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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마드리드] 온 도시가 게이들을 레알 환영한다, 마드리드!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7. 4.

음식이 맛있고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는 달리 해산물 요리가 풍부하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사적 공간에 민감하지 않아 (공공공간에서 몸이 부딪히거나 서로 닿아도 별로 기분 나빠 하지 않는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곳, 스페인. 한국사람들이 유럽 국가 중 가장 한국과 비슷하다며 고향의 향기를 맡는 이곳. 거리에는 1800년대 건물들이 즐비하게고, 보행자가 보일라치면 도로 위의 차가 가만히 서고, 도심 곳곳에 광장과 동상과 공원이 자리잡아 유럽적 정취가 흠뻑 느껴지지만, 북유럽의 차갑고 합리적인 감성이 느껴지지 않아 위축되지 않는 곳


이번에 마드리드에서 와서 스페인을 사랑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마드리드의 동서남북, 하늘부터 땅끝까지 온 도시가 당신들의 존재를 '레알' 환대한다







2017년 마드리드 게이 프라이드는 6 19일부터 7 2일까지 장장 2주에 걸쳐 온 도시를 축제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삼백만이 거주하는 마드리드에서 거리에 뛰쳐나온 사람이 이백만 명. (feat. 미쳤네 미쳤어) 며칠 전 밤 10시에 도착한 마드리드에서 무지개 깃발을 온몸에 뒤집어 쓴 십대 무리를 만났다. 분명 퍼레이드는 7 2일이라고 들었는데 일정이 변경되었나, 하는 마음에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다음날 내가 얼마나 물정 모르는 순진한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퍼레이드는 7 2일이 맞았다. 그전에 전야제, 전전야제, 전전전야제가 열려 도시 전체가 죽자고 놀자고 달려들었을 뿐. 이 도시는 게이 퍼레이드 주간 내내 크고 작은 거리 축제를 열고 날이면 날마다 사람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다닌다. 무지개 깃발이 거리의 만국기처럼 펄럭인다. 십대들은 중세 카니발을 즐기는 장원의 농노들처럼 무지개를 입고 차고 뒤집어쓰고 붙이며 돌아다니는데, 마치 무지개 표식을 달지 않으면 한 무리에서 제외되기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마드리드 길거리의 가게들마다, 아파트마다, 호스텔마다 무지개가 걸려 있다. 어디를 봐도 무지개 깃발에서 빠져나가기 어렵다. 관광안내소와 기념품 가게, 관공서와 시청사 등의 정부와 지자체 청사, 거리 알림판과 현수막이 모두 무지개 물결이다. 기념품 가게에는 메시의 축구의 티와 무지개 깃발이 함께 놓여있다. 한도 끝도 없다. 들어가는 상점마다 무지개 깃발에, 모자에, 나비 넥타이에 야단법석이다. ‘에어비앤비는 도심 한복판에 #hostwithpride를 내걸고 홍보 중이고, 우리로 치자면 홍대거리 정도 되는 Chueca 역 근처에서는 (힙한 게이 거리로 유명하다) 거리 전체가 물총 놀이와 물싸움으로 난리가 났다. 4층 건물 옥상에서 바께스로 물을 쏟아 부으면 아래에 몰려 있는 무지개무리들이 흠뻑 물에 젖어 더 뿌려달라고 아구아라고 (스페인어로 물이라는 뜻) 외친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물총과 분위기로 물을 뿌려댄다. 퍼레이드가 가까워지자 유럽의 LGBTI들이 마드리드로 몰려드는지 호스텔마다 방이 없고, 호스텔 카운터마다 부치 언니들과 근육질 우람한 게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체크인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며칠 전 산세바스티안에 있을 때만 해도 거리에는 이성애자들과 가족들이 득시글했는데 (서운할 정도였다고!), 금요일 마드리드의 밤 거리는 여여, 남남의 무리가 여남 커플보다 더 많다. 과장 아니고 레알. 거리에서 키스하는 게이 커플들이 퍼레이드의 빤쓰게이들만큼 자주 보인다. 더 이 환대의 분위기라니, 미치고 환장하겄네.





