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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4. 8.

왜 사람들이 김초엽, 김초엽 하는지 느끼게 해 준 소설. SF가 역설적으로 현실을 얼마나 잘 드러내주는지 알게 해 준 소설. 앞으로 김초엽 작가의 책은 주르륵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영상화 돼서 모스바나에서 푸른 빛이 도는 광경을, 디스토피아를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세계로 바꿔가는 빼앗긴 자들의 노력을, 이희수와 레이첼의 알쏭달쏭한 의존과 사랑의 관계를 눈으로 보고 싶다.

지구의 끝도 우주의 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 이라고 책은 끝난다. 바로 그 이야기들을 영상으로 보고 싶다.

유토피아는 세상에 없어서 유토피아이므로 우리가 경험할 수는 없겠지. 유토피아란 디스토피아를 함께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덜그덕거리는 연대 사이에 잠깐 아지랑이처럼 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를 그럼에도 마침내 재건하고자 하는' 프럼 빌리지의 사람들이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디스토피아가 온다며 그런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을 맞고 싶다. 세상 끝의 온실은 그런 세계였다.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
더스트라는 극한 환경이 완화되면서 다시 새로운 식물 생태계가 생겨났고 모스바나는 우점종에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모순이 모스바나에게 시간을 벌어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모스바나는 인간에게 적응해서 그 자신의 독성을 점점 낮추어왔고, 염증을 일으키는 가시의 크기를 작게 만들었고, 눈에 띄는 발광성 돌연변이를 상실했고, 더스트 이전부터 존재했던 잡초들처럼 스스로를 풍경 속으로 희미하게 감추었습니다."


"추측하신 대로 업로드된 모스바나의 데이터는 제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것들이 맞습니다. 수집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태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지위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