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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부다페스트] 선진국이 별 건가, 헝가리적인 삶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0. 21.

헝가리 오기 전, 헝가리에 대한 인상은 '글루미' 그 자체였다.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와 노래에 쌓여 영국보다 더 구름지고 아이슬란드보다 더 고독해서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헝가리, 랄까. 


그.러.나.

불후의 명작 만화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듯 '운명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는 여행에도 적용된다. 여행 오기 전에 떠올렸던 헝가리는 내가 만난 실제 헝가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굴비 한 두릅 엮듯 체코에 몰려있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프라하 대신 부다페스트를 권해주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유럽적 정취가 가득 찬 거리, 유럽에서 최고로 아름답다고 뽑히는 도나우 강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데(쵝오! 게다가 해가 지면 기똥찬 야경을 자랑하는 '어부의 요새'는 공짜다!) 물가는 서유럽의 70% 정도밖에 안 된다. 사람들은 점잖고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막상 말을 걸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너무나 친절하다. 20여년 전 동유럽을 여행할 때와 달리 현재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왠만한 동유럽 대도시는 영어로 소통해도 별 불편함이 없다. 그 빠른 변화에 오히려 이 쪽이 얼떨떨하달까.  


동유럽에 오기 전까지 보행자에게 안전한 걷기 좋은 도시, 도심 어디라도 당연하게 펼쳐진 공원과 녹지, 일 년에 한 달 정도 휴가를 쓰는 여유로운 삶은 오직 잘 사는 서유럽과 북유럽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살기 좋은 사회도 결국 '돈의 맛'이라고 여겼었다. 여전히 동유럽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헝가리, 체코, 크로아티아 등을 겪으며 잘 살게 된 후에만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유럽의 일인당 국내총생산은 세계 30~45위 정도, 일년에 약 2000만원 (17,000달러) 선이다. 그런데 블라인드 테스트 하듯, 경제 수치를 지운 채로 서울과 부다페스트에 델다 놓고 어디가 더 살기 좋고 여유로워 보이냐고 물으면 부다페스트를 택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고층빌딩과 도시화 수준 말고 살기 좋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따져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쿠웨이트처럼 오일 머니가 넘치는 나라는 중산층 개인의 삶은 물질적으로 엄청 풍요롭지만 교통사고 사망률은 세계 최악이다. 좋은 사회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재력이 충분조건은 아님을 동유럽 스타일의 삶이 증언한다. 동유럽 중에서도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이런 느낌을 주는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부다페스트에서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민적 삶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 두 곳을 소개한다. 한 곳은 관광객들도 많이 가는 도나우 강의 다리 위, 그리고 다른 한 곳은 강변 안쪽에 세워진 호수 공원이다. 이 두 곳을 통해 부다페스트 도시 시민들의 평화로운 저녁과 주말 나들이의 흥취를 느낄 수 있다. 내게는 부다페스트의 유명한 온천보다는 이 다리와 호수 공원을 거닐었던 시간이 훨씬 더 충만했다. 결단코 부다페스트는 우울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 여유롭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해가 지면 파리 에펠탑처럼 철골으로 지어진 '자유의 다리'에서 차와 전철이 사라진다. 오직 보행자들과 자전거 전용 다리가 된다. 차와 오토바이가 사라진 후 거리는 자유로운 시민들의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찬다. 다리 위는 소풍 가기 전날 밤의 달뜬 공기를 카푸치노 거품처럼 담고 있다. 다리에 올라 타고, 기타를 연습하고, 젬베를 치고, 땅바닥에 분필로 낙서를 하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잔다. 모두들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삼삼오오 철푸덕 앉아 수다를 떤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 값을 한다. 도시는 자동차와 이혼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 도시가 자유로워지리라. 



다리에 앉아 야경 감상하기 


다리에 서서 술 마시기 




도로에 분필 낙서


찾아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부다페스트 시내 한복판, 관광객들은 자연스레 들르게 되는 장소다. 


https://www.google.com/maps/place/Budapest,+Liberty+Bridge,+%ED%97%9D%EA%B0%80%EB%A6%AC/@47.4857098,19.0538855,18z/data=!3m1!4b1!4m5!3m4!1s0x4741dc4e4ad04e25:0xb9327a694c173c5c!8m2!3d47.4857618!4d19.0550767

   


부다페스트는 자전거 타기도 좋은 도시다. 거리에는 공공자전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그 시스템의 일부 동력은 태양광 장치로부터 얻는다.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타고 도시를 누볐다. 날씨도, 거리도, 운전 매너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자전거는 느린 걸음처럼 때때로 지루하지도 않고, 자동차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리지도 않은, 여행자를 최고로 잘 보필하는 이동 수단이다.    


공공 자전거 대여 시스템과 태양광 장치


자전거 전용 신호등


스타벅스 광고도 자전거로!


나도 자전거로 공원 나들이 가는 중


주말에는 도나우 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달려 부다페스트 끝부분에 있는 정갈한 공원에 놀러가보자. 잔디가 넓게 깔린 한강변 같은 공원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맛있는 간식을 먹거나 웨딩촬영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여유로운 일상을 만끽할 수 있다. 관광객은 거의 없고 특별한 장소는 아니지만, 평화로운 오후의 햇볕에 마음까지 광합성되고 말 테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풍경이다. 부다페스트의 선데이가 도대체 왜 글루미하냐고 따져묻고 싶다. ㅎㅎ 


잘 닦인 자전거 길과 인도 옆에 가지런히 심어진 허브, 그리고 레스토랑들


돗자리나 해변에서 쓰는 천, 과일을 싸가지고 가면 좋다. 


일광욕을 할 수도 있고 호수가에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모두 공짜다. 

이렇게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삶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고마워요. :)

헝가리는 나에게 '선진국'임이 분명하다.


구글맵 google maps에 'Kopaszi-gat'라고 치고 찾아가면 된다.

https://www.google.com/maps/place/Kopaszi-g%C3%A1t/@47.4662635,19.0602476,17z/data=!4m8!1m2!2m1!1skopaszi-gat,+Hungary!3m4!1s0x4741dd085fa5c073:0x846f4c3d67a27e47!8m2!3d47.4673962!4d19.0618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