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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와일딩 선언, 자유로운 야생으로의 초대

by 불친절한 금자씨 2025. 10. 13.

한국 환경운동에도 작년부터 활발하게 이야기되기 시작한 주제가 있으니, 바로 리와일딩 분야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 반핵 운동이 급 물살을 탔고, 쓰레기 대란이 터진 후 자원순환과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선봉에 섰다면, 지금 환경운동의 가장 핫한 주제는 리와일딩 운동이 아닐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은 돈 들어올 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운동에 있어서도 물 들어올 때가 있는 법이니. 그럴 때 최대한 많이 화자되면서 가시적이거나 근본적인 활동의 발판을 깔아놔야 한다. 물 들어오는 시절이 지나가면 또다시 목청 높이 부르짖고 매력적인 활동을 제시해도 나 혼자만 염병첨병 하고 프로젝트는 죄다 떨어지는, 외로운 시기가 닥치기도 하니. ㅎㅎ

하여 이 시기에 딱 도래한 신간 <<리와일딩 선언>>, 것도 한국 저자의 책. 읽어야지. ㅎㅎ 이런 게 타이밍이라는 거다. 내가 대문을 딱 나서자 카카오택시 앱으로 부른 택시가 대문 앞에 딱 서드라, 이런 시츄에이션,



리와일딩 선언 : 자유로운 야생으로의 초대

by 김산하

기존의 자연보호운동이나 보호구역과 리와일딩 운동이 다른 지점


야생의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바로 자율성이다. 자기 뜻에 따라 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존재 또는 그러한 성질을 말한다. 영어로 야생을 뜻하는 wild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점이 잘 드러난다. wild는 고어인 wildeor로부터 나왔는데 앞부분은 의지를 뜻하는 will이, 뒷부분은 동물이나 사슴을 뜻하는 deor가 합쳐진 형태로 사람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self-willed) 동물을 말한다. 27

야생은 자율적이면서 동시에 자기 조직화한다는 것이 가장 주요한 특징들이다. 자기 조직화는 어떤 자연 체계가 조직되어 가는 방식이 그 체계 내부로부터 비롯된다는 의미다.

이는 한 복잡계 내에서 어떤 패턴이 자발적으로 발생하거나 변화하는데, 이 발생 및 변화를 일으킨 요소들이 다시금 그 패턴에 적응하는 현상이다. 자율 주행 자동차는 스스로 다니며 주변과 상호 작용하기는 하지만, 제 아무리 긴 시간동안 운행한다 해도 어떤 조직의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

조직 원리가 내부가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자율 주행 자동차는 제한적인 의미의 자율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 조직화는 완전히 결여된 것이다. 가장 궁극적인 자기 조직화인 자발적 번식의 능력이 없음도 물론이다. 29

리와일딩은 자율성과 자기 조직화의 핵심으로 효모, 무척추동물은 물론 먹이사슬 최정점의 포식자까지 포함하는 동물종을 자기 의지대로 살게 한다.

"동물들은 서식지의 창조자이자 생물 다양성의 원동력입니다. 그들 없이는 정적이고 빈약한 단조로운 서식지만 있게 됩니다. 그동안 많은 보전 노력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122

얼마 전 읽은 <<먹고 싸고 죽고>>도 동물의 생태계 순환 역할을 보여준 책인데, 동물들의 신기하고 신비로운 자기 조직화를 구체적으로 펼쳐낸다.  
https://ecolounge.tistory.com/m/685


동물은 지구의 순환을 이끄는 심장이다. 나무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여 지구의 허파로 기능하듯 동물은 심해 협곡에서 질소와 인을 퍼 올려 산꼭대기로, 극지로, 열대로 펌프질하며 순환시킨다.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동물이 날고 달리고 헤엄치고 걷고 땅을 파며 이동한다. 고래 코끼리 들소 연어 바닷 새와 같은 중대형동물은 영양분을 바다와 강, 산과 계곡, 초원과 외딴 화산섬까지 수백수천 킬로미터씩 옮긴다. 이런 장거리 여행 자들은 세계를 있는 동맥과 같다.

더 나아가 매미, 깔따구, 크릴 등의 무척추동물은 지구의 세포 조직에 영양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이다. 24쪽


자연으로 돌려주게 하라 : 죽음의 순환

리와일딩에서 중요한 것은 시체의 순환이기도 하다. 다음 사례를 보자.

