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xcursion

[포르투 볼량시장] 까무룩 향수를 지워준 나만의 밥상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0. 6.

장기간 여행, 이 만큼 로맨틱하고 인생에서 로또 맞은 일이 어디 있겠냐 마는 못 견디게 집에 가고 싶은 순간이 기어코 오고 만다. 타일처럼 정갈하게 박혀있던 루틴한 일상의 감각들.   



퇴근 후 하릴없이 조용한 부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는, 웬만해서는 다 맛있는 저질 입맛에 감사하며 저녁을호로록차려낸다. 오늘 하루, 집밥을 먹은 후 읽을 책을 꺼내놓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가장 평화롭다. 늦은 밤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 내일 아침을 차려놓고서 잠자리에 든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는 부엌에서 내일 아침에도 수 없는 하루들의 하루가 평범하게 펼쳐질 거라는 안타깝고도 고마운 예감을 한다. 그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싫어하던 집안 일에서 요리가 빠졌다. 요즘에는 내일을 마중 나와 기다리는 마음으로 날마다 다음 날의 밥상을 차려낸다. 집안에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부엌이 될 만큼 못 말리는 부엌데기가 되고 말았다.

<<망원동 에코하우스>> 중



20대에는 편의점 음식이나 라면으로 때우고 나머지는 외식으로 일관하며 살았는데, 어느덧 집에서 밥 짓는 냄새를 풍기면서 살림의 의미를 깨닫고 생활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먹방이나맛집 투어처럼 딱히 맛 자체를 즐기지는 않지만, 몸을 움직여 음식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 중 가장 생산적인 일, 내 스스로를 돌보는 가장 갸륵한 일이 바로 밥상을 차려내는 것 아닐까.


하지만 하루 종일 여기 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고 부엌이 딸려 있지 않은 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여행이 일상이 되면, 부엌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는 기내식처럼 계속된 외식 밥은 영혼을 허기지게 한다. 여행지의 맛집 투어에 시들시들해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저 집에서 차려낸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밥상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는 한 일주일 정도 부엌이 딸린 에어비앤비의 숙소를 잡고는 장바구니를 끼고 동네 재래시장에 간다. 아마 망원시장을 돌아다니는 여행자의 심정도 이러겠지, 라고 상상하며.



프랑스 니스에서 묵었던 에어비앤비의 작고 아담한 숙소

누워서 손 뻗으면 부엌이 닿을 듯

 그래도 부엌이 있는 숙소란 얼마나 호사인가. 

(냄비 뚜껑이 없어서 밥 지으면서 후라이팬 뚜껑으로 뜸들이는 중) 

  


아스라파거스, 넘나 싸고 큼지막하다. 

씻어서 기름이나 버터에 볶고 소금과 후추를 치면 끝!



버섯과 파스타

유럽에서 가장 해 먹기 쉬운 음식이 바로 파스타.

소스도, 면도 다양하고 싸다.

 


워낙 채소가 싸니까 온갖 채소를 넣고 간장을 뿌린 후 

밥에 올려 '채소 덮밥'을 해 먹어도 좋다.

일본 간장은 좀 큰 마트에서는 거의 판다. 간장 사 갈 필요 없다.

(한국 간장은 아시아마트에 가야만 있음)



내가 갔던 여행지 재래시장 중 가장 밥상을 차려내기 좋았던 시장이 포르투갈 포르투의 볼량 시장’(Mercado do Bolhão)이었다. 우선 포르투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어 여행자들이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아침마다 들를 수 있다. 해산물을 먹는 포르투갈이라서 (올레!) 고기 위주인 유럽의 슈퍼마켓과 다르게 펄떡펄떡 살아있는 듯한 조개, 새우, 연어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다. 여행자들도 많지만 로컬 주민들도 장을 보는 진짜 시장이다. 오일장처럼 닭장에 살아있는 닭을 가둬놓은 닭집도 보인다. (워메…) 게다가 시장에서 포르투갈 특산품인 코르크 마개로 만든 지갑과 가방, 자석과 앞치마 등의 기념품과 포르투갈 와인을 관광지보다 30% 이상 싼 값으로 살 수 있다.  그렇게 사온 재료로 집밥을 차려낸다. 에어비앤비의 문구처럼 그래,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가 될 무렵, 장기간 여행에 따르던 향수도 까무룩 사라진다.


