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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후쿠시마 내사랑 그리고 외로운 도시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3. 5.



사진 출처 

http://foff.kr/%ED%9B%84%EC%BF%A0%EC%8B%9C%EB%A7%88-%EB%82%B4-%EC%82%AC%EB%9E%91



<후쿠시마 내 사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외로운 도시』를 겹쳐 읽었다. 관계가 망가지고 존재를 매달렸던 타인에 버림 받고 스스로를 잃을 지경에 처한 여자가 낯선 도시에 내쳐진다. 아니, 스스로를 낯선 도시에 유배한다. 존재의 의미가 바스러지는 와중에도,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가를 묻기 위해서는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익숙한 장소는 지옥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어이할 바 없이 마음을 후려치니까. 그래서 외로운 여자는 외로운 도시에 머문다.     


<후쿠시마 내 사랑>의 독일인 마리’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로 상처를 덮기 위해 후쿠시마 임시 보호소에 자원봉사를 왔다. 그 속에서도 문화적 단절을 겪고 소외 당하자  그래요, 나는 싸가지 없고 막돼 먹은 독일 여자라고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곳에 있으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고백한다. 자신만의 고통에 갇혀 있던 어리고 말갛던, 그래서 그곳에 잔인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는 보호소에 남아있던 마지막 게이샤, 짖궂고 현명하고 상처 입은 사토미’를 만난다. 그들은 방사선 제한구역에 위치한 사토미의 폐허가 된 집에 동거하면서 마음의 용기를 얻는다. 상처가 사람을 성숙시키듯, ‘이 폐허를 응시할 때삶이 통째로 무너져버린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 과정이 섧게 시려서 이 재난 코미디 앞에서 울다가 웃었다.






<후쿠시마 내 사랑>에는 여태 살아온 온 생이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 묻혀버린, 이 세계가 무너져 내린 곳에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침마다 따뜻한 차를 끓여 공손하게 양 손으로 한 모금씩 마시는 일상의 의례다. 사토미와 마리는 찻상을 사이에 두고 일상을 지탱한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아내야 한다는 듯


『외로운 도시』에서 이 일상의 의례를 대신하는 것은 뉴욕을 살다간 외롭고도 아름다웠던 예술가들의 흔적이다. 영국의 레즈비언 가정에서 성장한 저자는 사랑하는 타인과 함께 하기 위해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왔지만, 버림 받은 채 낯선 뉴욕에 남겨진다. 온전히 홀로 견뎌야 하는 그 시간을 그들의 작품과 생을 쫓고 그 아픔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지옥에서 빠져 나온다. 폐허를 외면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응시한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부서진 상태였다. 그런데 심술궂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일체감을 회복한 것은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또는 사랑에 빠짐으로써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만나봄으로써, 이 연결을 통해서, 고독과 갈망은 그 사람이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391





심지어 앤디 워홀의 화려한 실크스크린도 고독과 소통의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마음이 차라리 기계면 좋겠다는 처연함이 서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시의 외로움이 스며있는 에드워드 호퍼나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작품이 아니라도 말이다.


"여러 명의 앤디는 실크스크린 위의 여러 명의 마릴린과 엘비스처럼 원본과 독창성에 대한, 유명인사들을 출현시키는 복제 절차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자신을 여러 명으로 또는 기계로 변신시키고자 하는 욕구는 또한 인간적인 감정, 인간의 욕구, 그러니까 소중히 여겨지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욕구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구이기도 하다. “기계는 문제를 덜 일으킵니다. 내가 기계라면 차라리 좋겠어요, 안 그래요?” 그는 1963 <타임>지에 이렇게 말했다." 92





뉴욕에 젖어 들었던 외롭고 황폐하고 아름다웠던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은 마음의 폐허를그리고 사회의 폐허를 응시하게 해 준다저자인 올리비아 랭은 1980년대 에이즈로 죽어간 예술가들의 쓸쓸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깊게 풀어낸다고독은 관계에 버림 받고 사회에 버림 받을 때 생긴다관계는 새로 시작될 수 있지만 사회의 매몰찬 배제는 치유되지 않는다특히 매카시 광풍처럼 불어 닥친 1980년대의 에이즈 낙인은 소수자의 몸과 관계를 후쿠시마를 강타한 쓰나미처럼 쓸고 지나갔다. 


"뭔가 살아 있는 것뭔가 살아 있고 아름다운 것이 사회의 메커니즘에사회의 기어와 철로에 붙잡히고 파괴된다. … 그저 슬픔이나 연민 때문이 아니다그건 용기 있고 섹시하고 급진적이고 까다롭고 엄청나게 재능 많은 남자가 서른일곱의 나이로 죽었다는 사실이런 종류의 죽음이 대량으로 허용되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권력을 쥐고 있는 어느 누구도 이 기차를 멈추고 그 말을 제 때 풀어놓아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297


배제된 자의 고통과 외로움은 저항으로 승화된다에이즈로 사망한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백악관에 뿌리는 유골운동 ACT UP은 처연하고도 강렬하다고독을 뚫고 나오는 연대와 저항의 몸짓그들의 죽음은 세상을 향해 쓰는 대자보가 되었다. 


"일종의 거대한 규모의 정치적 장례식을 치르면서 워싱턴 행진의사당 계단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골을 갖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 그들은 백악관을 향해 행진했고잔디밭에 재를 부었다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재도 연인 톰의 손으로 뿌려졌다그것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가슴 찢어지는 광경절대적인 절망의 몸짓을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동시에 그것은 강렬한 상징적인 힘을 가진 행위였다. … 그리고 그는 미국의 절대적인 심장인 백악관 잔디밭에도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마지막까지 세상에서 배제되기를 저항한 끝에." 301~302




에이즈로 죽어가던 피터 후자를 찍은 데이비드 워나로위츠의 작품


워나로위츠의 죽음이 저항의 예술로 승화했듯 그녀의 고독은 외롭던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서서히 받아들인 만한 것으로 승화한다결핍이욕망이관계가 거절당하고 불행에 빠진다 해도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외려, 위로 받는다절망하지 않는다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고독은 본래 공감을 유발하는 성향은 없지만워나로위츠의 일기와 클라우스 노미의 목소리처럼 워홀의 그림은 나 자신의 고독감을 가장 많이 치료해주었다. … 결핍이욕망이만족감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불행을 경험하는 것이 뭐가 그리 수치스러운가?" 389~390


누군가를 상실할 때나의 세계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릴 때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가를 묻고 싶을 때 이 책이 다시 보고 싶을 거 같다보통 다 읽은 책은 누군가에게 주는데 이 책은 외로운 도시에 홀로 유배될 때를 대비해 지니고 있어야지. 부디 그런 시간들이 오지 않기를 비는 부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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