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it book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1. 24.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부제는 '시선에 지친 우리의 이야기'이다. 책을 술술 읽히게 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사례를 읽으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나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지도 않고, 시선에 지치지도 않는데, 그건 바로 스무살 무렵부터 『달빛 아래에서의 만찬』 같은 책들을 잔뜩 읽어서 그런 거라고. 페미니즘이 아니었다면 적금을 깨서 필러 시술을 받고 값비싼 안티 에이징 화장품을 사는 중년을 맞았을 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네 자체로 아름답다'가 아니라 아름답든 아름답지 않든 네가 살고 싶은 데로 살아도 충분히 살 만하다는 사실이었다. '네 자체로 아름답다'는 광고들은 멋지다. 성차별적인 이미지로 여성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광고들보다 훨씬, 좋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남자를 타겟으로 '네 자체가 아름답다, 잘 생겼다, 멋있다'는 광고를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내면이든 외면이든 능력이든 나 자체로 '아름답다'고 스스로를 단도리해야 하는 대상은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나는 여성과 외모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작업, '아름다움'의 단어에서 젠더를 지우는 작업을 보고 싶다.

예쁘지 않아서, 옷을 잘 입지 못해서, '여자여자'한 스타일이 아니라 카페 알바 자리에서 떨어지고는 했던 스무살 초반에 내게 페미니즘이 말해 주었다. 알바에 채용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젊은 여성 채용의 가장 중요한 기준을 외모로 삼은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말이다카페 사장들은 알바 자리를 알아볼 때 같이 따라가준 예쁜 내 언니에게 나 대신 알바할 생각은 없냐고 묻고는 했다. 면접에서 떨어질 때마다 스스로가 덜 떨어진 인간처럼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살짝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길고 남방 대신 브라우스를 입는 등 '여자여자'하게 '변신'만 해도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적당히 '여성성'을 수행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여성성' 수행을 외모의 왕도로 삼는 사회적 기준이 얼마나 우스운지, '왕부치(다이크)'들에게 이 세상은 얼마나 폭력적일지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런 사회적 기준이 잘못이라고 세뇌하듯 말해주는 페미니스트들 친구들과 분노하면서, 상처 받되 오래 상처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거울을 너무 오래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 거울 밖에는 정말이지 멋진 여자들이, 피를 끓게 하는 부정의한 일들이, 나를 사랑해주는 따뜻한 관계들이 잔뜩 널려 있다.

이제 나는 체중계에 올라가지 않아도 지금 몸이 무거운지, 왜 정크푸드를 배 속에 꾸역꾸역 채워넣고 싶은지, 요즘 왜 몸이 찌뿌뚱하고 피부가 푸석푸석해졌는지를 안다. 그 해결책은 보톡스와 다이어트와 레이저 시술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보고 몸을 돌보는 것이다. 대단히 돈 드는 '건강관리'가 아니다. 외려 교통비, 난방비가 줄기 때문에 돈이 덜 든다. 왠만한 거리는 자전거를 타거나 걷고, 7층 이하는 계단을 이용하고, 실내 온도를 너무 춥거나 너무 따뜻하지 않게 유지하고, 하루 두 끼는 집에서 밥을 해 먹고, 퇴근 후 룸메와 동네 운동장을 걷거나 배드민턴을 치고, 가끔 린디합을 춘다. 혹은 자기 전에 2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어느 정도 먹어야 배가 부른지 알기에, 양에 구애받지 않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근 15년이 걸렸다. 완성형도 아니다. 늙어가는 내 몸과 화해하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이런 책들을 읽고 공부한다. 세상은 융단폭격처럼 내 몸을 부정할 강력한 이미지들과 태도를 쏟아붓는다. 여자들이 어떤 상태냐면 "트럭에 치이는 것과 살 찌는 것 중 어떤 것을 선택할까"라는 질문에 "트럭이 얼마나 크죠? 얼마나 큰 사고인가요?"를 먼저 묻는 지경이다.       

상징적 소멸(symbolic annihilation)은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이 미디어에서 사라져버린 정도를 표현하는 강력한 용어다. 뚱뚱한 여성은 가끔 상징적으로 소멸되고 유색인종과 노인층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엘르>>나 <<인스타일>같이 패션과 미용에 초점을 맞춘 인기 여성 잡지를 연구한 결과 잡지에 실린 여성 모델의 90퍼센트 이상이 백인이었고 80퍼센트 가량이 30세 미만이었다. 156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인생을 소진시키고 싶지 않다면, 혹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로 아우라를 쌓아온 윤여정이나 강경화처럼 멋지게 나이 드는 여자들이 많아지려면. 

