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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인데 이미 올해 최고의 책, 그저 하루치의 낙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3. 5.

글이란 이렇게 쓰는 거라고, 이토록 솔직하고 스탠드업 코메디처럼 웃기는 자기 고백이 어느 순간 전철에서 책 읽다가 펑펑 울게 하는데, 이분은 천상 글쟁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오랫동안 일간지 기자였다가 책 공장처럼 성실하게 원고를 써내는 장강명 작가처럼 박선영 전 기자님도 여자 장강명 작가처럼 책 많이 내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선영 작가가 기자 시절 썼던 전설의 칼럼에 교차로 앞에서 엉엉 울었다는 썰이 나오는데, 나도 이 책을 읽다 무담시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주 울어서 자기 전에 집에서만 꺼내 읽게 됐다. 그 눈물은 박선영 기자의 글처럼 자기연민은 쏙 빼고서 타인과 세상에 향한 연민이었는데, 그렇다면 얼마든지 자주, 자꾸 울어도 좋을 것이다. 그 눈물은 후원을 하든 서명을 하든 뭐라도 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딱히 뭘 안해도 부책감으로라도 세상과 연결되게 하니까.

어록과 밑줄 친 문장이 너무 많아 이 책을 인용하기란 당췌 쉽지가 않다. 그냥 책 자체가 죄다 어록이니까 꼭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다. 나는 박선영 작가는 리베카 솔닛과 비비언 고닉 작가의 좋은 점만 섞어 놓은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리베카 솔닛의 인문학이고 사유적 글쓰기에, 비비언 고닉의 재기 발랄한 솔직함과 유머가 섞여 있다. 깔깔 웃는 킬뽀 부분도 많다.

이런 글을 울고 웃으며 내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 박선영 작가님 부모도 아닌데, 알맹상점 매니저님들께 이 책을 사서 한 권씩 선물하면서 꼭 좀 읽어달라고 부탁했드랬다. (마치 내 자식 책 나왔다는 듯이 ㅋㅋ) 그러니까 작가님 어떤 장르라도 좋으니 성실히 꾸준히 많은 글을 써주십사...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에 대한 척도로서가 아니라면 자기연민은 얼마나 추잡한 감정이란 말인가. 124

고통의 속지주의에는 비겁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그 땅에 속해 있지 않으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러므로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다. 나의 평판은 안전할 것이다.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어디에도 단 한마디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 침묵한 덕분에 고통을 잊은 사람이 되지 않았나. 고통의 세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나온 것은 아닐까. 183

한 달이라도, 아니 단 하루라도, 고통의 세계로 가자. 고통의 속지주의를 신봉한다면, 고통의 땅에 있지 않으므로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고통에 대해 말하기 위해 세계의 비참 속으로 돌진해야 한다. 186



언니


‘언니’의 이응 자만 꺼내도 작살이 날 것 같았다. 남기자들이 서로를 “형”이라고 부르며 끈끈한 우애를 다질 때, 여기자들끼리는 깍듯이 “선배”라는 말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여성성이란 들통났다가는 큰일나는 열등의 증표여서 혹시라도 “언니” 같은 말을 쓰다가 책잡힐까봐 각별히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64

우리 모두 언니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선 난쟁이처럼, 우리는 언니들의 성취를 딛고 조금 더 좋은 곳,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간다. 세상이 아직도 여성을 업신여겨서, 똑똑하고 유능하고 도덕적인 여성일수록 더 악착같이 찍어눌러서, 언니들의 미래가 아직은 통속극의 해피엔딩처럼 화끈하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세상이 똑똑한 여성들을 대우하는 방식은 한결같다. 잔뜩 부려만 먹고, 권한 있는 큰 자리는 봉쇄해버린다. 75

출세란 흙 묻은 알사탕과도 같다. 사탕은 먹고 싶은데, 흙을 삼킬 수는 없다. … 언니들이 합당한 쓰임을 받지 못할 때, 저 흙 묻은 알사탕을 수돗물에 헹궈주고 싶었다. 언니들이 내가 퍼온 흙더미 속에서 보석 알갱이를 찾아주었듯이,  나도 흙 묻은 알사탕을 깨끗하게 헹궈 “언니 먹어요.” 건네주고 싶었다. 75

우리는 멀어져가고 있다, 라고 쓰면서 또 슬프다. … 하지만, 느네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런 말을 하면  “아유, 선배 집어치어요.”라는 말이 돌아올 테지만, 꼭 해야만 쓰겠다.

