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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1. 18.

진짜 여자가 되는 법: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괴짜 칼럼니스트의 여자 생태보고서 

(케이틀린 모란 Caitlin Moran)




페미니즘이 다시, 핫하다. 20년간 이토록 멋지고 전복적인 여성주의가 왜 자기중심적이고 꼰대 같고 시대에 뒤처진 고린내 나는 취급을 받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다음 날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며 눈물을 흘렀을 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미제라블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길라임'씨도, 트럼프 씨도 대통령이 되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못 일어나랴)  

 

내가 대학 등록금을 내고 건진 것은 페미니즘 교지를 통해 만난, 페미니즘에 경도된 멋진 여자들의 네트워크였다. 만약 여성주의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의 대학시절은 어항 속 금붕어 똥만큼이나 시시했을 거다. 당시 젊은 여성주의자들은 제도 변화를 이끌어 낸 대한민국 제 1세대 여성주의자들의 은혜를 뒤집어 쓰고서 그들과는 다른 문화적 전복을 꾀했었다. 글이 쏟아지다 못해 언니네, 쥬이상스 등이 생겼고, 빅우먼 패션쇼, 월경 페스티발, 대안생리대 운동 등이 번성했고, 여학생위원회와 총여학생회에서 학내 성폭력사건을 드러냈고,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는 것이 교양처럼 여겨졌다. 바야흐로 페미니즘 부흥회(?) 시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페미니즘을 통해 제 2의 사춘기를 겪으며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조금이나마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감사하다.


그리고 다시 페미니즘이 핫하게 귀환했다. 젊었던 시절 내가 만났던 쿨한페미니즘이 아니라 환장하리만큼 미친 현실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들이 기를 쓰고 매달리는 생존의 언어로 말이다. 우리는, 여성들은 페미니즘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슬금슬금 목소리를 내고 강남역 살인사건의 슬픔을 견뎌낸다. 페미니즘은 한국여성들의 생존을 통한 도구이자 위로의 장이 되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한해 한해 최악의 판매고를 갱신하던 출판계에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우수수 나오기 시작했다. 쌍수 들어 환영한다. 특히 68혁명 때 활동한 드센 년들의  미친성명서들이 번역되어 책으로 나오다니 이런 황송한 일이! (제목은 <<페미니즘 선언: 레드스타킹부터 남성거세결사단까지, 드센 년들의 목소리>>) 


그럼에도 몇 년 전 비 오는 날 길에 나온 지렁이처럼 조용히 나왔다가 사라진 멋진 페미니즘 책이 아쉬워 이렇게 소개한다. 아마 요즘 나왔다면 알라딘 뉴스레터에, 일간지 책 소개 지면마다 실렸을 건데 타이밍을 잘못 탔다. 개인적으로 분홍색 책 표지로 눈길을 잡는 <<나쁜 페미니즘>>보다 훨씬 쉽고 훨씬 와 닿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섹스앤더시티> 이후 미드를 안 보는 나는 <<나쁜 페미니즘>>에 실린 텍스트들이 너무 미국적이라 불투명 유리창에 비친 실루엣 보듯 감이 잘 안 오고, 그래서 좀 지루했다.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은 영국 저널리스트가 쓴 거고 영드는 개뿔도 모르지만, 진짜 진짜 신나게 읽었다. 아니 이 작가의 입심은, 아니 글빨은 레알 사이다’! 그런데 수다 떠는 듯 글을 맛깔 나게 써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 토크쇼를 보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어렵고 심각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스탠딩 코미디만큼 깔깔 웃을 수 있는 페미니즘 입문서가 될 거고, 여성혐오 발언을 내뱉는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다가 뒤늦게 혼자 열불 터지는 언니들의 입을 터지게 해줄 실용서가 될 거고,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이 우리의 삶을 긍정하게 만들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론임을 알게 될 거다. 우리 삶을 망치러 온 우리 삶의 구원자, 페미니즘 같으니라고. 문제는 타이밍과 네이밍(제목이 나쁜 페미니즘처럼 섹시하지가 않잖혀)에 있다


(-> 아니! 블로그 포스팅 하니라고 찾아봤더니 2016년에 <<아마도 올해의 가장 명랑한 페미니즘 이야기>>고 제목이 수정돼 개정판이 나왔네! 출판사에서도 네이밍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리신 듯 ㅋㅋ)



책을 열면 생리, , 가슴, 브래지어, , 성희롱, 사랑, 스트립 클럽, 결혼, 스타킹, , 아이, 낙태, 성형수술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고 강력하고 논리적인 동시에 위트 있고 쿨한 그녀의 삶이 펼쳐진다. 음모레이디 가가, 벌레스크와 스트립 댄스의 차이, 프리다 칼로의 일자눈썹, 아기네스 딘은 모를 브래지어의 느낌 등 아, 정말로 재미 있다. 그리고 <<나쁜 페미니즘>>이 전하는 매력적인 메시지, 강박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에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리는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은 분홍색을 좋아해도 되고, 가사 도우미를 고용한 중산층 전업 주부여도 되고, 자동차 범퍼에 헬로키티를 붙여도 되고, 부르콰를 뒤집어 써도 된다고 토닥거린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 여자가 한 물 갔다고 여겨지는 30대 중반부터 오히려 여성들은 자신감을 갖게 되고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한다100% 동의한다. 단지 당신이 그 시간들을 보톡스와 필러에 쓰지 않고 괴짜칼럼니스트의 책을 읽으며 페미니즘에 투자한다면 말이다.