연구에 따르면 페미니즘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페미니즘은 문제를 인식하게 하지만, 이후 어떻게 몸을 받아들이고 돌보고, 몸 쓰는 기쁨을 누릴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여성은 미디어의 여성상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 그러나 안타깝게도 페미니즘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고 한다. 다시 말해, 페미니즘은 미디어가 제시하는 미의 기준에 동조하지 않게는 해주지만 거울 앞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7쪽 


저자는 이렇게 해보자고 제시한다. 

1. 외모 관리 목록을 작성하자! 

(외모 관리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지 기록하자) 

2. 자신에게 관대해지자: 우리 몸을 더욱 잘 돌보는 방법은 몸에게 친절해지고 몸에 감사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3. 몸은 행동하는 존재라는 것을 명심하자 

4. 미디어에 신경 쓰자 

5. 대화를 살피자: 부정적인 바디토크를 멈추자 (여성과 외모를 멀어지게 하자.)

6. 지갑으로 반대 의사를 표현하자 


책에 제시된 몸 워크샵의 예시

외모 이야기하지 않는다. 몸으로 느끼는 즐겁고 다양한 활동을 생각하게 함으로써 몸과 화해하고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연습을 한다.

<섹스앤더시티> 캡처 장면: 성형외과에 가서 상담받은 사만다의 모습


일주일 간 바디토크를 안 하기를 몸소 실천해보면 "예뻐졌네, 살 쪘네, 화장 잘 받았네, 부었네" 등의 바디토크를 얼마나 자주, 얼마나 무심코 해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처럼 저자가 제시한 6가지 방법은 바디토크를 멈추고 몸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유효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 방법 외에 사회적인 노력은 뭐가 있을까. 노동시장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 사회적으로 외모 차별이 가득한데 개인이 알아서 변하기만 하면 된다고? 

미디어 리터러시 및 "모든 몸에 대한 존중"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영국과 호주에서는 인권교육 중 하나로 외모와 몸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육은 고등학교 이전에 실시되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소녀의 경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의 내면화와 섭식 장애 발생을 줄여준다. 그러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서는 별 효과가 없다. 따라서 몸 교육은 이른 시기에 자주 교육되어야 한다. 


관련기사: 일다 '윤다온' 님의 글  

http://www.ildaro.com/sub_view.html?n_name=%C0%B1%B4%D9%BF%C2

'외모품평이 인사를 대신하는 학교, 이대로 좋은가'

'다양한 몸 존중 실현을 위한 각국의 노력'

'몸 이미지 교육은 건강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 

(캬~ 제목만 읽어도 걍 읽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줄줄이 드는 기사 아닌가.)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호주에서는 이미지가 포토샵을 거쳤거나 그래픽적으로 조작됐음을 알리는 경고문을 싣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저자는 포토샵 보정 경고문이 오히려 보정된 이미지를 더욱 이상화하고 그다지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담배 포장지의 폐암 사진처럼 ‘비포’ 이미지가 없는 한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포토샵 법'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닝겐'라고 칭송받는 광고 이미지가 실제가 아니라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것을 알리고, 그러한 이미지들이 얼마나 많은지, 젠더별로 차이가 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생리대 전성분표시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화장품과 생리대 성분이 바로 안전해지지는 않지만, 성분에 대해 소비자가 관심을 갖고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기본적인 알 권리이기도 하고 말이다. 포토샵 법도 전성분표시제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더불어 성형광고 규제가 필요하다. 비포와 애프터가 나온 성형광고를 보며 나는 아직도 깜짝 놀란다. 그런 광고가 지하철 역에 한 가득, 버스 광고판에 대문짝처럼 실려 있는 사회에 산다는 자체가 절망스럽다. <섹스앤시티>의 사만다가 성형외과 의사가 정육점 고기처럼 자신의 몸에 그어놓은 빨간 펜에 놀라는 심정이랄까. 광고 자체가 참으로 '휴밀리에이팅'하다. (모욕적이라는 우리 말로는 전달이 안 되는 느낌적 느낌이야. -_-)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 다른 사람의 몸에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이 외모강박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공유하고 싶다. 타인의 죽음이나 고양이의 로드킬보다 당장 내 몸의 치통이 더 중헌 것이 몸을 가진 유기체의 한계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을 벗어나 다른 존재의 고통을 내 몸의 그것처럼 여기는, 그 가없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된다. 삶은 의미를 갖는다. 페미니스트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 공감의 선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사랑의 한계라고 했다. 페미니즘이 나를 거울 밖으로 끌어낸 것도 세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 다른 사람의 존재에 가닿게 해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외모 강박은 우리를 세상에서 멀어지게 하고 연민을 메마르게 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한다.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연민을 쌓으면 연민 가운데 일부는 우리 안에 머물면서 수치심과 자기 회의를 희망과 확신으로 바꿔놓는다. 329쪽 

  

P.S 책에 따르면 핀란드에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다이어트를 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몸무게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306쪽)고 한다. 외모에 대한 강박과 다이어트가 장기적으로는 건강은 물론 살 빼기에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저자 TED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