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을 이제야 알게 됐다. 놀랍게도, 내게 오디오북은 책의 범위 내에 있지 않았다. 누군가 오디오북으로 '파친코'를 읽었는데 누구 목소리로 설정하는 게 좋았다고 하면서, 오고 가는 길에 파친코를 오디오북으로 다 읽었다는 거다.
귀가 확 트였다. 멀미를 해서 버스 등에서 글을 못 보는 내가 귀로 책을 들을 수 있다면? 왜 도대체 나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아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지? 자책하면서 책 듣기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결과 길을 오가는 자투리 시간에 약 3-4권의 책을 듣게 되었다.
오디오북으로 인해 읽는 책이 더 많아졌고 읽는 책의 장르도 더 넓어졌다. 아무래도 소설책이나 에세이처럼 말 하는 대로 귀가 따라가도 이해되는 책은 오디오북 좋고, 집중하거나 생각을 꼽씹어야 하는 책은 종이책이 좋다. 그래서 묵혀두고 시간이 안 나 우선순위에 밀린 SF 소설이나 에세이, 심지어 자기 계발서로 접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키메라의 땅>>. 반년 전 쯤 <<키메라의 땅 1>>을 읽었는데, 이후 <<키메라의 땅 2>>는 도서관에서 매번 대여 중이라 도통 빌려 읽을 수가 없었다. 오디오북에 있길래 마저 귀로 들어 완독 성공!

이 책은 문자로 된 책을 읽어야 했던 내가 귀로 책을 듣게 된 기술의 변화처럼, 제 3차 세계대전 후 호모 사피엔스 구인류가 유전자조작 기술로 새 혼종으로 대체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그린다.
사피엔스 종을 동물종으로 객관화해서 느끼게 주고,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키메라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교훈이(?) 강렬하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야, 라며 사피엔스가 행해왔던 다른 동물과 자연에 대한 착취를 거울처럼 반사한다.
그래서 말이지, 키메라의 땅을 다른 버전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따온 혼종의 명명과 프랑스 땅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과 인도 신화에서 차용한 혼종의 학명이라던가, 방사능이 약해진 땅으로 올라온 혼종이 사는 곳이 파리가 아니라 태국 방콕이나 코스타리카 산호세라든가.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지극히 프랑스 유럽인의 관점에서 상상을 펼쳤으니, 나는 나의 정체성에 맞게 아시아 버전으로 써진 SF 이야기가 보고 싶다는 뜻이다. 할리우드 영화를 주로 봤더니 내가 미국인도 아닌데 악인은 죄다 러시아, 북한, 아랍이네? 이렇게 그들의 시선을 뒤집어 쓰지 않도록 다양한 관점에서, 특히 비주류 사피엔스 관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왜냐면 <<키메라의 땅>>의 이야기가 그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책은 눈으로 활자를 읽는 것이라는 관점을 벗어났더니, 오디오북의 세계가 내게 더 넓은 책의 세상을 알게 해주었다. 그처럼 다른 시점에서 쓰여진 다양한 콘텐츠는 세상을 더 넓고 더 다양하고 더 깊게 해주겠지.
#키메라의땅 #다른관점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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