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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캄보디아 씨엠립] 잔인한 세상의 잔혹한 이야기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1. 9.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목록 20위 안에는 들 것 같아서 나도 한번 감행해봤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기! 나를 못 믿으시는 부모님과 부모님과 취향이라고는 도통 맞지가 않는 나란 딸이 만나니 자유여행이 순탄할 리 없을 듯. 그래서 부모님 이기는 자식 없다며 (효녀 코스프레!) 난생 처음 패키지 투어를 택했다. 처음에는 패키지 투어가 내키지 않아 부모님께 자유여행을 권했으나 들려오는 것은 콧방귀뿐이었다. 아주 야무지시고 똑똑하시게도 패키지 투어 가격을 알아보신 후 도대체 자유여행은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프로그램은 뭔데, 이렇게 따지시는데 '내사마' 수가 있나. 나야 무료해서 죽을 만큼 카페서 죽치고 나서야 슬슬 관광지를 찾는 비효율적 여행자가 아니었던가. 물론 부모님 여행경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도 없다. 또한 우리가 가기로 한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 와트 유적지는 어차피 가이드나 운전사를 대동하고 가는 곳이라 차라리 패키지 투어가 낫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3 5일의 패키지 투어는 내 예상보다 훨씬 알찼다. (나 지금 여행사 후원 받아 광고 블로그 작성하는 거 아님 ㅋㅋ) 지금껏 내가 듣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도리 넘치고(피곤하면 일정 바꿔서 낮에 호텔에서 쉬는 시간도 주고), 소규모 가족관광에, 매끼 식사도 폭풍흡입 할 만큼 맛있고, 뭐 사라는 쇼핑 압박이나 옵션 강요도 별로 없고, 무엇보다 한국인 가이드의 설명이 정말 꼼꼼하고 케어가 세밀해서 속으로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아니 비행기 값도 안 되는 패키지 투어 비용으로 어떻게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단 말인가. 700년 전 기술로 고작 37년 만에 2~12톤의 돌덩이 250만 개를 40킬로 밖에서 실어와 3층으로 올린 것도 모자라, 그 돌덩어리에 여백 없이 조각을 새긴 앙코르 와트의 기적만큼이나 믿지지 않았다. 뭐 자유롭긴 했다만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써가며 8인용 도미토리와 컵라면으로 때웠던 내 여행은 뭐였던가! 물론 우리가 운이 좋아 좋은 가이드를 만나서 그럴 수 있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께서는 자식과 시간을 보낸다는 자각이랑 잊으신 채 여행의 행복을 위해 오랜 친구 부부 2쌍을 대동하고 나타나셨다. (이런 멘탈 때문에 부모님이 존경스럽다는 거) 그래서 나는 70대의 부부 3쌍에 꼽사리 낀 한 명의 떨거지가 되어 총 7명이 여행을 같이 했다. 그렇게 ‘으르신’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도 충분히 즐거웠고, 생각보다 한국의 노년 부부들이 참 교양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과하지 않은 적정수준의 팁을 주시고 양보도 잘 하시고 중국인들처럼(?) 시끄럽게 굴지도 않으시고, 무엇보다 말은 안 통해도 현지인들을 좋아하시고 상냥하게 대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귀 쫑긋, 눈 반짝하며 앙코르 와트와 킬링 필드에 대한 이야기를 새겨 들으시더니 호텔에 돌아와 그날 들은 내용을 메모까지 하셨다. 헐, 나보다 훨씬 성실한 여행자셨고, 내가 함께 여행한 친구들보다도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젊어서 해외여행 기회가 없었던 만큼 순수하게 해외 여행을 귀하고 감사하게 즐기셨던 것 같다.





충분히 좋아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마지막 날인 세 번째 날은 상황버섯이니, 꿀이니, 라텍스니, 게르마늄이니 여러 곳의 가게를 순례했다. 들리는 가게마다 배낭여행객은 한 번도 접하지 못한 가격에 동공 지진 나는데, 그제야 확 깬다. 씨엠립의 나이트 마켓과 펍 스트리트에서는 찾기도 힘든 가격대가 펼쳐지는데, 미화 50달러는 시작가고 1,000 달러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야 5달러 물건에 떨며 2.5달러로 깎아달라 사정하는 가난한 배낭여행객 사정이고, 부모님들은 모처럼의 해외여행에서 좋은 선물이나 건강한 천연식품을 사실 의향이 충만하기 때문에 너무 강요하거나 애초에 살 생각이 없는 품목만 아니라면 오케이.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께서는 천연 꿀이나 화분, 바디오일 등을 평소에 사용하시므로 캄보디아에서 그런 물건들을 구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질이 나쁜 물건을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팔면 '아니올시다' 싶겠지만, 내 눈에는 비싸긴 해도 나름 제품 품질들이 꽤 괜찮아 보였다. 만약 한 가족당 30~40만원씩(!) 물건을 구입한다 쳐도 총액으로 따지면 자유여행 비용으로 여행도 하고 (필요한) 물건도 사므로 뭐 좋지 아니한가. 