모든 생태계에는 청소에 의지해 사는 동물이 있는데 이 청소 동물은 영양분 순환과 전염병 확산 방지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이들이 살기 위해서는 사체가 충분히,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고 이는 건강한  생태계의 필수 지표 중 하나다. ...

그런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포르투갈에서도 현 행법상 가축이 죽으면 그대로 방치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리와일딩 포르투같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당국과 5년간의 씨름 끝에 2025년 한 농장주에게 합법적으로 죽은 가축을 '방치'할 수 있는 면허가 처음으로 발급되었다." 168

동물은 한 마디로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 자연계의 일부이기도 한데, 죽어서 받은 일부를 자연계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동물이고 사람이고 그 길이 끊어버렸다. 사람은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 자연계로 돌려줄 양분을 화석연료를 태워서 낸 1,000도에 태워버리거나 오동나무 관 같은데 꽁꽁 싸서 썩지 못하게 막는다. 가축으로 키워지거나 사람에게 발견된 동물의 시체도 마찬가지.

<<먹고 싸고 죽고>>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온다.

거대한 고래 한 마리의 사체가 도달한다는 것은 1000년 치의 물량에 해당하는 해양눈이 하루아침에 쏟아져 내리는 것과도 같다. 스미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먹이, 지질, 단백질 같은 청소동물이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펑하고 한순간에 터져 나오는 거예요."


요즘에는 고래 사체를 토막 내어 바다로 끌고 가거나 땅에 문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 이를 발굴해 전시하거나 과학용으로 보존할 수 있다. 실제로 스미소니언박물관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1만 마리가 넘는 고래 뼈가 보관되어 있다.

만약 고래 사체가 떠밀려 왔는데 사인을 알 수 없다면, 그냥 그대로 두는 건 어떨까? 바다에서 육지로 온 고래 사체는 콘도르와 북극곰은 물론이고 각종 포유류와 조류, 육상 무척추동물에게 엄청난 양분을 공급한다.

미국에서는 고래 사체 네 구 중 한 구 골로 제자리에 방치하는데, 인파가 몰리는 해변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행하는 조치다. 108

리와일딩, 인간과도 공존


그 놈의 지구에 암적인 인간만 없어도 리와일딩이야, 한다면 그건 바로 리와일딩을 원칙을 잘못 이해한 경우다. 인간도 동물이고 자연계의 일종인 것을. 인간은 동물 아니냐고,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성, 문명과 야생 이 이분법을 깨는 게 바로 리와일딩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리와일딩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활동과 역할을 고려한다. 단 한 종이 다른 종들과 생태계의 역할을 좌지우지하고 지 맘대로만 하는, 현재 인간 종의 비정상적이고도 과도한 영향을 줄이고자 한다.

인간과 어떻게 공존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는 영국의 버려진 경작지를 리와일딩한 넵 캡슬 농장과 노스페이스와 파타고니아 창업자들이 지켜낸 아르헨티나 이베라 공원에서 볼 수 있다.

단지 생물상의 회복만이 아니었다. 이전에 상상하지 뭇했던 방식으로 일귀낸 경제성의 회복이기도 했다. 현재 넵 캐슬 농장은 각종 강연, 워크샵, 생태 관광, 숙박 및 케이터링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종합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했다.

여기에 외부 컨설팅, 책 및 상품 판매, 직접 초식 동물 개체수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육류의 판매 등이 추가된다. 농장에서는 이렇게 얻는 '야생 방사육'에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매한다. 125 (이런 고기라면 먹을 수 있지!)

이베라 공원은 전세계에서 재규어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직접 관찰하기 용이한 이유는 이베라 리와일딩 프로그램은 재규어 개체군 전체를 속속들이 알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와일딩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는 곧바로 생태 관광의 노하우가 된 것이다. 142

나는 약 5년 전 나이로비에서 마사이 마라 자연보호구역까지 비포장도로를 8시간 동안 달려 하루 내내 치타 2마리, 표범 1마리 본 적이 있다.  (사자는 좀 많이 봐서 나중에는 심드렁해지는 사태가 ㅎㅎ) 한국의 호랑이 같은 존재가 바로 남아메리카에서는 재규어라는데, 이 재규어가 나타나는 곳만 쏙쏙 찾아다니는 생태관광이라면 어찌 동하지 않겠는가.

책에는 리와일딩의 10가지 원칙과 정신, 세계 곳곳의 리와일딩 사례를 충실히 담고 있다. 나는 걍 나한테 꽂힌 부분 위주로 소개해보았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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