 스페인, 유럽연합기가 펄럭이는 건물에서 가장 큰 깃발은 레인보우.




 마드리드 관광안내소


 마드리드 거리 곳곳에 나붙은 게이 프라이드 안내판  


주요 지하철 역에 붙어있는 넷플릭스 광고

#rainbowisthenewblack 


 주요 3대 광장 중 하나인 마요르 광장의 관광안내소도 무지개! 




유럽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동성애에 우호적이라 보수당 국회의원이 무지개 깃발을 내걸고, 영국의 첩보부대인 007‘M16’ 건물 본부에 무지개 깃발이 펄럭인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온 도시가 사활을 걸고 국가적 명절이라도 되는 듯 게이 퍼레이드를 축하하는 곳에 서 있자니, 뭐랄 할 말이 없네. 그저 감개무량하다. 어린아이들이 거리에서 무지개를 펄럭이며 놀고, 공원에서 무지개 깃발을 돗자리처럼 깔고 앉아 쉬다가 그 무지개 깃발을 들고 축제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 호스텔의 아침 식사 광경부터가 다르다. 머리에 꽃 꽂고 무리 지어 식사하는 레즈비언 언니들부터 LGBT 티셔츠를 입고 혼자 빵을 먹으며 노트북을 보는 게이까지, LGBTI가 아니면 소외될 것만 같다. 그러니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 이성애 커플이든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부부든 거리에 뛰쳐나와 흥겹게 놀 수밖에마드리드여, 온갖 성체성을 환대하는 대가로 게이 머니를 버는 거라면 기꺼이 돈을 버시라, 당신네 도시는 그럴 만한 염치가 있다. 도시 전체가 클럽처럼 들썩 들썩거리는 퍼레이드 당일에 끝도 없는 퍼레이드 행렬과 웃음을 보면서 생각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이런 모습이라면 보수 기독교인들이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곳에 오는 것이 낫겠다.


 공원에서 무지개 깃발을 돗자리(?)로 깔고 노는 청소년들 


 에어비앤비 무지개 이글루 

#hostwithpride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길래)




 스탑 LGBTI 포비아


 물총은 필수!


 트럭에서 맥주 파티!

이날 행진에 나온 트럭과 버스는 30대도 넘는 듯 하다.

중장비 트럭까지 개조해서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부채춤과 발레를 추고 전통 북까지 두들기는 한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처럼 열정적이지는 않다. 축제를 즐기고 타인의 존재를 기꺼워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광신도를 따라갈 수 있겠나, 아무렴 미친 사람 따라갈 열정은 없는 법이다. 이 마드리드에서 씁쓸했던 것은 지난 10여년간 이슬람에서 가장 큰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열렸던 터키 이스탄불에서 퍼레이드가 강제로 취소되고, 이스라엘의 게이 프라이드 행진에서 극우 유대교도의 칼에 찔린 16세 소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극우 이슬람과 극우 유대교의 혐오 속에서 도시락 싸들고 댕기며동성애를 말리는 (염병하고 자빠졌네, 그런 것이 말린다고 말려지간디?) 한국 보수 기독교를 느꼈기 때문이다


전통적 가족, 에이즈, 효 사상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랑 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타인의 성 정체성을 기꺼이 축하하고 기뻐하는 시민들의 교양이야말로 근대적 가족 관계를 넘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근간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강남순 교수는 '동성애를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물음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아무도 '이성애를 지지하거나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지지와 반대의 문제가 아닌 '존재방식'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외면한 채, 지지나 반대를 묻는 것은 마치 '지구가 돈다고 하는 주장을 지지하는가'와 같은 질문과 유사한 잘못된 질문이다." 극우 혐오 범죄의 대명사인 나치가 유대인과 더불어 동성애자를 아우슈비츠로 보낸 까닭이 달리 있겠어. , 마드리드에서 호사를 누리고 간다. 이 호사를 언젠가 서울과 대구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런 날이 올까.) 적어도 '성소수자부모모임'에 속해있는 분들이라도 마드리드 게이 프라이드에 보내드리고 싶다. 


"나는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에요."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751564.html?_fr=s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