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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를 위한 에코라이프 <나는쓰레기없이산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4. 4. 26.

우리 집 현관문 안쪽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있다.




종량제 음식물쓰레기, 퇴비, 종량제 쓰레기 봉투 를 내다버린 날짜들이 한 귀퉁이 자리를 차지한다.

(퇴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에서 투 비 컨티뉴드:)

4월 들어 분필로 표를 다시 그렸는데, 4월 21일에 퇴비를 묻은 것 빼고는 이 달 들어 버린 쓰레기가 없다. 이 날짜들은 꼬박꼬박 일수 날 돌아오듯이, 1년에 4~5번 날라든다. 종이, 금속, 플라스틱, 일회용 비닐봉투 등 재활용 쓰레기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무더기로 내다놓는데, '재활용'이라 괜찮기만적 위로에 기대 버리는 날짜를 적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쓰레기 내다버리는 날도 가계부처럼 적다가 알게 된 사실.

못 갚는 일수 돈에  복리 이자가 붙듯 가장 빨리 번식하는 쓰레기는 바로 일회용 비닐봉투였다.

한없이 헐겁고 가볍고 찰나적인 비닐봉투가 모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여봐란 듯이 증명해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를 여러 명이 모여 노력하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자면, 비닐봉지야말로 아무리 얇아도 모이면 태산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었다. 짓눌러도, 밟혀도 '마시멜로우맨'처럼 부피가 무한 증식했다.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처럼 망원시장에 갈 때마다 글라스락과 락앤락 통을 장바구니 안에 첩첩산중 쌓아간다. 생선 가게에서 고등어와 오징어를 살 때 네모난 플라스틱 통에 담아 달라 하고, 손이 제일 많이 가고 맛 내기는 가장 어려운 나물 반찬은 (집에서 안 하고) 반찬집에서 글라스락에 담아 오고, 흙이 묻은 당근이나 대파 등 야채는 신문지에 싸 온다. 반찬 집에서는 글라스락을 저울에 담아 용기 무게를 미리 재 놓고(무려 500g 정도 나간다!), 반찬을 담은 다음 무게를 다시 재서 양을 맞춰 주신다. 이렇게 냉동시킬 음식은 플라스틱 통에 받아와 비닐 봉투에서 꺼내 다른 용기에 옮기는 과정 없이, 그리고 비닐을 버릴 필요없이, 바로 냉동실에 넣는다. 글라스락에 든 반찬도 정리할 필요없이 냉장실에 넣는다. 야채는 신문지 강보에 쌓인 채 베란다에 놔두고 사용하다가, 시들 즈음 신문지를 물로 적셔주거나 젖은 수건으로 덮어 냉장고 야채칸에 투하한다.




유리병으로 가득 찬 <나는 쓰레기없이 산다>의 저자의 집 선반과 냉장고



사진의 오른쪽 유리병에 든 내용물이 이 집에서 2011년, 2012년에 나온 총 쓰레기이다.

일년에 유리병 한 통의 쓰레기가 나온다.



어느 정도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처럼 산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유리병 한 통의 쓰레기는 커녕, 우리 집 비닐 쓰레기 봉투는 코스트코 장바구니 만 하다. 

버섯, 고구마, 샐러리, 냉이, 쑥 등 채소는 일정량 씩 비닐에 미리 포장해서 판다. 생협도, 꾸러미도(혹은 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직거래 장터도 예외 없다. 운반과 유통을 위해 일부는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내가 생협을 한다 해도 비닐에 넣어 유통시키는 방법 말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게다가 가끔은 과자도 먹고 싶고 지퍼백에 들어있는 김자반도 사랑사랑사랑하는걸! (외쿡 가면 이민가방에 김자만 잔뜩 싸갈거임) 그러다보니, 비닐의 산더미는 고잉 온. 


내가 <나는 쓰레기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 씨처럼 독하게 덤벼들지 않아서일까?