멀어지고 있지만,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어.

그리고, 그때 너네한테 바친다며, 기타 미쳐 노래 부른 내 동영상 카톡방에 올린 거, 미안하다. 90 🤣🤣



가난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존엄하고 품위 있는 인간들을 적잖이 보며 산 덕에 권세 앞에 주눅 들지 않았다. 기자로서 내가 잘한 일이 몇 개나마 있다면 다 이 덕분일 것이다. 부유하고 안락한 아이들에게는 자기 효능감의 결여라는 태생적 한계가 작동하는 것을 내 자식들을 키우며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올라갈 자리가 있었구나. 약자들은 언제나 자기 능력보다 낮은 곳에 가게 될 것이다.

오버퀄리피케이션이 그들의 운명이다. 온갖 부스터를 다 받으며 늘 자기 능력 이상의 자리에 가 있는 강자들을 보면 억울하고 화가 날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당신이 그곳의 최고가 될 것이다. … 결핍이 동력이라는 것. 결핍이 없는 사람들은 엔진 없는 자동차처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192-193

고통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 하지만 거기엔 일말의 진실이 있고, 그 진실이 누군가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남으라고,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세상엔 뜻밖에도 허술한 구석들이 제법 있다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라고, 주눅 들 것 없다고, 알고 보면 뭐 중뿔난 것도 없다고 손 꼭 잡아주고 싶다. 193

가난은 집에 책이 한 권도 없는 게 아니다. 책이 없는데 도서관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것, 내겐 그게 가난이다. … 나는 버스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게 고통을 주었던 건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택시기사의 요구에 어디에 머리는 넣으면 되는지 몰라 허둥댔던 순간과 웃음을 참으며 대신 매주던 친구 앞에서 붉어졌던 내 얼굴이다. … 내가 가난의 비자를 심사하는 이민국 관리도 아닌데, ‘도둑맞은 가난’을 색출하려 들어서야 되겠는가. 가난은 많이 얘기되면 얘기될수록 좋은 것이다. 이곳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합니다. 198



서발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슬프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서발턴의 삶은 어떻게 발화될 수 있는가? 서발턴의 딸과 아들이 더 이상 서발턴은 아니게 됐지만 서발턴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을 때, 그 삶은 비로소 가시화할 수 있다.

식모살이의 고통을 주인집 도련님과 애기씨의 시점으로 들려주는 것은 이제 그만 듣고 싶다. (영화 ‘로마’ 이야기하면서) … 서발턴의 딸과 아들이 애비는 종이었던 게 싫어서(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리지 않을 때, 지긋지긋하다며 고통의 영토에서 완전히 도망치려고 하지 않을 때, 자기 계급의 배반 없이 고통의 원천을 직시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껴안을 때, 그때, 서발턴은 말할 수 있다. 194



낙담

“베토벤에게는 놀랄 만큼 약한 이행부들이 많아, 하지만 센 이행부들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약한 이행부들이야. 잔디밭처럼 말이야. 잔디밭이 없으면 우리는 그 위로 솟아나는 아름다운 나무에게서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을 거야.” 212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 칸트의 묘비명.
그 무한한 숭고, 영겁의 공포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여기에서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낙담하지 않는 것이다. 알량한 도덕군자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장래희망이다. 279

굳이 추락하고 싶지는 않지만, 추락이 그렇게까지 두렵지는 않다. 이 생각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비로소 숨 쉬게 하는지, 자주 놀란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니체는 썼다. … 니체가 말하는 몰락이란 자기 자신을 초극하기 위한 과정이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자신을 해체해야 한다. 나는 사랑한다. 몰락하는 자로서 살 뿐 그 밖의 삶은 모르는 자를. 291

빛이란 전자가 높은 에너지 준위에서 낮은 에너지 준위로 떨어질 때 그 차이만큼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 높은 계단에서 낮은 계단으로 내려갈 때 그 에너지의 차이는 빛의 형태로 방출된다. 빛에 관한 이 설명이 나는 몹시 마음에 든다. 올라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암흑이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다. 내려와도 괜찮다. 빛이 거기에 있다.  307



행동하는 것


언어에서 열에너지는 궁극의 힘이 아니다. 언어의 힘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온다. 저것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가. 움직이라고 하는 말에는 힘이 없다. 힘은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314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가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에 나오는 슈타인라우프의 이야기.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기에도 모자란 에너지를 써서 언제나 깨끗이 씻던 사람) 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