가 너 하나인데 당연한 거 가지고 왜 이래? 라는 암묵적 분위기라, 조직 내에서 터놓고 이야기를 못 했다. 당연한 수순인 것을 무책임하게 일을 떠맡지 않으려고 수작 부리는 사람이 될까 봐 부담스러웠고, 내 고민을 풀어내 설득할 언어를 찾지 못했었다. 이 책은 그 언어를 내게 선사했다. 우리 X세대의 과제는 리더 자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업무를 조율하고 실무 책임을 분산시키고(폭망해도 좋아 이런 멘탈을 우선 장착) 수평적 일의 구조를 만드는 것, 즉 리더십을 재정의하는 것이 아닐까.


프로그램 개발, 모금, 실무진 감독 또는 재무관리 업무 중 일부를 조직 내 다른 리더나 실무자에게 맡길 수 있다면 일의 능률이나 성과가 올라갈 것이다. 리더가 될 만한 재목의 리더십을 개발하고 결정권을 조직 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140)


내가 느낀 바 가장 젊은 밀레니엄 세대(과 일부 X세대)가 시민단체를 떠나는 백만 가지 이유 중 으뜸 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비영리단체는 경험 없는 실무자가 이바지할 만한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그들에게는 기초 업무를 익히면서도 자기 역량도 실험해볼 만한 업무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실무자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여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 선배 세대가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뿐 아니라, 변화를 이루는 일에 직접 참여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한두 해 지나 실망스러운 경험을 안고 떠난다(170)”.


현자스러운 상황 파악 문장만 봐도 이 책의 예지력에 감이 오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는 책의 장마다 딸려있는 토론 거리와 워크샵 과제들을 공을 들여 천천히 풀어나가면 어떨까 합니다. 말이 아니라 실천편이 중헌 것이죠.  


핵심 문제가 비슷하니 큰 틀의 답도 답정너지만 -미래의 리더 후보감을 지원하고 조직원의 자기 계발을 지원할 구조적 틀 마련 (학업 지원, 안식월 제공, 신입들의 등록금 대출금 탕감 등), 기존 리더의 역할과 책임 분담, 1인 이상 리더 세우기, 참여형 의사 결정 방식 활용하기, 사회적 기업가 정신 도입하기 등 리더십 전환, 기존 리더의 미래를 단체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기, 리더의 경우 스스로 재충전에 집중하고 정당한 보상 마련하기 등- 구체적으로는 단체별로 꽤 다른 답들이 나올 거다. 어쨌든, 우리 서로 건투를 빈다. 떠나는 자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어제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지금보다 더 좋은 조직을 만들고 싶다. 언젠가 떠나게 될 지라도.


2016년 마지막 날 아침에 이 포스트를 쓴다. 내년 다짐과 관련이 있으니까. 내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좋은 선배가 되는 거, 선후배를 떠나 모든 관계에서 타당한 이유가 생기기 전까지 신뢰를 거두지 않는 거. 그동안 다혈질이고 신경질적이고 급한 성격이라 상처를 준 많은 사람들에게 쏴리. 다음 구절을 책상 앞에 붙여놓아야겠다.      


신뢰는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 신뢰는 선배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종의 선물이며, 타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거두어야 한다. 이 접근법을 통해 신뢰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각 세대가 소통하고 차이에 대해 논의할 때에만 가능하다.” (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