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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카인드,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5. 12. 14.

이런 책은 교과서에 실려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고등학교 사회 교사라면 무조건 학생들 이 책 읽는 팀플 과제 내준다 (아니 왜 역할극??) 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빌 게이츠처럼 무슨 디게 유명한 CEO들이 추천한 책이라서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올해 읽은 베스트 책 중 한권이 되었다. (올해 책을 얼마 안 읽긴 했지)

저자의 말처럼 나도 진화가 더 이상 적자 생존 같은 비정한 단어가 아니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따뜻한 위로로 느껴졌다. 이 책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의 확장판이며, 두 책 중에서 한 권만 읽으신다며 <<휴먼 카인드>>를 권한다. 전자가 유전학의 과학에 좀 더 집중했다면, 후자는 과학적 연구는 물론이고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심리학, 역사학을 총망라해 새로운 현실주의자의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를 갈망한다. 호모 퍼피가 큰 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같은 갈망 때문이다. 이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진화라는 개념은 더 이상 우울한 느낌을 주지 않았다.

창조자나 우주 계획 같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수백만 년 동안 눈을 감고 더듬다가 만난 요행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20만 년 역사상 19만 년은 전쟁도 압제자도 없는 평화시대였다. 119쪽



서로를 길들이고 다정하게 진화한 '호모 퍼피(강아지형 인간)'이 왜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남을 억압한다고 믿게 되었는지, 왜 홀로코스트와 세계대전 같은 빼도 박도 못하는 잔혹한 비극을 두고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엄청난 역사적 사실을 들어 증빙한다. 길고도 긴 증빙 자료처럼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다. 그런데 술술 읽히니까 우선 펼쳐보시길.

인간의 본성이 악하고 권력을 탐한다고 생각되는 유명한 교도소 실험이나 식인까지 일삼으며 멸망했다고 일컬어지는 이스터 섬의 비극을 재조명해서 그 이면의 진실을 알려준다. 그가 들이대는 증거가 바로의 인류 희망의 역사 그 잡채. 그렇다고 순진해 빠졌냐, 교회 오빠 같은 선한 목지자 같은 소리를 늘어놓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매우 현실적이고 우파와 좌파를 가로질러서 더 좋은 사회를 구체적으로 찾아내는 언론인이다.


우리가 천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이다. 좋은 면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어느 쪽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의 주장은 단순하다. … 인간 본성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에 대한 증거이다. 이와 동시에 나는 우리가 이 사실을 믿기 시작한다면 이것이 더욱 실제적인 현실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41쪽


그런데도 왜 사회가 망가지는가, 호모 퍼피는 권력형 인간을 자연스럽게 몰아낼 수 있는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규모의 공동체에서 벗어나 너무 큰 규모의 사회를 조직해냈기 떄문이다. 그 결과 권력형 인간들을 몰아내지 못한 채 우르르 따라가는 후천적 반사회화의 함정에 빠진다.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 여성이 돌봄과 관계에 뛰어나는가, 분명 그런 경향이 있다. 유전자에 새겨져서? 원래 그런 존재라서? 아니다. 그렇게 사회화되기 때문이다. 불행히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권력자와 남성들은 후천적으로 반사회화되는 경향을 더 띄기 쉬운 상황에서 사회화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으므로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된다.

이는 공감 테스트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와도 연결지을 수 있다. 2018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실시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는 유전적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대신 과학자들이 사회화라고 부르는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권력이 분배되는 전통적 방식 때문에 남성을 이해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직관력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끈질지게 지속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와 같은 불균형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시각으로 세계를 볼 것이라 기대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319

현대의 조직에서 소시오패스는 출세 가도에서 실제로 몇 걸음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며 CEO의 4-8%는 의학적으로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반며 일반인의 비율은 1%에 불과하다. 332



그리고 그 결과 리베카 솔닛의 말처럼 최악의 상황이나 재난이 닥치며 이는 더는 극대화된다. “내가 받은 인상에 따르면 엘리트가 공황에 빠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의 인간 본성이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독재자와 전제 군주, 주지사와 장군들은 모두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시나리오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너무 자주 무력에 의존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똑같이 이기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하는 탓이다." (37쪽)

그래서 이 책은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고 호모퍼피가 진화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인 '다정함'을 연마하고 사회적으로 증폭시킬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이 역사가 증거하는 진화의 방향이니까. 따라서 인간을 믿는 것은  망상이 아니라 현실적이다. 저자는 자신이 새로운 현실주의자라고 강조해서 말한다.


나는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이며. 대처할 시간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내가 회의적인 것은 붕괴라는 숙명론적 수사이다.

우리 인간 이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거나 더 나쁘게는 지구의 재앙이라는 인식이다. 나는 이런 인식이 ‘현실적'으로 널리 퍼질 때 의심을 품으며, 여기에 출구가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회의적이 된다.

너무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인류의 회복력을 과소평가한다. 나의 두려움은 그들의 냉소주의가 자기 충족적 예언, 즉 지구 기온이 변함없이 오르는 동안 우리를 절망으로 마비시키는 노시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기후행동 역시 새로운 현실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 198-199쪽


그리하여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간추려 결론만 쓰니 예수님의 '오른뺨을 맞으며 왼뺨을 들이대시요! 하는 느낌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책을 걍 보시오...


당신에 대한 나의 기대는 당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 당신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당신의 기대와 그에 따라서 나에 대한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355쪽


2011년 우익 극단주의자 아네르스 브레이브크가 유혈극을 벌이자 노르웨이 총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류애이다.”

이런 종류의 대응은 종종 문제를 외면하고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난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는 말로 가장 쉽지 않은 길이다. 반대로 거친 말, 보복, 국경 폐쇄, 폭탄 투하,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문제를 외면하는 행위이다. 4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