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마포구 구의원 차해영 님의 책이다. 이번 지방선거 몇 달 전 출간되어서 오히려 차해영 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심 오해했었다. 선거 앞두고 정치인들이 자기 치세를 내세우기 위해 펴내는 자서전 출간 같은 거려나?
선거가 끝나고 재선에 당선된 구의원 차해영 님은 동네 의료 사회적 협동조합이 여는 '돌봄 간병 도우미(?)' 강의에 나타나 조용히 뒷자리에서 5일간의 강의를 듣고 수료증을 받아갔다고 한다. 내 친구가 강의를 듣고 와 전해준 말이다. 실은 내가 그 강의를 듣고 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을 빼지를 못 해 한탄했더니, 강의 커리큘럼 보고 내 친구가 오오! 나 들을래! 하고 참가한 강의였다.
그제야 나는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차해영 의원이 말하는 돌봄과 혼자, 가족이라는 말이 정치인의 수사가 아님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돌봄을 받지 못하고 혼자 서야 했고, 오롯이 혼자 서자마자 다시 영 케어러가 되어 아빠를 돌봐야 했던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을 다 읽고서 든 생각은 당신이 정치를 한다고 나서줘서 정말 고맙다는 거 (그 증좌로 쭈욱 정치 후원금 보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게나), 부록으로 실린 체크리스트의 '사전준비영역'을 내 룸메이트와 함께 사각사각 써보며 서로 읽어주는 시간을 보내는 거였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열라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기억에 남는 인생 장면 3가지를 이야기하고, 사전 유언장을 같이 써보고, 남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장례 주관자는 누구로 할지, 급할 때 여기 나온 비번을 보라며 휴대폰 패턴 열고 비번 저장된 메모를 보는 법까지, 우리는 자기 계발서 읽듯 이 책을 읽고 우리만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혼자서라도 아플 때 보호자 유무와 상관없이 의료나 돌봄 서비스를 제때 받을 수 있는 삶, 내가 지정한 사람이 응급 연락을 받고, 필요한 동의와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행정 절차에서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가로막히지 않는 삶. 나이 들어서도 존엄을 잃지 않고, 죽은 뒤에도 내 뜻에 따라 필요한 절차가 진행되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삶. 더 나아가, 구구절절 맥락을 설명할 필요 없이 존중받는 삶. 12쪽
자기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좋은 부모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필요로 했던 돌봄과 지지를 내가 나 스스로에게 건넬 줄 알아야 했다. 58쪽

내가 없었더라면 아바가 바로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었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게 기가 막혀서, 곧장 주민센터로 달려가 '가족관계 해체 및 부양거부 기피 사유서' 라도 적성해야 하나 싶었다. 102쪽
돌아온 질문들은 모두 같았다. "결혼하셨나요?" 정신병원 보호입원에 두 명의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되물었다. "아빠를 돌보기 위해 제가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요?" 한국의 가족제도가 내 숨통을 틀어막고 있었다. 114쪽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황당한 사실을 접했다. 아빠의 부계 쪽은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 했지만, 외가 쪽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외조부와 외조모를 뵈 적이 없습니다." 이 단 한 줄의 진술만으로 모든 절차가 종료됐다. 한쪽은 끝없는 절차와 증명을 요구받았지만, 다른 쪽은 그 한 줄로도 충분했다. 118쪽
부실한 설계는 사고, 재난 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 상황에서는 가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난다. 신원을 확인하려 해도, 실종 신고를 하려 해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로막힌다. 제도가 오직 '가족'이라는 통로만을 남겨둘 때, 그 통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난은 곧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런 이유로 동성 파트너는 가장 가까운 관계임에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락과 확인, 결정의 절차에서 배제되었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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