집에서 과자도 하고 도시락도 싸고 버터도 만들어볼까나. 하지만 비 존슨 씨마저 구구절절한 핸드메이드를 거치고 난 후 이렇게 고백하지 않았는가.


 

치즈 만드는 시간과 버터 만드는 비용이 장기적 쓰레기 제로 계획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쉬운 길과 친환경적인 길 사이에서 지속가능한 균형을 부지런히 찾는 것이 중요하다. (69쪽) 





유기농 농산물을 종이 박스채로 대량 구입하고 농장에 찾아가 비닐에 담기지 않은 먹거리를 직접 사오는 삶은 나에게 지속가능하지 않다. 김자반, 집에서는 못 해 먹겠고 망원시장 김가게 앞에서 비닐에 담긴 김자반은 거부할테니 롸잇 나우 볶아서 글라스락에 담아달라는 진상 짓은 못 하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면, 쉽고 효과적인 규제를 빙 둘러 가지 말자는 거다.

'시스템이 변화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우리 개개인이 바로 시스템'이라는 <노임팩트 맨> 콜린 베버의 말은 옳다. 비 존슨도, 콜린 베버도 생각 깊은 사람들이고 모르는 바가 아니었을 테지만, 하지만 이 말은 반만 옳다. 규제나 정책은 문제가 이미 돌이키지 못할 지경에 치닫을 때에나 슬슬 움직이는 현실을 보고, 오죽하면 나라도 나서서 지구에 과부하를 안 주고 쓰레기를 안 버리는 삶으로 구호를 외쳤겠냐만은. 하지만 개인적 해결책은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 비용이나 노력, 시간이 너무 많이 들거나, 아쉽지만 웅변에 그치고 만다.


일회용 비닐의 줄이고 싶다고?  개인에게 장바구니를 권하는 것에 앞서 일회용 비닐에 세금을 부과하시라.

<누가 마지막 나무를 쓰러뜨렸나>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비닐세(plasTax) 도입한 결과, 비닐봉투 수요가 1년에 자그마치 90퍼센트 이상, 그러니까 10억 개 정도가 감소했다고 한다. 몇 푼 들이지 않고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이다. 대형마트나 일정 규모 이상의 점포에만 적용하는 비닐봉투세를 전통시장, 편의점, 동네 가게에도 적용하고 공짜로 비닐봉지를 구할 수 없도록 하자. 비닐봉투의 값도 물가 따라 올려서 사람들이 비용을 체감하도록 세심하게 조정하고 말이다. 개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라는 해결책은 정책이 받쳐줘야 효과가 있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혜택이 돌아간다. 


비닐세로 걷은 세금으로는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시간동안 사용되고 버려지는, 단말마의 일회용품으로 죽어가는 새들을 보호하면 어떨까. 새와 바다가 죽어가면서 목숨으로 치르는 일회용품의 값을 그것을 만들고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시키는 거다.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이 발생시키는 외부 비용을 내재화하여 세금을 물리고, 환경을 보호하는 행동에는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행동적 쓰레기 버리기'로 변화시킨 자동차 보험사, 학교, 굴지의 화장품 회사 이야기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개인적인 자구책으로 시작했음에도 '노임팩트맨'도, '쓰레기 없이 산다'도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고 수많은 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특히 이 책에 나온 아몬드를 태워 만든 마스카라와 아이라이너, 전분을 활용한 드라이 샴푸, 밀가루와 전분으로 만든 접착풀, 다목적 식초 세제, 광고 우편물 줄이는 깨알같은 비법들은 백 만번 따라해도 좋다. 책 안 사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나도 레서피들 때문에 기어코 책을 샀다.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에고고고 Egoooo '에고'를 위해서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책의 레서피들을 활용해도 좋다. 저자의 말대로 생활은 가벼워지고 생활비는 내려가고 건강해지는, 비우면 행복해지는 삶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