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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1. 29.



이 책은 내게 이 상태로 왔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인덱스가 붙어있는 모습으로.

여성환경연대에서 교육활동가로 일하시는 공병향 샘께서 이 책을 건네주시면 너무 훌륭해서 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는데, 나는 따라쟁이. 어제 친구가 전화해 "요즘 뭐 재미있는 거 읽었어?"라고 하자 이 책을 권하고 말았다능. 바로 그 심정으로 출근 시간 늦었는데, 노트북을 앞에 앉아 이 포스트를 쓰고 있다. 



바로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이다. 가난한 몸, 평등하지 않은 낙태금지법,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소송, 저성과자 해고, 전공의 근무환경,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기록, 성소수자 건강 실태, 재소자 건강 문제, 총기 규제, 가습기살균제 참사, 공동체와 건강 등(헉헉) 건강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들을 내리 훑어내린다. 죽비소리처럼 단호하고 엄격하지도 않고, '이생망'이나 '한국이 싫어서'처럼 절망적이지도 않다. 동시대를 살아내는 '기득권'으로서의 자신의 자리에서, 미안하고 가슴 아프고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진정성이 문장 하나하나에 오롯이 들어있다. 



이 글은 군대 밖에서 사적인 시간에 동성과 섹스한 A 대위의 유죄판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때 김승섭 교수가 발언한 내용을 담았다. 발언의 마지막은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게 비를 맞아야 한다"고 끝맺는다. 아, 정말. 어쩜 이렇게 말도 잘 해. 

이 책이 가진 최대의 장점은 첨예한 논쟁이 되는 사안들, "낙태를 허용하면 더 많은 생명의 죽음을 방치하는 거 아닌가", "총기가 있어야 우리 가족이 위험할 때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죄짓고 감방에 들어간 사람들 콩밥 먹이는 세금도 아까운데 왜 건강까지 챙겨야 해?", "세월호는 교통사고처럼 불행한 사고일 뿐이지 않은가?"라는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는 질문에, 더욱 합리적인 과학적 데이터를 들이대며 조근조근 반박한다는 것이다. 내가 "야, 총기가 있다고 보호가 될 것 같냐? 미국을 봐봐. 자기 방어보다 묻지마 총기 살해사건이 잊을만 하면 터지잖아"라고 반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에 설득 당했을 뿐더러 내가 생각하는 신념에 강력한 증거를 얻고 자신만만해진 기분이다. 

필라델피아에서 2003~2006년까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총기사고로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을 확인하고 검토한 다음, 이와 동시에 사고일을 기준으로 4일 이내에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대조군을 찾아내 조사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피해자 집단 677명과 대조군 집단 684명을 비교한 결과, 사고 당시에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총기사고를 경험할 위험이 4.66배 높았다. 또한 위험한 상황에서 총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경우만 뽑아 재분석한 결과 역시 총기사고 발생 위험이 5.45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총으로 무장하면 총을 가진 범죄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라는 미국총기협회의 주장이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272쪽)

둘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가능한 시카고와 잉글랜드/웨일스를 비교해보자. 시카고에 사는 범죄자는 잉글랜드/웨일스에 비해 살인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20배 이상 높고, 타인에 의해 살해될 확률은 시카고가 20배 이상 높다. (275쪽) 

이 거대한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할까요? 미국과 영국은 둘 다 개인의 총기 소유가 허용되지만, 규제의 정도는 매우 다릅니다. 영국에서는 1920년대부터 개인이 총기를 소유하려면 지역경찰이 발급하는 증명서가 필요했습니다. 1969년부터는 ‘자기 방어’의 목적으로는 총기 소유가 허가되지 않았고, 무차별 총기 살해사건 후 반자동 총기의 소유를 막는 등 총기 규제를 더욱 강화한 반면, 미국은 본인이 성인이고 그 지역 주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신분증만 보여주면 마트에서도 총기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276쪽)        

바로 이 책의 부제,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는 이렇게 증명된다. 

성소수자야 사회적 차별을 받으니까 아마 더 아프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 역시 과학적 데이터로 힘을 얻는다. 하버드 보건대학원의 브리타니 찰튼 박사 연구팀은 사회적 차별이 동성애자와 양성애자가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그들은 1989년에 시작해서 2년에 한 번씩 미국 전역에 거주하는 여성 간호사 11만여 명의 건강 상태를 추적•관찰한 설문조사에서, 1995년 2009년에 모두 응답한 6만 9,790명의 데이터를 따로 분석했다. 그 사이 미국에서는 매사추세츠주를 비롯한 14개 주 동성결혼을 비롯하여 동성 파트너와의 관계를 법적으로 보호한 반면, 나머지 주들은 동성관계를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1995년에 이성애자로 응답했지만 2009년에는 스스로를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이 동성 관계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된 지역은 그러한 법이 없는 지역에 비해 30퍼센트 높았다. 김승섭 교수는 한 논문을 인용해 이성애자에 비해 성소수자의 자살시도 유병률이 2.5배,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유병률이 1.5배 높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사회제도적 차별로 인해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이 아픕니다"라고 이야기한다. (195~196쪽)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나는 이 책의 결론이 "재소자 건강연구를 왜 했느냐"는 질문의 답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수준은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 그러니 어떻게 살고 어떤 공동체를 만들지는 함께 생각하고 함께 실천하자는 제안 말이다.    

재소자 건강에 관한 석사 학위논문을 국내외에서 발표할 때마다, 사람들은 같은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다른 취약계층도 많은데, 왜 하필 죄짓고 교도소에 있는 재소자냐고요. 저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유를 빼앗기로 감금생활을 하면서 죗값을 치르는 것이지 아플 때 방치 당하는 것까지 징역살이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고요. 또 어느 사회에서는 죄를 짓는 사람의 대다수는 사회에 있을 때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해 의료서비스로부터도 소외된 약자들이기도 하니, 교도소에서라도 그들을 치료해주면 좋지 않겠느냐고요. …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249쪽)



이 책의 마지막 구절, "우리 이기심을 뛰어넘는 삶을 살아요"를 읽으며 안면식도 없는 김승섭 교수에게 화이팅을 보냈다. 네넵, 우리 그렇게 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