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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스페인 폰테베드라] 여름의 곡진한 즐거움, 강 수영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0. 9.

스페인의 소도시, 폰테베드라. 차 없는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산티에고 순례길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순례자들이 하루 이틀 정도 머물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특출 난 관광지가 없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작은 마을일 뿐이다. 하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유럽풍 소도시를 만끽하고 싶다면, 천천히 일상을 걷고 싶을 뿐 ‘관광’스러운 것은 도무지 하고 싶지 않다면 폰테베드라가 딱이다. 


호스텔 이름마저 이에 걸맞게 ‘슬로우시티(slow city)’다. 이 호스텔에서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부엌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빵과 과일, 시리얼 등을 먹을 수 있고 세탁기도 무료로 맘껏 돌릴 수 있다. 장을 봐다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먹어도 된다. 주인장 내외는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그러나 충분히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친절함을 베풀었다. 유일한 단점은 대문 열쇠가 잘 안 열려서 고생했다는 것, 욕실과 변기가 하나 뿐이라 걱정했다는 것! 하지만 워낙 소규모 호스텔이라 욕실이 붐비지 않았다. (다들 새벽같이 산티아고로 순례길 슝~ 떠난다.)  아, 무선 인터넷이 좀 느리고 끊긴다.  


대문 

부엌 (냉장고와 세탁기, 그리고 간단히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어요.)

비스켓과 시리얼, 그리고 빵

캡슐커피도 제공된다. 

캡슐커피 아래 냉장고에 우유와 물도 들어있다.


도미토리 모습, 뽀드득 소리가 날만큼 깨끗하다. 



마을 내부로 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걷기 좋은 도시, 폰테베드라의 곳곳에는 크고 작은 로컬 가게들이 마음껏 펼쳐져 있다. 인구 8만 명이 거주하는 소도시의 노천 테이블이 저녁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거리에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넘쳐나다니, 그 활기찬 에너지가 경이롭다. 이런 소도시라면 스타벅스가 있을 법한 대도시를 사랑하는 나도 귀촌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이곳에 5일 정도 머무르며 책을 읽고 마을을 산책하고 장을 봐서 밥을 짓고, 그리고 강에서 수영을 했다.





차 없는 도시 폰테베드라의 전후 

성형외과 광고 식으로 말하자면 비포/애프터 

차 없는 도시 폰테베드라에 대한 기사 

한국일보, 양홍주 기자 http://www.hankookilbo.com/v/0f0b58502b254556af84171d7c8c47a7 


유럽여행 중 꼭 하면 좋을 활동으로 세계에서 가장 싸다는(태국보다 싸다는) 체코 프라하의 스카이다이빙보다 강 수영을 권한다. 나는 20여년 전 스위스의 한 도시에서 난생 처음으로 강 수영을 했다. 수영은 수영인데, 바다 수영과 강 수영은 신선함에 있어 비교가 안 된다. 서핑과 파도 타기, 모래 사장을 사랑한다면 바다가 낫다. 하지만 나처럼 모래밭보다 잔디밭, 짠물이 아니라 들여 마셔도 생수처럼 시원한 강물, 긴 해변가를 점철한 피서객보다 동네 사람들이 멱 감으로 나온 로컬 분위기를 사랑한다면 단연코 강에서의 수영이다. 


유럽에는 동네 사람들이 수영을 할 수 있도록 강에 펜스를 쳐 놓은 곳이 곳곳에 있다. 입장료가 아예 없는 곳도 많고 입장료가 있다 해도 공공에서 운영하므로 아주 저렴하다. 잔디 한 켠에 샤워기와 화장실이 구비돼 있어, 수영복과 물기를 닦고 깔고 누울 큰 타올 한 장만 있으면 된다. (과일 등 간식거리 가져가면 꿀맛!) 대부분 옷 안에 미리 수영복을 입고 와서 옷을 벗고 바로 강에 뛰어든다. 한강 수영장이 고무 ‘다라이’에 물 받아놓고 바글바글 수영하는 격이라면, 강 수영은 깨끗한 강물에 뛰어들어 자연을 만끽하는 물놀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강 수영의 최대 장점은 수영 후의 기분. 바다 수영을 하고 나오면 짠물에 몸이 끈적끈적해지는 듯 하지만, 강 수영을 하고 나오면 따로 씻지 않아도 샤워한 것처럼 넘나 ‘프레쉬’하다.



폰테베드라 강 수영하러 가는 길

강 수영하러 가는 길, 

 강변 벤치에서 쉬시는 어르신들


풀밭이 펼쳐진 강 비치!

나무 그늘

아이들도 놀 수 있을 만큼 안전하다.

야외 샤워장

입장료도 없고 주변에 상점도 없다.

 물론 돈 한 푼 들지 않는다.

수영복과 타올이 필요하고 음료수와 과일을 사 가면 꿀맛!


만약 내가 아이를 기른다면 다른 건 몰라도 자전거와 수영은 꼭 배우게 하고 싶다. 어릴 적 배운 것 중 나를 행복하게 만든 교육은 한자도, 컴퓨터도, 속셈도, 피아노도 아니고, 바로 몸으로 전수받은 자전거 타기와 수영이다. 한번 익히면 자연스럽게 몸에 달라붙어 순전히 몸의 움직임만으로 운동 에너지를 만드는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다. 건강한 몸이 멋진 자연을 만날 때 자전거와 수영만큼 돈 안 들고, 간단하고, 즐거운 놀이가 없지 않을까.

   

시골 출신이 아닌 한 한국에서는 좀처럼 강에서 수영할 일이 없다. 1960년대 한강 사진을 보면 모래사장이 펼쳐진 한강에서 사람들이 멱을 감고 빨래를 하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지만, 지금 한강은 물을 막은 놓은 인위적인 레저공원이 돼버렸다. 그 덕에 서울이 범람하는 강물에 잠기지 않고 한강 변의 녹지 공원이 생겼지만, 이미 자연스러움은 사라졌다. 


한강이야 그렇다고 쳐도 지금 한강의 인위적인 레저공원 스타일을 온 강산에 이식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왜 그토록 아름다운 내성천까지 모조리 가둬서 강변의 모래사장을 파괴하고 만 걸까. 4대강 ‘살리기’ 공사 말이다. 이제 어디를 가도 대한민국 땅에서는 자연스럽게 강 수영을 할 수 없게 된 것만 같다. 강을 그대로 살린 채 동네 사람들이 그 강을 축복처럼 즐기는 폰테베드라에서 4대강을 떠올리자 급 우울해졌다. 우리네 강을 지키지 못한 벌을 이렇게 차곡차곡 받는구나. 우리들은 여름의 곡진한 기쁨 중 하나인 강물에서의 물놀이를 저버리고 말았다.  


가는 길 

폰테베드라는 조그만한 도시라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 가능하다.

구글맵에 'Playa Fluvial del Lérez'를 치면 된다. 

강변 따라 쭈욱 따라 걸어가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슬리퍼 신고 수영하러 가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따라가자! 팔로우!!

폰테베드라 주변의 하얀 모래 바닷가도 가 봤는데 단연코 강 수영이 훨씬 나았다!

유러피안처럼 선탠할 거 아니면 비추. (버스는 한 시간에 하나 정도? 정거장 방송 없어서 삐질삐질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