나는 여성들이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깨진 창문과 같은 사건들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쓰레기 같은 모든 가부장적 일들에 대해 불관용 정책을 도입하고 싶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말발굽 아래, 심지어는 당나귀 발 밑에 몸을 던질 필요도 없다.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며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뛰어들어 사명한 에밀리 데이비슨이 전폭제가 되어 1918년 영국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다.) 우리는 그저 크게 뜬 눈으로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한 뒤, 그저 그 일을 두고 웃음을 터트리면 된다. 상황을 정확히 지적하고 !”하고 코웃음을 쳐야 한다. 27~28


이 모든 일들이 대단히 섹시하게 보이거나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나 해변에서 누드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건 단지 제모가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상적으로보이는 다리와 얼굴, 그리고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타구니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브라질리언이라는 완곡한 단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나는 이를 파산할 정도로 돈이 많이 들고, 가렵고, 어린아이처럼 창백한 느낌을 주는 성기 만들기라고 부르고 싶다. 72


브라질리언 왁싱을 반대하는 당신은 겨드랑이는 제모를 하나요? 다리는요? 눈썹은요? 눈썹은 좀 뽑으신 것 같은데요. 콧수염을 또 어쩌고요?”(페미니스트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척하며 공격해대는 질문)… 코미디언 에디이자드는 자신의 의상도착에 대해 모두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매일 드레스를 입겠다는 뜻은 아니다. 남자도 드레스를 입고 여자도 털을 기를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우리의 미적 범주 역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일자 눈썹 같은 것? 81


여성주의의 목표는 어떤 특별한 여성들을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옳거나 그른 유형의 여성들이 존재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주의는 너무나 오랫동안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불결한 여성들, 멍청한 여성들, 헐뜯는 여성들,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여성들, 집에서 아이나 보는 여성들, 자동차 범퍼에 헬로 키티 스티커를 붙인 여성들,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건 말건 구급차 안에서 섹스를 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여성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에. 하지만 이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진정한 여성주의는 당신의 모든 면을 받아들일 것이다. … 당신은 여성주의인가? 하하하! 물론 당신은 여성주의자다. 128~129


아이의 열을 내리듯, ‘뚱뚱하다라는 단어에서 열기를 제거해야 한다. 뚱뚱하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이며, 어째서 21세기의 여성들에게 가장 커다란 관심사가 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뚱뚱하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뚱뚱하다와 뚱뚱하지 않다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드레스를 입고 계단 세 칸을 뛰어오를 수 있다면, 당신은 뚱뚱한 것이 아니다! 161쪽 


그렇게 해서 35세가 될 때까지, 나는 느린 속도로 내 몸을 두뇌만큼이나 좋아하게 되었다. … 내 몸은 빅토리아 베컴의 우스꽝스러운 일들로 점철된 인생을 조롱하기에는 여전히 누추하지만, 어쨌거나 나와 내 몸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 잘 어울리고, 서로를 존중하고, 베이컨을 얼마나 더 먹어야 적당한지에 대해, 엘리베이터 대신 걸어서 계단을 올라가야 할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163 


어째서 신지 않는 신발들이 생기는 걸까? 내가 지은 13년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여자들은 모두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었을 때에 알게 된 비밀스러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건 세상에서 힐을 신어야만 하는 사람은 단 열 명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여섯 명은 여장 남자다. 나머지 우리는 그저 포기할 필요가 있다. … 내가 디자이너 신발에 500파운드를 날리는 일이 있다면, 그 신발은 첫째, 레이디 가가의 배드 로맨스 안무에 맞추어 춤을 출 수 있어야 하고, 둘째, 갑자기 나를 쫓는 살인자를 피해 달아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신발에 요구하는 최소조건은 바로 이것이다. 287~288


여자들이 한 물 갔다고 여겨지기 시작하는 때는 30대 중반부터이다. 이 시기에 여성은 뚜렷한 노화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적금을 해약하고, 보톡스와 필러에 돈을 쏟아 부으며 다시 서른 살처럼 보일 수 있도록 애를 쓴다. 또한 나는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여자들이 대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마침내 끔찍한 20대를 보내고 난 뒤 당신은 30대에는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만을 고대한다. 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