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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라일락 붉게 피던 집, 그리고 응답하는 텍스트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 6.

연말연초의 기나긴 휴가 동안 불효자가 되기로 작심한듯, 그리고 스스로에게 동면을 허하듯 고향 집에도 가지 않고 서울 집과 동네에 콕 처박혀 있었다. 영 심심해서 좀이 날 것 같아 이제 직장이라도 나가볼까, 이런 마음이 들기를 고대하며. 그 마음을 깨 버린 것은 '응답하라 1988'과 '섹스앤더시티'였다. 봐도봐도 또 재미지는, 이제는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섹스앤더시티'와 '응답하라' 시리즈. 니들이 있는데 내가 어찌 직장이 그리우랴. 암, 여전히 휴가가 고픈 것은 다 니들 탓이다.    



아아, 봉블리~


'응쌍팔'의 추억 돋는 동네와 가족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공익광고처럼 건전했고,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드라마를 만든 팔 할이 '가족 감성팔이'였다. 작정하고 가족과 동네를 호출하는 것 같아, 뭐 이 정도로 치밀하게 작정했다면 나도 작정하고 빠지기로 다짐을 했드랬다. 보다 보면 그 작정조차도 잊어버린 채 '응쌍팔'의 리비도에 빠져버리는가... 싶다가, 감성팔이가 '투머치 too much'가 될 때 나의 자아가 퍼뜩 돌아온다. '음메~' 


대략 이런 때이다. 지 입으로 "나는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어서 임용고사는 못 봐"라던 보라가 사법고시 공부를 한다네. 아니 사법고시는 국가고시가 아닙니까? '음메~' 드라마에서라도 철딱서니 없는 낙관을 보고 싶다. 그 재미지다는 왕좌의 게임을 안 보는 이유가 뭔데! 이 사람이 주인공이다 싶어 마음을 주는 순간 피부림이 일어나고 주인공이고 나발이고 다 쥑여버린다고! 나는 겨울왕국 같은 판타지가 좋다고,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왕좌의 게임 제작자들아... 그럼에도 '응쌍팔'이 철딱서니 없는 낙관의 선을 넘어 판타지로 화할 때, 이 책을 떠올리고야 만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응쌍팔'이 그리는 시절을 공유한다. "여름마다 물놀이하던 붉은 고무다라이, 잠자리 졸던 주홍색 나일론 빨랫줄,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다뤘던 까만 연탄, 마당 가득한 연보랏빛 라일락 향기, 그리고 한 지붕 아래 형제 같았던 동갑내기 소꿉친구...... 마냥 아름다웠던 '라일락 하우스'의 추억은 모두 진실일까?" 라고 운을 뗀다. 책의 띠지에는 '1980년대 서울의 한 다가구 주택, 가족 같았던 이웃들이 숨겨운 어두운 진실'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책에는 '응쌍팔'의 스크린을 글로 묘사해 놓은 듯한 섬세하고 추억 돋는 배경이 오롯이 들어있다. 사건의 배경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시절의 배경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라일락 하우스'의 한 켠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주인공이 성공한 작가가 되어 신문에 '1980년대'의 기억, 즉 동네와 가족들을 추억하는 칼럼을 쓰기 때문이다. 단락이 시작될 때마다 여주인공이 신문 원고로 작성한 '그 때를 아십니까' 칼럼이 등장해 한껏 감성을 돋운다. 그리고 그녀가 칼럼에 썼던 가난하지만 정겨웠던, 동네사람이 모두 가족이었던 기억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당시 흔하게 일어났던 연탄가스 중독가스로 사망한 옆집 오빠가 살해된 것이라면? 


<<라일락 붉게 피던 집>>도 '응쌍팔'처럼 한번 잡으면 직장 일이고 뭐시고, 걍  끝까지 보자고 덤비게 만든다. 하지만 '응쌍팔'이 과거로 회귀해 그 자리에 멈춰있다면, 그래서 정작 '응답'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 소설은 과거로부터 우리를 밀고 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 떠밀려 온 잔해들을 돌아보게 한다. 마치 제설차 앞에 달린 커다란 삽이 거리의 눈을 모아담는 것처럼, 우리의 과거가 밀려와 여기에 쌓여 있다. 그러니 응답을 할 수밖에. 1980년대 과거에 응답한 결과 <<라일락 붉게 피던 집>>에 나온 주인공의 현재는 극적으로 뒤엉켜버린다.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어떤 식으로건 서사화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이다. (202쪽) 지금 우리는 집단적으로 1980년대 과거의 체험을 두 가지 버전으로 서사화한 텍스트를 향유하고 있다. 하나는 '응쌍팔', 그리고 다른 하나는 <<라일락 붉게 피던 집>>. 우리는 그 시절의 기억을 '재서술'하면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용을 쓴다. 그러니 '응쌍팔'이 암만 '음메~'스러워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마지막 회까지 보고 싶다. 


하지만 더 좋은 서사, '파이팅' 하자는 게 아니라 윤리적인 의미에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서사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아닐까. 물론 텔레비전 드라마가 재밌으면 되었지, 뭘 따져라고 한다면 그닥 할 말은 없지만.:) (이번주 금요일 본방사수할거임~) 다시 위의 책에서 신형철은 "진정으로 윤리적인 태도는, 선의 기반이 사실상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악의 본질이 보기보다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면서, ‘선의 악’과 ‘악의 선’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태도일 것이다. ... 적어도 이야기라는 장르에서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단호한 경계들에 대해서 확신보다는 회의를 품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161쪽)라고 썼다. '응쌍팔'에는 '선의 악'도, '악의 선'도 설 자리가 없다. 모든 공간과 캐릭터는 '선의 선'만으로 그득하기 때문이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선으로 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 다세대 가구의 살인 사건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밝혀진 악의 음모도 그저 일상적일 뿐이다. 나는 '일상 미스터리', '한국적인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불리는 송시우 작가의 다른 책이 읽고 싶어졌다. 마침 작가의 신간이 나왔으니, 이번 주 금요일 밤에는 '응쌍팔'을 본 다음 느긋하게 <<달리는 조사관>>을 읽어야지. 아아 빨리 금요일이 오면 좋겠다! (월요일은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