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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한국일보 삶과 문화] 공유숙박의 ‘나쁜’ 진화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9. 21.

한국일보 2016년 9월 6일 칼럼으로 쓴 글 

석 달째 여행하다 보니 주책없게도 머무는 삶이 그립다. 밥상을 차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며 손수 살림을 돌보는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들도 없는 날들’. 호스텔이 아니라 “우리 집처럼 편안하게, 로컬처럼 생활하세요”라고 광고하는 공유숙박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부엌이 있는 아를의 공유숙박 모습 

 유럽의 식재료 가격은 우리보다 싸다! 견과류와 치즈는 훨씬 싸다!!

공유숙박을 통해 집밥을 해먹으며 여행 다니면 건강에도 좋고 비용도 낮출 수 있다. 


공유숙박은 ‘카우치서핑’과 ‘웜샤워’ 등 무료로 타인과 공간을 나눠 쓰는 호혜적 형태, ‘에어비앤비’나 ‘코자자’ 등 유료로 거래되는 상업적 형태, 여행기간 동안 서로 집을 바꿔서 사는 집 스와프로 나뉜다. 나는 서울에서 거의 3년간 한 달에 2, 3번은 우리집 ‘소파(카우치)’를 잠자리로 구하는 외국 여행자들에게 우리 집을 내놓곤 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이 위험하지는 않냐’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주변 반응에도 불구하고 집에 앉아서 여행을 떠나는 호강을 누렸다. 그들이 들고 온 자잘한 기념품과 직접 차려주는 음식으로 여행 기분을 느꼈고, 무엇보다 여행자의 달뜬 기운을 받아 스쳐 지나치던 ‘지금, 여기’가 재미있는 여행지로 변했다. 그들을 통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웨이트리스가 월급 한푼 없이 팁만 받으며 일하는 게 합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사실, 집을 개방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며 관계를 쌓는 핀란드의 ‘레스토랑 데이’, 헬싱키에서 시작해 블라디보스토크와 동해를 거쳐 서울에 입성한 육로 여행의 경험 등을 접했다. 여행자들은 호스텔에 지내는 것처럼 스스로 준비한 생수와 끼니를 먹고 수건과 시트를 갈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또 함께 집밥을 해 먹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배우고, 한강공원과 망원시장 등 동네를 즐겼다. 우리는 남태평양 트로브리안드 군도 주민들이 조개껍데기 선물을 주고 받으며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처럼 서로 여행과 일상을 주고 받으며 관계를 쌓았다.


하지만 나는 정작 여행을 떠나면서 관계에 공을 들이지 못한 채 주로 상업적 공유숙박을 이용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올해 에어비앤비는 메리어트 호텔이나 쉐라톤 호텔의 모기업보다 더 높은 기업가치를 기록했다. 또한 젊은이들이 큰 자본 없이 아이디어로 성공한 창업 사례이자, 바람직한 가치를 생산하는 공유경제라고 칭송받는다. 그러나 직접 그런 상업적 공유숙박지에 머무르면서 공유란 무엇인지, 뭐가 대안적이라는 건지 아리송해졌다. 


머무는 동안 여행자끼리 교류하는 일은 없었고, 주인장의 얼굴을 못 보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주인장이 이메일로 보낸 집 사용 매뉴얼을 읽은 후 우편함 속 열쇠를 찾아 홀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몇 채의 집을 공유숙박으로 굴리는 주인장들은 어김없이 청소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집을 관리했다. 심지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밖에서 벨을 눌러도 인기척을 내지 말라 했고, 독일 베를린에서는 옆집에서 물어오면 집주인 친구라고 둘러대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곳 도시에서는 상업적 공유숙박을 불법으로 규정하거나 숙박 대여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공유숙박이 인기를 얻으면서 기존 세입자가 내쫓기는 등 주택난이 악화하였고 임시직 일자리만 생겼기 때문이다. 또 소음과 쓰레기 문제가 늘어나고, 알고 지내며 살 수 있는 이웃이 사라졌다. 에어비앤비는 개인정보라는 구실을 앞세워 각국 정부에 등록업소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으며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도 많다. 내 생각에 상업적 공유숙박은 색다른 공간을 선보이거나 저가 비행기처럼 서비스가 없는 대신 저렴한 공간을 제공하며 관계 대신 수익만 공유하는 형태로 변질한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머물 듯 지낼 수 있는 공유숙박을 사랑한다. 다만 공유숙박이 경제적 거래보다 사회적 관계로, 금전적 보상보다 존재를 통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호혜적 기여로 작동하기를 원한다. 국내에서도 공유 민박업이 신설돼 올해부터 일부 지역에 우선 적용된다고 한다. 향후 호주 노동당이 발표한 공유경제 조건을 참고해 공공의 안전, 좋은 노동, 사회적 관계 활성화를 위한 원칙이 포함되기를 바란다. 물론 카우치서핑이나 집 스와프처럼 집주인과 숙박자가 서로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 관계를 만들고, 그 관계를 통해 잠자리를 구하는 것은 더욱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