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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스페인 마드리드] 국뽕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델디아 식당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0. 30.

여행을 하면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알게 된다고들 한다. 그렇다. 나 역시 내가 가진 한계,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나의 취향, 나의 고집을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정주적이고 정적이고 한국적인 사람인지 6개월 간의 여행을 통해 빼도 박도 못할 만큼 깨달았다. 소싯적 치앙마이 한 켠에 팥빙수 가게를 열고 앞으로 철마다 도돌이표 되는 한국의 겨울 따위는 겪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정말 어릴 때는 자기 스스로를 잘 모르는가 보다. 결국 나는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만큼이나 한국이 때때로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였다. 특히 암내처럼 몸에 진득하게 베어버린 국뽕입맛. 어딜 가도 맛있게 먹는 노마드들과는 달리 이탈리아만 빼고서 동서남북유럽 모두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하도 입맛이 없다보니 입맛이 없으면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잘 먹지 못하니 기운이 없고 기운이 없으니 뭘 봐도 시큰둥하고 그렇게 어거지로 먹으며 몇 주 지나자 여행이고 나발이고 인생이 우울해져 버렸다. 결국 기운을 차리고 다시 별 쓰잘데기 없는 온갖 일상이 호사가 되는 여행다운 여행을 즐기게 된 것은, 한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이틀 연속 먹고 난 후였다. 아아, 이런 것은 어떻게 개조가 안 된다. 한국이 싫다 한들 무의식 중에도 한국어로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지금도 루앙프라방에서 12,000원하는 김치찌개를 시켜먹고는 감격하는 중이다. 아아 나란 여자.


그래서 미식가들의 나라인 스페인, 그 중에서도 유난히 미식가들이 많다는 산베스티안에서도 입맛은 말라가기만 했다. 맛은 없어도 배는 자동으로 고파지니, 해산물 빠에야를 종이 씹어먹는 느낌으로 우적우적 삼켜 넘겼다. 전라도 말로 염병, 지랄하고 자빠졌네지만, 입맛이 국뽕인 것을 낸들 어쩌리. 나도 여행가서 이국적인 거 맛봄시롱 자랑하고 싶다고


이런 내 입맛을 돋운 유일한(이탈리아 제외) 현지 식당을 마드리드에서 만났다. 스페인에 가면 다들 오늘의 백반격의 메뉴 델 디아(Menu del Dia)를 먹는다. 에피타이저, 메인 디쉬, 그리고 디저트로 이루어진 삼 박자의 세트임에도 가격은 8~14유로로 단품 메뉴 하나 값밖에 안 한다. 무엇보다 고기 요리가 넘쳐나는 유럽에서 삼 박자 골고루 비육식 메뉴를 시켜 먹을 수 있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메뉴 델 디아의 식당 이름은 Restaurante La Sanabresa



식당 전경


메뉴델디아 메뉴



메뉴 델 디아의 가격은 평일에는 11유로, 주말에는 14유로다. (2016년 여름 기준) 평일에는 메뉴 델 디아를 고르면 상그리아를 무료로 선사한다. (주말에는 상그리아가 아닌 다른 음료를 주는데 상그리아가 훨씬 맛있다.) 메뉴 델 디아를 시키면 첫째로 에피타이저를, 둘째로 메인 음식을, 셋째로 디저트를 고를 수 있다. 메뉴판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각각 한 개씩 총 3개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가 시킨 에피타이저는 버섯마늘요리(mushrooms with garlic), 아스파라가스(grilled wild asparagus), 구운 고추(peppers roast)였다. 정말 정말 추천. 유럽에서 이렇게 입맛이 행복한 적이 없었다. 두 번째 메인 요리(2nd plato)는 송어구이(grilled trout)를 시켰다. 역시나 맛있었다. 다른 메인 메뉴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종류인데 알다시피 고기로 만든 음식이 맛 없기도 힘들다 (이게 채식주의 지향자가 할 말인가! 하지만 이런 마음이니 결국 채식주의를 포기한 것 아니겄으 ㄷ ㄷ ㄷ). 마지막 디저트로는 구운 바나나(platano frito con nata)였는데, 두 번째 이 식당에 갔을 때도 다른 디저트 메뉴를 포기한 채 이것만 시켜 먹을 정도로 맛있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돼지 비계보다 부드럽고, 무엇보다 악마처럼 달콤하다.



버섯마늘요리


이거스 뭐였드라, 기억이 가물가물


아스파라거스


구운 고추와 참치 (이거 넘나 맛있음)


무료로 나오는 상그리아


구운 바나나 디저트 (아, 예술이야!)


이렇게 먹고 나면 마구 배가 불러오면서 동시에 마구 행복해지는데, 이 기분 그대로 근처의 레티로 공원으로직행해 나무 그늘에 누워 한숨 자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마드리드 시민들은 레티로 공원의 땡볕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나는 해를 피해 그늘에 살포시 눕는다.(이것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 기질!) 깔 것 없이 그냥 누워도 꺼림칙하지 않은,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잔디가 널리 깔려 있다. 레티로 공원은 대략 지도의 면적으로 어림잡아 마드리드 도심의 족히 20%를 차지할 정도로 크나큰 공원이다. 이런 공원이 펼쳐진 도심도, 그리고 맛난 식당도 마드리드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유럽을 다시 방문한다면 제 일 순위는 역시 스페인! 


보나베띠 앤 본 보야지!             


공원 전경 (궁전인 줄 알겄음)


공원에서 배도 타고


마드리드 시민의 공원 일광욕


마드리드 지도에서 오른쪽의 녹색 부분이 바로 레티로 공원 면적

위치

https://www.google.co.kr/maps/place/La+Sanabresa/@40.412588,-3.700707,17z/data=!3m1!4b1!4m5!3m4!1s0xd42262a0f6ba44b:0x5516db96a69ce67e!8m2!3d40.412588!4d-3.6985183


매주 일요일 휴무 (화요일 시간 영업시간 변경 가능)

오후 1:00~4:30

매일 오후 4:30~8:30 시에스타 (브레이크 타임) 

저녁 8:30~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