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에 떴을 때 펀딩에 참여헀다.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담고 있었다. 장소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 속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의 온갖 퀴어함에 관하여... 게다가 나는 노승영 님이 번역한 책은 믿고 보니까.

아르메니아 태생의 미국인 저자의 인종과 이민자 정체성, 어린 시절의 성폭행 피해, 성적 지향 등이 자연에서 발견한 연결됨을 통해 균류학자가 되는 길까지, 아름답고 시적인 문체로 적었다. <<랩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향모를 땋으며>> 등 과학자들이 자신이 깨달은 자연과의 공생을 삶과 사회에 투영해 씨실과 날실로 엮어낸 책의 계보에 속하지 않을까. 주류 과학계의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자연을 새롭게 보고 느끼는 과학적 감성과 이성을 훈련하는 데 여성, 퀴어, 이민자, 인디언 등 소수자의 시각이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이 계통의 책은 현재 크게 두 분파(?)로 나뉘는 듯한데, 하나는 린 마굴리스 계열의 '모든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공생자 네트워크', 그리고 다른 다른 하나는 룰루 밀러 계열의 '자연 그 자체가 퀴어하고 퀴어함이 자연스러움'이라는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스토리다.
나는 린 마굴리스의 책도 룰루 밀러의 책도 너무 너무 좋아하지만, 실은 <<자연은 퀴어하다>>는 몇 구절을 제외하고는 재미있게 읽지는 못헀다. 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고 그저 개인 취향인 듯. <<바이러스, 퀴어, 보살핌>>도 제목은 너무 내 취향이고 개인적 서사와 과학적 사실이 잘 어우러진 두 번째 계보의 책이지만 실은 읽기 참 힘들었다. 하루에 몇 쪽씩 읽기 정해놓고 고전 읽기 조별 과제하듯 겨우 읽어냈다. 좋아하는 주제라고 다 즐겁게 읽히지는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
그럼에도 <<자연은 퀴어하다>>에서 밑줄 그은 문장들을 채집해놓는다.

퍼트리샤 오노니우 케이시언 지음 / 노승영 옮김
미생물은 소화, 대사, 면역 같은 기계적 과정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미생물군-장-미주-뇌 축 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의 장내 미생물 활동이 중추신경계와 소통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기분과 행동이 마음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장내 미생물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불안감을 느낄 때 배가 죄인다면 그것은 당신의 뇌가 신경계를 통해 몸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이 체계의 정확한 작동 방식은 아직 수수께끼이지만 동물과 미생물의 공진화 패턴에 대한 실마리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일부 관찰에 따르면 미생물이 심지어 포유류의 인지 구조와 군집 구조를 빚어냈을지도 모른다. 73
궁극적 특권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으면서도 기본적 권리를 보장 받고 자신을 물질적으로 지탱할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세계가 더워지고 오염되면서, 숨을 곳이 끊임없이 파괴되면서 보이지 않을 공간은 점점 상류층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 180
사회적 역사는 직선적이기보다는 겹겹이 쌓안 지층으로 이루어진다. 불의라는 기반암 위에 승리가 한 겹, 고통과 투쟁이 한 겹 층층이 쌓여간다. 권력은 지각판처럼 움직인다. 하도 느려서 대개는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지각판들 사이의 단층선이 느닷없이 움직이는데, 그때 지진이 일어난다. 182 … 퀴어 공동체 시간은 귓속말 네트워크처럼 움직인다. 직선성이 분기, 분열, 재조합에 자리를 내어준다. 시간은 자신에게 되돌아가고 증식하고 사라진다. 퀴어 공동체 시간은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뜻밖의 데자뷔아자 뇌우가 지나간 뒤 돋아나는 곰보버섯 자실체다. 퀴어 공동체 시간은 직접 행동을 위한 임계질량의 형성이다. 퀴어 공동체 시간은 봉기다. 183
우리 모두에게는 서식처, 틈새, 우리를 떠받치는 공생 그물망이 필요하다. 소멸의 시간에도, 풍요의 시간에도, 우리에게는 교사와 친구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장소에 터 잡은 임계질량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결실을 우리 생전에 맺든, 지금으로부터 221년 뒤에 맺든, 1803의 상황은 1971년의 상황을 위한 토대였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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