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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 는 의미는 이미 그 당시에도.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6. 2. 12.

나는 계엄시도가 있어서 너무 유명해버린 문구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란 말이 2024년에야 빛을 발했다고 생각했다. 한참 뒤늦게 이제야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1980년 5월 그 당시에도 이미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생각하곤 했다. 그 밤 도청에 남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한다는 의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게토 지역에서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인간답게, 내가 옳은 사람으로 죽는다며 위로를 찾는 것은 아닐까. 

<<소년의 온다>> 아래 구절을 읽으며, 그들이 그 자리에 남아 죽음으로써 수천곱절의 죽음을 막아냈다는 사실을 비로서 알게 되었다. 의로운 죽음은 상징적인 수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려낸 정의로운 무기였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질의 피였다고.  118쪽

 


어젯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새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 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도생과 나란히 도청에서 총을 맞았으며 동생과 나란히 묻힌 고등학생 하나는 바로 안 죽고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당했던 모양이라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 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