볼랑 시장에 다녀온 날은 해산물 요리 특선이다시장에서 사온 연어로 연어 스테이크를 해 먹고어느 곳을 가도 국물도 없는’ 유럽의 메뉴에 질린 나머지 조개를 우려 내장까지 따뜻해지는 조개국을 만들었다조개와 파와 소금이면 족하다조개가 있고 올리브 오일이 있으니 봉골레 파스타가 문제랴.



감동! 이렇게 많은 해산물이라니!!

조개를 못 구해서 못 해 먹었던 봉골레를 해 먹어야지.

홍합찜을 해 먹도 좋고.




이 많은 생선 중 오징어와 연어 두 토막을 사 왔다.  

후라이팬에 구워먹는 연어 스테이크는 끝판왕! 

원하는 만큼 잘라서 판다.

신문지에 꽁꽁 싸 주셔서 어릴 적 엄마랑 장 보던 기억도 났다.




마늘과 레몬, 파 등 채소도 종류별로 한 개씩 살 수 있다. 

이렇게 무게를 재어서 가격을 매긴다. 



과일도 많고 싸다. 

수박이나 멜론 등 큰 과일은 잘라서 무게를 달아 판다.

내 경험상 유럽에서 꼭 먹어야 할 과일은 

납작 복숭아, 참외처럼 생겼으나 참외보다 훨씬 큰 노란 멜론, 

체리, 그리고 무화과다.



공사 중인 시장 한 켠에 자리 잡은 닭집

(닭집은 레알 전통시장 인증 같은 거니?)



시장 앞에 날마다 나타나는 공연자

새와 인형과 어린이와 책과 음악 공연.



볼랑 시장의 참새 방앗간! 

볼량 시장에 오면 반드시 건너편에 위치한 100년 넘은 카페 카페테리아 도 볼량(confeitaria do Bolhão)’에 들러 빵과 커피를 즐긴다. 



카페 내 레스토랑

베르사유 궁전에서 본 거울의 방보다 이 카페의 거울의 방이 더 좋았드라



빵뿐 아니라 초콜렛, 치즈, 소스, 과일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다.  



카페놀이야 말로 유러피안 살롱의 정수


유럽에서 한인마트나 아시아 마트가 없는 소도시에 머무르거나 현지 식재료를 파는 재래시장에서 장을 볼 경우에도 얼마든지 좋은 밥상을 차려낼 수 있다. 외식은 비싸지만 식재료는 우리보다 훨씬 싼 유럽에서 견과류, 치즈, 요구르트, 채소, 과일 등을 듬뿍 사서 간단히 조리해 드시라. 헬렌 니어링 여사의 소박한 밥상에 따라 음식은 가능한 원재료 그대로, 손이 되도록 적게 가게 조리하고, 부드럽게 않게, 단단하게 먹으면 된다. 음식 잘 못 하는 사람도 샐러드와 파스타 정도는 라면 끓이듯 쉽게 해 먹을 수 있다. (요리 블로그를 참고하세요~)  


나는 한국에서 샐러드를 만들면서 돈 걱정 안하고 이렇게 많은 마카다미아와 치즈를 넣어본 적이 없었다. 모짜렐라 치즈가 1유로가 채 안 된다. 유럽 밥상에 올릴 음식 우선순위 1위는 바로 샐러드. 파는 소스를 이용해도 좋지만 나는 간단하게 요거트를 뿌렸다. 유럽에는 유제품 종류가 무궁무진하고 값도 싸니까. 망고가 든 요거트, 바닐라가 든 요거트 등 날마다 다른 샐러드 소스를 뿌려 먹을 수 있다. 채소, 견과류, 마른 과일, 요거트, 치즈, 그리고 덤으로 새우까지 풍성한 샐러드를 차려낸다.




채 1유로가 안 되는 모짜렐라 치즈




마지막으로 유럽의 시장과 슈퍼마켓에는 언제나 바질, 로즈마리 같은 허브 화분과 꽃이 놓여있다. 집에 돌아가 유럽 여행에 대한 향수가 쌓인다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치열하게 먹고 사는 현장에 필수품처럼 꽃을 놓아두는 삶의 자세, 인간의 삶에 먹을 것뿐만 아니라 꽃도 필요하다는 감각 같은 것. ‘세계 여성의 날의 계기가 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 구호가 바로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였다.            



모기 쫓는 허브 화분

포르투 노천카페에 가면 테이블에 이 허브가 하나씩 놓여 있다.




빵과 장미, 

혹은

시장과 드라이플라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