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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책을 읽을 시간이 기다려진다, 리베카 솔닛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0. 11.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의 부제는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다. 그렇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이 부제보다 더이상 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가 페미니즘, 문학, 예술, 평화, 환경에 대해 쓴 글들은 읽고 쓰고 생각하는 삶, 홀로 일어서는 삶, 그리고 그 '홀로'를 넘어, 타인이라는 '넘사벽'을 넘어, 자기 연민을 넘어, 다른 생명의 고통에 가닿으려 노력하는 연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초여름에 우에노 치즈코 강의가 열렸던 서울여성가족재단의 팀장께서 다음에는 누구를 초대할까, 하길래 주저 없이 대답했었다. "리베카 솔닛이요!" 

나처럼 생각하는 눈 밝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다음이 되기도 전에 리베카 솔닛이 내한했다. 아쉽게도 그 주말에 일이 있어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놓치지 않고 읽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또다른 그녀의 책이 읽고 싶고, 또 그 책을 읽고 나면 또 또다른 그녀의 책이 고프다. 남자들은 자꾸 가르치려 든다는 '맨스플레인'으로 유명해서 톡 쏘고 신랄할 것만 같지만, (물론 필요할 때는 가차 없지만) 그녀의 책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사려 깊고, 무엇보다 아프다.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느끼게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리베카 솔닛 내한 강연 내용 요약 브런치 글 (강추!) 

강연 1부 ("부패한 대통령을 어떻게 내쫓는지 배우러 한국에 왔다"로 시작하는 강연 서두 

https://brunch.co.kr/@dlclzh/63

강연 2부 ("만약 내가 남자라면" 낭독)

https://brunch.co.kr/@dlclzh/64

강연 3부 한국 독자가 묻고 리베카 솔닛이 대답하다

https://brunch.co.kr/@dlclzh/62



페미니즘이 알고 싶은 사람들은 물론,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리하여 홀로 서고 결국 이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솔닛의 책을 권한다. 무릇 페미니스트란 리베카 솔닛처럼 멋진 언니들이 많다. ㅎㅎ 그리고 아포리즘. 책의 곳곳에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눈길을 머물게 하는 어록이 넘쳐난다. 



"페미니즘에 관한 모든 댓글은 페미니즘을 정당화한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중 (영국 저널리스트 헬렌 루이스 2012 트위터에서 유행시킨 말이라고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여자들 일인 것은 그저 그 일이 여자들에게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그 일을 저지르는 건 대부분 남자들이니, 어쩌면 페미니즘은 줄곧 ‘남자들 일’이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148쪽


"어떤 어머니에게, 내 어머니에게, 딸은 나눗셈이지만, 아들은 곱셈이다. 딸은 어머니를 줄어들게 하고, 쪼개고, 무언가를 떼어가지만, 아들은 뭔가 덧붙여 주고 늘려 주는 존재인 것이다."  

 『멀고도 가까운』 38쪽


"고통이 몸의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함으로써, 어떤 사회 구성체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들의 즐거움 역시 전염성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 당사자를 당신 안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고통을 당신의 몸이나 가슴, 혹은 머리에 새기고, 그다음엔 마치 그 고통이 자신의 것인 양 반응한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 신체적 고통이 자아의 신체적 경계를 정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동일시는 애정 어린 관심과 지지를 통해 더 큰 자아라는 지도의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멀고도 가까운』 157~158쪽


"나는 지구가 환경적 관점에서 거주 가능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문제를 열심히 걱정한다. 하지만 지구가 여자들에게 거주 가능한 장소가 되기 전에는, 그래서 여자들이 말썽과 위험을 끊임없이 걱정하지 않고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날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우리의 온전한 능력을 펼치지 못하도록 막는 현실적•심리적 짐을 진 채 계속 허덕일 것이다. 내가 현재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는 기후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면서도 페미니즘과 여성의 권리에 대해 계속 글을 쓰는 건 그 때문이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167쪽


"그동안 젠더에 대한 생각을 고쳐 쓰고 침묵을 깰 권리에 도전함으로써 세상을 다시 써온 페미니즘의 위대한 경험은 놀랍도록 성공적이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 … 그것은 참으로 사소한 일상의 몸짓과 대화뿐 아니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규모에서 법•신념•정치•문화를 바꾸는 일까지 포함하는 작업이고, 가끔은 전자가 누적되어 후자가 이루어진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117쪽


다행히 리베카 언니는 다작은 아니지만, 나름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나는 그녀의 책을 읽을 시간이 기다려진다. 

바야흐로, 가을. 책 읽는 시간이 익어가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