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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변화시킨 공부, 페미니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6. 13.

인터넷 책방 알라딘의 메일링을 받아본다. 2년간 이곳에 소개된 페미니즘 신간이 그 2년을 뺀 모든 시간 동안 올라온 페미니즘 책보다 많은 듯하다. 최근 나온 페미니즘 책들을 읽으며 이 언니들이 이렇게 할 말이 많고 이렇게 지축을 흔드는 멋진 사유를 해왔는데, 지금껏 기회가 없어 제 안에서만 삭혀오다 이제야 꺼내놓는구나 하는 감상에 젖었다.

초여름, 빛이 사위어가는 저녁, 수박은 이르고 시원한 참외가 땡기는 계절, 바람은 살랑살랑, 그리고 페미니즘 책들. 그 중에서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가 좋았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저자만 살펴봐도 안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그 중에서도 두말할 필요 없는 정희진 선생이 엮었다. 일본에 우에노 치즈코 따위 무섭지 않다는 제목의 책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으면!), 한국에는 정희진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정희진 선생의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을 보냈고 이제는 직장생활 10년차가 되었는데, 여전히 그의 책은 빨리 읽지 못 한다. 문장 하나하나 다르게 사고할 것을 요구하며 행간이 두꺼워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페미니즘 책을 읽는 고통이자 지극한 즐거움이랄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에 실린 그의 글도 그렇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다른 저자들이 쓴 글도 그렇다. 결론적으로 인덱스로 표시하거나 펜으로 줄을 좍좍 그으며 꼭꼭 씹어 읽을, 멋진 책이다.


나는 백인 문화가 다른 인종을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은 색깔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 유색 인종이라고 부르는 것을 비판한다. 한편 구한말 조선 사람들도 갑자기 나타난 서양인을 색목인이라고 불렀다. 검은 눈동자도 분명히 색깔이므로 이 단어는 인종 차별적이다.” 32


페미니즘은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불평등, 몸과 혀에 체화된 습속의 체계를 뒤집는다. 여성의 지위 향상은 페미니즘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가, 홑눈에서 겹눈으로 진화해 여러 관점에서 세상을 보도록 해주는 렌즈, 혹은 동물의 왕국에서 야행성 동물을 찍을 때 어두컴컴한 곳에 들이댄 적외선 카메라 같은 기능을 한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저 어두컴컴하게 보였던 존재를, 진실을 보이게 한다. 나는 이처럼 인식의 전환을 꾀하게 해준 공부를 만난 적이 없다. 유색 인종색목인이라는 단어에서 이상한낌새를 맡게 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힘이다.      


젠더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 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 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33


맞다. 정희진 선생을 그녀중 어떤 대명사로 받을까 글을 쓰면서 고민한다. ‘그녀로 쓰자니 여배우, 여교사, 여의사, 여류작가처럼 여성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남성을 보편으로 상정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라고 쓰자니 남성을 일컫는 대명사를 모든 인류에 적용하는 꼴이 된다. 평등하고 중립적인 언어는 없다. 보편 기준은 남성에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남성은 전체 중 일부분인 하나의 젠더가 아니라 전체 그 자체인 반면, 여성은 남성의 대립항으로만 정의되는 부분일 뿐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핵심적인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둘째, ‘대립하는 이항 외 다른 존재 혹은 다른 방식의 사고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셋째,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archetype)으로서 모든 언어의 모델, 척도, 기원, 전형으로서 인류를 지배해 왔다.” 30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세계를 지극히 정상으로 보이는 불평등으로 덮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가장 적절하고도 적극적으로 싸우는 인식 틀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에 반대한답시고 많은 남자들이 고통 받는다든가, 양성평등을 하려면 여자들도 데이트 비용을 내라는 빻는소리하지 말 것. ‘양성평등은 페미니즘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목적은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이나 기존의 질서와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콩고물을 나눠먹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자들은 자꾸 이 콩고물만 말한다.  


양성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추락이나 동성애자가 되는 것, 못난 남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50


이 책의 의미는 페미니즘으로 자꾸 곡해되는 양성평등의 지점을 지적하고,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수정하려는 원대한 포부임을 상기하는데 있다. 것도 한국사회가 겪는 구체적인 사건 - 미성년자 의제강간, 전 지방검찰청장 공공장소 자위 사건, 메갈리아 미러링,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 한국 개신교 위에서 양성평등을 왜 반대하는지를 풀어놓는다.


그래서 양성평등을 반대하는 페미니즘은 뭘 바라냐고?   


보편성의 반대는 특수성이 아니라 차이다. 이 차이를 또 하나의 보편으로 드러낼 때, 기존의 보편성이 실제로는 편파적이고 당파적임을 인식할 수 있다. 특수성은 보편의 하위 개념인 반면, 차이는 보편성의 전체주의를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보편과 동등한 개념이다.” 46


차이를 또 하나의 보편으로 드러내는 것, 기존의 보편성이나 당위의 기준이 편파적이고 당파적임을 인식하게 하는 것, 페미니즘적 사고의 전환은 이런 것이다.  


평등의 기준이 경쟁, 승부, 부패, 우열의 작동 원리인 남성 중심의 사회인 한, 진정한 양성평등은 없다. 평등한 세계에 대한 대안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돌봄 노동이든,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든, 평등보다 책임감으로의 여성주의 윤리의 전환이든 다른 세계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53


말을 넘어서노동의 교환으로서 미러링이 내가 생각하는 조화로운 여성주의. 이제까지 여성주의는 성별분업에 반대해 왔지만, 사실, 성별 분업이 제대로만 지켜져도 여성들의 중노동은 경감될 것이다. 일부 남성만이 성 역할에 충실하고, 대다수 여성들은 공사 영역에서 이중, 삼중의 노동을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양성 평등이 아니다. 여성주의의 패러다임은 평등에서 돌봄, 차이에 대한 감수성, 사회 정의,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한 책임 등으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55


요즘 트랜스젠더를 배제한(?) 페미니즘이니 뭐니 한참 논쟁 중인데, 이분법적 경계를 드러내고 보편성의 기준을 까발리고 페미니즘이 주구줄창 이야기해 온 섹슈얼리티나 사회적 몸을 삶으로 끌어안은 존재를 배제하는 사고가 도대체 왜 페미니즘인지 모르겠다. 사람이야 다양하니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것도 페미니즘의 한 분파라는데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름 적절한 단어가 떠올랐는데, ‘양성평등혹은 양성평등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큰 범주로서 여성뿐 아니라, 작고 많은 소수자 특질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여 차별적 구조를 깨부수는이론적 틀이자 실천양식이기 때문이다.        


패러디로서 미러링은 반드시 위쪽을 향하여 더 큰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전의 쾌락은 더 많은 존재들과 만나는 계기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남성에 비하여 여성이 부정적으로 말해지고, 여성에 빗대어 소수자들이 차별 받기 때문이다. 그런 혐오의 연쇄에서 여성만 오롯이 빠져나올 수 없다. 큰 범주로서 여성뿐 아니라, 작고 많은 소수자 특질을 자기 안에서 발견해내어,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차별적 구조를 깨부숴야 한다. “ 150 


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키고 돌아보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결국 나답게살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준 공부는 뭐니뭐니해도 페미니즘이었다.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을 통해 나 자신과 세상을 조금쯤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