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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민한 한국 사회의 편린들, 2015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7. 13.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올해에도 어김없이 읽었다. 

매해 나왔겠다 싶었을 즈음 찾아 있기도 하고, 

잊고 있다가도 서점에 진열된 것이나 다른 사람이 읽고 있는 것을 보면 

척 구입해서 사 읽게 된다.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상의 취에 따라 출간 후 1년 동안 5,500원에 판매합니다."

그러니 사 읽을 수밖에.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무료로 한 몸 뉘일 공간을 내놓는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을 하면 

의외로 한국말을 곧잘 하고 

한국에만 살았던 나도 모르는 '슈퍼쥬니어'의 멤버가 몇 명인지 알고

런닝맨의 '유재석'이 좋다는 말을 해서 유재석 씨는 '무한도전'에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나에게 한국의 문화 교양을 불어넣어주는 '외쿡 언니'들이 종종 있다.

카톡 아이디를 서로 주고 받고서 우리 집에 묵을 그녀의 카톡 프로필을 보면 

보무도 당당하게 한국어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가 써져 있어서 깜놀하기도 한다. 


이로코롬 한국을 잘 아는 언니들이 여행지나 맛집 말고 

한국 사회를 콕 집어 반으로 잘라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은데 

하루 정도에 걸쳐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예매 15분 만에 전석 매진되고 말았던 '브루노 마스'의 내한 공연 예매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2015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을 손에 들려주겠다. 


말로 표현하기 미묘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증후적 요소들을 

젊은 작가들이 영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니 상 받은 작가들 작품이 아니겠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대표 수상작인 정지돈의 <건축이냐, 혁명이냐>는 책 뒷날개에 나온 정영문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좁게는 한국 현대건축사, 넓게는 한국 현대사회사의 한 면을 잘 그려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실들을 허구과 잘 조합해 지적 소설의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미덕은 음미해 읽을 때 드러나는 유머러스한 문장들에도 있었다."


가령 아래 문장들.

논문에나 나오는 고다르 감독의 다큐먼터리 사조와 

조르주 디디위베르망이라는 철학자까지 현란하게 잘난 척 하시다가 

종종 찔러주는 유머러스한 문장인지 유머러스한 현실인지에

한번씩 빵 터지게 된다. 


 



군인 출신으로 최연소 부산시장을 지낸 김현옥, 

테크노크라트이자 미래주의자로 그가 만든 원대한 기획은 바로 새서울백지계획이었다. 

그의 계획은 르 꼬르뷔지에의 '삼백만을 위한 오늘의 도시'를 모방한 것으로 ... 

도시의 외곽선을 무궁화 모양으로 만든다는 것에 있었다. 

커헉... 지금 서울로 카드 섹션 하시나. 뭔 무궁화... 것도 르 꼬르뷔지에 운운함시롱. 




그는 마르네티와 헨리 포드,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예술성과 테크놀로지, 이념을 전수받았다고 했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자서전인 <국가와 혁명과 나>를 강제로 읽게 했고 ... 

거기에 나오는 박정희 대통령의 시 '불란서 소녀'를 좋아했지요.

김현옥 시장 스스로 시 쓰기를 즐겨 ... 

언론에 돌릴 보도자료를 시로 써 기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했는데

새서울백지계획 보도자료 역시 시로 작성되었지만 ...




우리는 여의도를 한국의 맨해튼으로 만들 생각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둑을 쌓아야 했는데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우리는 한강의 쓸모없는 섬을 폭파해 거기서 나오는 암석을 사용하기로 했지요.

노들섬과 밤섬 중 어느 쪽을 폭파해야 하나 한 시간 정도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밤섬을 한 시간 만에 고르고 밀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퀴어소설, 윤이형의 루카. 

루카를 읽으면서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을 떠올렸다.

둘 다 지극한 사랑 이야기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사회적이었고 동시에 지극히 퀴어적이었다.

주인공이 동성애자가 아니더라도 통용되는, 

사랑하고 만나고 지치고 헤어지는 순간이 오롯이 들어있는 동시에 

동성애자라서, 퀴어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관계의 편린들이 떠다녔다.

아프고 진중하고 진지한 소설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신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루카, 내가 너를 만난 것이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것은 차별이나 소수자 같은 말들과는 정말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었을까.

너는 내 세계에서 소수자였고

나는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고 싶어하는 너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진중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

동성애자 아들을 죽은 자 취급했던 목사 아버지가 

아들의 전 애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후회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싶었다고. 

...

그 말을 듣는 순간 솟구치는 화를 아무래도 누를 수 없었다. 

타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는 것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침묵의 대가를 치르고 너라는 존재를 복원하려 하는 그가, 

그를 그렇게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그 힘을 갖지 못한 내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그 외에도 미스터리 읽듯 누가 죽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최은미의 근린,

잊혀져 가는, 그러나 사라지면 안 되는 '조중균의 세계' (김금희)  

그리고 매번 젊은작가상을 타는 작가다운 역량을 보여준 손보미의 임시교사. 


올해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을 카우치서퍼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