정작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은 패키지 여행 프로그램이나 가게 방문이 아니었다. 너무나 단순한 진리라 말하기에 나이브하다만, 가난한 나라는 좋은 것들을 뼈째로 다 팔아먹는구나 하는 슬픈 자각,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 목숨 줄이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 되는 현실이었다. 뽕나무에 자리를 잡고 나무의 기를 빨아들이며 성장하는 자연산 상황버섯을 캐기 위해 지뢰가 묻힌 숲에 발을 들여야 한다. 다행히 노동자가 아니라 군부와 손을 잡고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사실 호치민 트레일이 지나갔던 라오스와 캄보디아에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이 떨어졌고, 여전히 이 폭탄들(UXO)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좋다는 상황버섯은 기본 40년 이상 시간을 묵힌 것들인데, 통째로 잘려 나와 돈 있는 사람들에게 팔린다. 세계에서 영아 사망률이 가장 높고 평균 수명이 56세 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자생한 건강식품이 그런 것들 없어도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가 넘쳐나는 나라의 사람들에게 바쳐진다. 돈이란, 우리를 제 3세계에서 불로초 같은 것을 구하는 진시황으로 만들어준다


더욱 내 마음을 어지럽혔던 것은 꿀 가게에서 일어났다. 천연 꿀을 따기 위해 캄보디아 사람들은 150미터가 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말이 150미터지 100미터 달리기의 거리만큼을 나무에 매달려 올라간다고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방영할 홈쇼핑 광고를 위해 제작했다는 천연 꿀 채취 현장은 정말이지 ㄷ ㄷ ㄷ. 그 동영상이 한 업체에서 거절당했는데, 바로 꿀 담는 통이 허름한 ‘바께스’ 통이었기 때문이다. 예쁘게 제작된 대나무 바구니 같은 통에 꿀을 담는 모습으로 동영상은 다시 제작되었다. 그런데 바께스 통이 문제라고? 꿀 따는 노동자는 천으로 얼굴만 둘둘 감았지 벌로부터 보호받을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꿀 가게에서는 이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벌에 쏘여봐서 실명 위험이 있는 눈만 아니라면 벌에 쏘여도 문제 없다는 말을 했다. 동영상에는 자신들의 먹거리를 침탈당한 엄청난 수의 벌들이 그들의 몸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니 벌에 쏘이다 보면 벌침에 면역력이 생긴다고? 그런 말을 할 시간에 보호구를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벌 쏘이는 일이 약과이긴 했다. 150미터의 나무 위로 올라간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로프라던가 나무 아래에 쳐진 그물망 같은 것이 없었다. 설마, 하며 내 눈을 의심하는 순간 이런 말을 들었다. “이 천연 꿀이 비싸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친구들은 목숨 걸고 이 꿀을 따는 겁니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거에요.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여기 이 친구 보이시죠? 이 친구가 저번에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운 좋게도 물 속으로 떨어져서 이렇게 다시 일한답니다.” 우리에게 그들의 목숨은 깊은 숲 속, 500년 된 나무 위에 매달린 천연 꿀의 야생성을 입증하는 것이자, 그 꿀의 가격을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이토록 100% 천연 꿀이니 몸에 얼마나 좋겠어요. 100세 인생이니 어르신들 여행 계속 다니시려면 이렇게 좋은 것을 잡수어야죠, 이런 말들. 더 비싸도 좋으니 제발 로프 등의 안전 장치를 달아달라고, 이렇게 남의 목숨 우습게 알면 우리 모두 벌 받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의 목숨이 걸려있었을 꿀을 세 개 가서 부모님들께 선물해드렸다. 다들 꿀이 필요했고, 수많은 여행을 거치면서도 부모님 선물 한 번 사가지 않은 딸로서 원하는 물건을 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젖어, 아니 자기연민에 빠져 이런 글을 쓴다. 이 잔인한 세계에 가담하여 찍소리 한 번 못 냈구나. 우리는 정말이지, 참 잔인하다. 여기까지 썼는데... 호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쿠알라룸프 공항에서 급기야 '미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기사를 보고야 말았다. ㅠ.ㅠ 아놔...  잔인한 세상에 잔혹한 이야기가 펼쳐지는구나... 세계적으로 혼이 비정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