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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1. 11. 8.



방콕행  비행기표를 끊은 다음, 이 책을 읽었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나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면
내년 설날 가 있을 곳은 나만의 '브로큰백 마운틴' 방콕이 아니라 아마 인도 남부였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오로빌 빌리지에 가고 싶어, 몸도 마음도 근질근질한 기분이었다.

현실에 발딛고 있지 않은 '영적'인 담론은 과잉이나 겉멋이 되기 쉬운 듯 보였다.
캘커타에 갔을 때 여행자가 여행 중에 며칠 정도 '봉사'하는 마더 테레사의 집은
스스로 여행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충만시키기 위한 건지, 아니면 '체험 삶의 현장'을 찍고 싶다는 건지
손발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어 차마 '봉사'할 맛이 나지 않았다.
인도는 가는 곳곳마다 삶의 풍경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쓰디쓴 가난의 비참함이 발에 채여
여행자의 자책감을 가중시켰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면서도 김선우 씨가 글을 썼다 할지라도 뭐, 손발만 오그라들겠지, 싶었다.
(제목도 좀 오그라들잖아요.)

그런데
50도 넘는 열기에 여름은 자국에서 보내고 기온 좋은 겨울에만 오로빌에서 사는 선진국 사람들도,
오로빌 내의 청소나 살림(세상에서 '허드렛일'이라고 치부되는 일)이 공동체 사람들이 아니라,
근처 타밀 인도인의 임노동으로 수행된다는 사실도 모르쇠 한 채,
그저 날 좋은 겨울 한철, 오로빌에서 지내고 싶어졌다.

책 속에 나온 오로빌의 사진이 아름다웠다.
아니면 늙어서 보수적이 되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오로빌 한 쪽에 따로 조성된 생태 공동체이자 숲 커뮤니티 '사다나 포레스트'가 탐이 났다.
그 곳은 에너지 자립 마을이자 어린 숲을 키우고 만드는 자원봉사 청년들이 모이는 곳이고
완전한 채식, 비건 식단이 태양열 조리기 위에서 지글지글 완성되는 곳이다.  

오로빌 아이들은 바깥에서 대학을 마쳐도 그 중 80% 이상이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이 아이들은 <바가바드 기타> 속에 있는 말,
"세상에 거하라, 그러나 세상의 것이 되지는 말라." 는 뜻을 체화한다.

바로 '세어링'과 사적 소유가 공존하는 매력 때문일까.
오로빌은 주거에 있어 무소유이자 공동 소유이며, 그 외엔 사적 서유를 유동적으로 적용한다고 한다.
특히 '푸투스'라는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생협에 가까운 슈퍼마켓에서는 화폐를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가격표도 없다.
그저 '모두를 위한 나눔' 개념에 맞게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쓴다.
다만 관리자들이 들고 나는 생필품을 기록하고 액수로 환산해 매달 개인별 사용액을 체크할 뿐.
개인적으로는 들쑥날쑥 차이가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대충 수지가 맞는다고 한다.
이윤이 목적이 아니라 오로빌의 조건 속에서 서로를 배려한 '세어링'이 작동하는 세계의 한 모습이다.

게다가 요새 한국의 가장 트렌디한 '사회적 기업'도 활발하다.
오로빌 언어로는 '상업 유닛'이라고 한다.
오로빌의 공동 식당 '솔라키친'에 물을 공급하는 사업체인 <아쿠아 딘>은 오염된 물을 정수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가정용 정수기를 유럽 시장에 내다판다. 오로빌 의류업체인 <우파사나>라는 브랜드는 유럽에 안정적인 판로를 가지고 수익이 쾌 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파사나의 설립자는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과 복지비용을 제외한 이익의 거의 전부를 오로빌에 환원한다.
이처럼 오로빌에는 현재 100개가 넘는 각종 사업체가 있고 사업체들은 이익의 30%를 공동체에 기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까 나도 김선우 씨처럼 고마운 것이다.
"대세가 정해진 듯 보이는 세계에서 다른 질서를 창조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 때문이다. 그들의 치열함 속에 녹아 있는 선의와 우정의 연대와 포용의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167)
바로 오로빌이 고마운 이유다.

하지만 잊지 않았다.
"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사는 방식이 당신을 말해준다."
권산 씨의 주옥같은 말씀.
이 순간, 이 자리, 이 관계에서 오로빌처럼 살고 싶은 선의와 연대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