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 life/etc.

개인과 조직 사이 어디쯤, 놓아두는 색.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12. 16.


대개 혼자 여행을 다녀서 스스로도 몰랐었는데, 어느 날 여행을 갔이 떠난 룸메가 내게 물었다.

"너, 눈치 안 보고 대놓고 뒷다마 까고 싶어서 여행 다니지?" 

헉!

얘는 꽐라야,  얘는 못 쓰겄어, 얘는 나사 좀 풀렸어... 등등 한국말 못 알아먹는다고 보는 즉시 그 사람에 대한 품평을 시작했던 것이다. 넵...인권은 '인권 이야기'나 '불편해도 괜찮아' 등 글로만 배웠습니다. ㅠ.ㅠ 

뭐든 우선 품평하고 꼬투리를 잡아내 한 마디 꼭 하고 비난을 해 줘야 하는 속이 씨어언~한 직성인 게냐.  

아아, 나란 녀자. 

좋은 거 보고 좋은 데 가고 재미난 거 해도 마지막에는 "그런데 말이야"라고 덧붙이고 만다. 


개인들이 사부작사부작 꾸려내는 힘들을 보면서도 "그런데 말입니다. 조직화되지 않은 힘이 세상을 바꿔낼 수 있을까요?"라든가 "개인들의 취향이나 취미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운동마저도 개인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을 지우는 신자유주의식 개인화에 꽂혀버린 세상"이라고 짐짓 우려를 가장한 가오를 잡았다. 쉽게 사회문화적으로다가 조직과 개인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부자로 하여금 엄청난 세금을 내게 하고 공적으로 부의 재분배와 복지를 짜는 북유럽 문화가 '조직적'이라면, 부자 한 명이 엄청난 부를 기부하고 부자네 재단이 기부금 사용처를 사적으로 정하는 미국식 문화가 '개인적'이달까. 한 마디 안 하면 배알이 꼴리는 자의 취미 및 특징답게 개인을 내세우는 방식에 대해 꼬깃꼬깃 따지고 있었다. 


뙇! '어슬렁 여행 드로잉' 등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미영 씨의 발제에서도 그런 고민이!


며칠 전 일상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시도한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플랫폼 '미트쉐어'에서  연말결산 격으로다가 그동안 진행되었던 모임 중에서 몇 개를 뽑아 '미트쉐어 컨퍼런스'를 열았다. 와, 이건 운동권 팔뚝질의 새로운 물결이구나, 싶게 어찌나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놨던지 '핸드메이드 페어'에 구경 가 DIY 워크샵이라고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으흐흐... 나의 부스도 개설되었다능 :) 









미트쉐어 컨퍼런스의 다양한 주제 보기





그런 내 생각에 실마리를 던져준 개인들의 정치실험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며 모두가 함께 결정하는 시스템. 앱 상에서 구현된 개인들의 민주주의. 그리고 이 실험은 "우리 몇 시에 회의할까요?"라는 일상의 문제부터 "서울시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 같은 공원으로 만들까요?"라는 정치적 의제까지 모두 포함한다. 직접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결정된 의견이 기존 정치권에 잘 반영되지 않자, 새로 당을 꾸려 선거에 참여하고 이 결정을 정치권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개인으로 시작되어 조직화된 힘으로 뭉쳐지고 민의를 '대리'하는 당의 탄생까지. 


관려기사: 한겨레21 (2015. 12) 

호모 모빌리쿠스의 정치 실험

디지털 사용자라면 누구나, 일상의 의제부터 정부 정책 찬반 투표까지… 온라인 기반 직접민주주의 지향하는 루미오는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http://h21.hani.co.kr/arti/PRINT/40783.html



 

 

서울시 NPO지원센터에는 이런 알림판이 있다. "힘을 빼야 깊은 물에서 뜰 수 있어요, 놓아두는 색" 

삐딱하고 닦달하고 이건 아닌데 하고 비판하는 내가 나이를 먹었는지, 이런 말들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부들부들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개인화된 운동이면 어때. 개인들이 모이고 이야기하고 뭐라도 해보겠다는데. 어쩌면 팔뚝질도 힘을 빼고 놓아두면서도 개인들이 자연스럽게 뭉치고 때가 되었을 때 조직화되는 역량을 키워야 할지도. 내 스스로의 삶에서도 좀 힘을 빼고 놓아두어야 할 때이고 말이다. 신경질내고 비난하고 아니라고 하면서 빚어낸 갈등들이 마음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다. 이 겨울, 고구마 쪄먹고 손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으면서 마음에도 군불을 때야지. 


테드 동영상 

1) 피아 만치니: 인터넷 시대에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법




2) How technology can enable everyday democracy : Ben Knight at TEDxTeAro (루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