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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발리 로비나] 돌고래, 안녕.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0. 4.

​아, 나이가 들었는가 하고 절감하는 때가 여행 중에도 발생한다. 세상 귀경 중에 제일 재미진 것이 사람 귀경이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은 사람, 것보다 자연 풍광이 마음을 친다.​​​​ ​​​중국 장가계 이런 곳은 '으르신'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 아이슬란드 다녀온 친구들이 거기 대면 요세미티는 별 거 아니라는 압도적 빙하 풍경을 말하는데, 나 완전 혹 했드랬다. 예전같으면 응, 그래그래 라고 영혼 없는 반응이나 했을 텐데 아이슬란드를 검색하고 있었다. 곧 장가계도 갈 기세다. (헉...) 


홍대와 연남동+청담동 가게들이 당연한 듯 펼쳐진 발리 우붓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열대우림 속의 작은 오솔길, 그리고 우붓에서 두 시간 떨어진 북쪽 해안 로비나에서 보았던 돌고래들의 점핑이었다. 역시 자연이랄까.  






존재 자체로 이토록 경이로운 돌고래들이라니! 엔진 모터를 단 돛단배들이 일제히 우르르르 돌고래들을 쫓아다니는 모습이 참 거시기스럽긴 하다. 죄책감도 들고. 아마 돌고래들한테 스트레스 팍팍 주겠지. ㅠ.ㅠ 

한데 아침 일찍 먼 바다를 향해 먹이를 찾아 나선 돌고래 떼의 모습을 보자면, 누구라도 '핫핑크돌핀스'(제돌이를 바다로 보낸 멋진 단체! 조약돌이 활동하는 단체!) 활동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 수밖에. 하다 못해 돌고래 학살이 일어나는 일본의 한 마을을 고발한 '더 코브(the cove)'라도 다시 보고 싶을 거다. 돌고래를 보고 온 날, 한 바닷가 만을 피로 가득 채웠던 돌고래 학살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2015년 일본은 돌고래 학살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돌고래 투어가 너무나도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돌고래 쇼나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기 같은 여행 상품보다는 훨씬 나아 보인다. 어렸을 때 이 광경을 봤다면 해양 포유류 학자가 되고 싶다고 꿈 꿀 정도로 멋졌으니까. 바다를 점핑하며 엄청난 속도로 왔다갔다하는 돌고래는 바다의 집시인 걸까. 새벽마다 이렇게 멀고 긴 길을 왕복하는 돌고래를 가두는 수족관에 빨간띠 매고 반대하고 싶다. 게다가 3-5명이면 꽉 차는 작은 보트는 지역 어민들에 의해 운영된다.   






또한 돌고래 만큼이나 경이로운 일출 광경. 세상의 색감이 시시각각 펼쳐지는 이른 아침의 한없이 따뜻한 블루, 한없이 차가운 핑크. 그 사이의 그라데이션. 내가 자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아침마다 이런 색감의 바다가 펼쳐지고 이런 색감의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 받는다. 스칼렛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말할 때의 그 태양이 이렇게 실감난 적이 있을까. 게다가 로비나(lovina) 바다는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위험해 보일 정도였다. 마치 아름다운 사일렌 소리에 유혹 당해 바다에 빠져드는 것처럼 말이다. 새벽에도 따뜻한 물이 찰랑찰랑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가슴 아프게도 돌고래는 참치잡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돌고래와 참치는 정어리 등의 작은 물고기 떼를 함께 사냥하면서 같이 다닌다. 정어리 떼가 군집해 거대한 물고기처럼 몸을 부풀리면 큰 참치라도 공격하기가 쉽지 않다. 이때 돌고래가 작은 물고기 떼의 군집을 공격해 물고기들을 흩어지게 한다. 그때부터 돌고래와 참치는 흩어진 작은 물고기들을 먹는다. 그러니 참치를 잡을 때 돌고래도 같이 딸려오게 된다고. 


저인망 어선으로 바다를 싹쓸이 해 문제가 되는 참치잡이가 돌고래에게까지 해를 미친다. 그린피스가 펴낸 참치 보고서를 읽고 일반 참치 통조림을 끊었지만, 그게 한 두 사람의 마음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생협 '착한 참치' 통조림이 나와 있지만 판매량이 저조해서 고민이라고 한다. 아아. 어여 빨리 전세계적으로 저인망 어선의 고기잡이가 금지되기를. 


그나저나 일본은 이렇게 인기 많은 돌고래 투어는 안 하고 왜 작살로 돌고래들을 학살했나 모르겠다. 아놔. '더코브'를 보니까 수천마리가 한 바닷가에 정어리 떼처럼 모이던데. 얼마나 감동이겠냐고. 


발리의 로비나 비치는 우붓에서 두 시간 거리, 웬만한 발리 관광지에서 2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로비나 쪽에 묵지 않으면 새벽 3:30에 출발해 아침 6시 정도에 보트를 타게 된다. 로비나 비치의 보트값은 100,000루피(만원) 정도지만, 보통 투어를 신청해서 택시 타고 오면 일인당 200,000~350,000루피(이만~삼만 오천 원) 정도(보트비 포함). 로비나의 돌고래 투어를 본 후 다정하고 따뜻한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것도 좋고, 돌아오는 길에 멋들어진 사원에 들르는 것도 좋다. 


새벽 3:30에 일어날 만한 가치가 있냐고? 나는 신년에 일출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날마다의 늦잠을 사랑한다. 서른 아홉 번의 새해 동안 한번도 신년 일출을 본 적이 없다. (망년 파뤼하고 아침에 쳐 잤다고!) 하지만 이날 만큼은 일출과 돌고래를 보기 위해 밤을 골딱 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암 그렇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