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살림이야기>에 실린 독일 생태공동체 탐방기를 읽으며, 나도 이런 공동체들 탐방 가서 영감 팍팍 받고 싶다는 욕심이 났었다. 그 기사에 소개된 두 공동체 중 베를린에 있는 ‘우파 파브릭(ufa Fabrik)’에 놀멍쉬멍 다녀왔다.
>> 살림이야기 기사 (허핑턴포스트) http://www.huffingtonpost.kr/salimstory/story_b_8927088.html
우파 파브릭은 연간 방문객 30만명을 자랑하는, 대안을 찾는 사람들의 귀감처럼 여겨지는 곳이지만, 게을러서 사전 연락을 하거나 프로그램에 맞춰 가지는 않았고(그럴 리가!), 카페에서 차 한 잔 할 생각으로 다녀왔다. 우파 파브릭의 장점 중 하나가 그렇게 헐렁하게 다녀와도 될 만큼 베를린 도심 언저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오죽하면 우파 파브릭의 별칭이 도심 속 오아시스일까. 전철 타고 갔다 휘적휘적 동네를 돌고 카페에서 유유자적 앉아 있다가 돌아와도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
마을 입구에 있는 안내 센터, 투어도 신청할 수 있다.
우파 파브릭 간판
마을 지도
마을 전경
이렇게 대안적 공동체가 유럽의 핫한 도심에 떡 하니 자리잡고 있는 까닭은 바로 동서 베를린의 분단 때문이다. 우파 파브릭 부지에는 원래 베를린의 한 영화사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분단으로 동서 베를린이 갈라지면서 영화사가 그곳에서 철수했다. 베를린이 핫한 이유 중 하나가 자유로운 영혼들이 공간 점거를 하고 예술혼을 불태우는 건데, 이곳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68혁명 당시 자유로운 영혼들이 서베를린으로 옮겨오면서 방치된 이 땅을 점거하고 새로운 대안공간으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68혁명 때 생겨났다가 사라졌던 수많은 대안적 실험들과 달리 우파 파브릭에는 현재 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160여명의 협력자가 함께 운영한다. 주거와 문화, 교육, 노동이 하나로 어울러진 우파 파브릭은 급진적으로 여겨졌던 대안들을 충실하게 삶으로 정착시키며 묵묵히 유지해오고 있다.
우파 파브릭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공연과 워크샵, 예술가 지원등의 문화 프로젝트, 어린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와 삶의 기술을 전수하는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 유기농 빵 가게와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 일과 삶이 어울러진 프로젝트, 그리고 에너지 자급을 위한 생태 주거와 친환경 실천이다.
내가 간 날도 햄릿 공연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고 발리댄스, 목공교실 등의 워크샵 공지가 보였다. 특히 목공, 미장, 냉난방, 전기 등 친환경 건축과 기술 교육이 열린다고 한다. 마을 한 켠에 다목적 공연장이 있고 대관도 한다. 또한 어린이 놀이공간의 한 켠에는 말과 돼지, 토끼 등을 기른다고 하는데 설렁설렁 다니다 보니 직접 보지는 못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동네를 거닐면 한적하고 예쁘장한 도심 외곽 마을에 온 듯한 느낌이다.
아기자기한 곳처럼 보이는 마을 내부 모습
다목적 공연장
놀라운 것은 이 새삼스러울 것 없는, 평범해 보이는 마을이 필요한 에너지를 내부에서 모두 생산한다는 점이다. 에너지 자립 마을이나 친환경 스마트 그리드 도시를 떠올리면, 화려한 신기술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최첨단 공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우파 파브릭은 차 한 잔 하러 들린 사람은 태양광 패널 빼고는 낌새도 못 차릴 수준의 평범한 마을이다! 다녀오고 나서야 이곳에서 세계 최초의 태양열 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는 자연발효 화장실이 개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슬쩍 살펴보면 지붕을 덮은 두터운 흙과 식물들, 태양광 패널과 태양열 난방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태양광 패널과 함께 일광욕 즐기기
빵 만들던 공장 같은 곳에 달린 장치 (이래서 투어를 하나 봐요. ㅠ.ㅠ )
태양광, 풍력이 설치된 건물
건물 옥상에는 식물들이 한들한들 흩날린다.
대안공동체를 살펴볼 목적이 없어도 여행자에게 우파 파브릭은 유용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화목오븐에 구운 천연 이스트 빵을 주말시장에 공급하는데, 그 빵을 우파 파브릭 내 베이커리에서 살 수 있다. 또한 우파 파브릭 협력자들이 재배한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식사와 빵, 음료를 맛볼 수 있는 카페 올레(cafe ole)도 있다. 건강한 맛이 느껴지는 음식에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마지막으로 게스트하우스가 내부에 자리잡고 있다. 욕실이 딸린 방, 가족룸, 혼자 지내는 방 등이 있고 하루에 20유로부터 시작한다. 크고 넓은 공동주방도 마음에 든다. 정작 나는 게스트하우스 정보를 너무 늦게 알아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아쉬워했었다. 만약 다시 베를린에 간다면, 잊지 않고 우파 파브릭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야지. 머물렀더라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할 수 있었으리라, 필시!
카페 올레 메뉴판
따뜻한 차이티 라떼 한 잔 (베를린 8월 초에도 18도야 -_-)
치즈 케이크와 독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일 콜라 fritz-kola 한 잔!
(독일 콜라를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ㅎㅎ)
카페 올레 전경
(내부, 외부 모두 크고 한적해요~)
우파 파브릭 내 유기농 푸드 마켓
게스트하우스 브로슈어 (영어는 없고 독일어만 있다네)
그래도 가격은 유로라서 파악 가능!
오른쪽이 공동부엌인 듯, 욕실 유무, 크기에 따라 20유로부터 60유로까지 가격이 좀 다르다.
도미토리도 아닌 개인실인데 (공동욕실) 20유로는 괜찮은 가격인 듯.
우파 파브릭 홈페이지 http://www.ufafabrik.de/en
찾아가는 길 (구글맵)
우파 파브릭 관련 참고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0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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