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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etc.

[미술관] SeMA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지아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10. 26.

언젠가부터 서울시립미술관(세마)의 메일링에 눈을 기울이게 된다.

북서울미술관부터 덕수궁미술관, 남서울 분관까지 

서울의 곳곳에 있는 점, 공간이 위치한 자리와 건물 자체도 특별한 점이 좋다.

게다가 주변의 나무들과 산책할 공간도 좋고!    

하루 종일 미술관을 돌며 다리가 아파도 아직도 볼 것이 남아 있는 압도적인 크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품이 너무 적어서 따로 찾아가기에 아쉬운 느낌지 들지도 않은,

한 두 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는 딱 적당한 크기의 미술관.  

게다가 시립이라서 특별전을 빼면 입장료도 대개 무료다. 

그리고 전시 기획이 점점 좋아진다! (내 취향에서 보자면:)

지난 5월인가에 열렸던 윤석남 전을 필두로 

11월 8일까지 열리는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지아> 전도 '시립'답지 않은 기획을 내보인다. 

좋다. 


치하루 시오타 Chiharu Shiota



거미여인이라고 불리는 작가.

작가가 만든 거대한 거미줄 같은 방의 동굴로 들어가보면 '거미집'의 신비로운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꿈의 이후>라는 설치작업인데, 10명의 사람들이 100시간 동안 실을 엮어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웨딩 드레스에 실이 연결되어 있는 부분에 옷핀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웨딩 드레스를 찌르는 옷핀으로도 작가가 표현하는 여성의 부재와 억압이 보이는 듯 하다.  



거미여인의 영상 작업

검정 실이든, 혈액이 뽑혀 나오는 혈액관이든 역시 선으로 꼬인 비정형적 이미지. 



장파 Jang Pa 




여성 작가가 세밀하고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원초적인 섹슈얼리티를 찾는 여정, 혹은 성적 판타지. 

나무와 여성, 그리고 여성과 여성. 


밍 웡 Ming Wong 



 


시청 앞 '동성애 혐오' 집단의 플랑카드 문구를 보면 (항문섹스, 남자 며느리 등의 혐오 발언을 보면)

이 사람들 개념 속에 동성애자는 '남자 게이'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호모포비아들은 대개 레즈비언보다 게이들을 더 혐오하고 공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아마 자신들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가치 '남성성'을 부정하고 무너뜨리는 남성에 대해 열폭하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여성들은 자기들 '급'이 안 되기 때문에, 즉 동등성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위협도 안 되고 그래서 공격할 가치도 덜 느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MTF) 젠더를 바꾼 사람들이야말로 이들의 혐오 게이지를 뿜게 만들 요인이 될건데,

또한 그렇기 때문에 반문화 진영에서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된다. 


싱가포르 출신 작가 밍 웡은 이번 전시의 유일한 남성 작가이다. 

트렌스젠더들의 삶을 사진과 영상에 담고, 

스스로 여장을 한 채 아름다움의 의미를 묻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업을 통해 양성으로 규정된 성의 관념을 깨부순다.


이진주 Lee Jinju




우아!

눈 앞에서 커다란 이 그림들을 보면 이런 마음이 든다.

세밀하고 정밀하고 치밀한 그림 속에 헐벗고 분해되고 남루하고 실존적으로 놓여있는 여성들의 몸, 그리고 한국적 현실. 

한 그림 안에 평범한 한국 여성들의 공간과 시간이 압축적으로, 그러나 구체적으로 놓여 있다.

직접 보아서 가장 좋았던 작품. 


인 시우젼 Yin Xiuzhen


처음에는 이 뭔 놈의 황량한 도시 풍경이던가, 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건조한 아스팔트가 아스팔트가 아니라 재활용 검정 천으로 둘러씌워져 있고

내 키보다 두 배는 될 듯 한 비행기 바퀴에도 천이 둘둘, 겹겹이 싸여 있다. 

이를 통해 아스팔트 고속도로는 도시인이 편하게 쉴 수 있는 부드러운 길, 혹은 '더블 베드'가 되고

비행기 바퀴도 쓸모가 다한 흉물에서 고도성장의 중국 도시를 상징하는 퍼포먼스 작품이 된다. 

천, 자수, 텍스타일 등을 통한 '손 작업'을 통해 도시는 조금이나마 사람의 온기를 띈 공간으로 거듭 난다.  






  쉴라 고우다 Sheela Gowda 





아주 정교한 수공예 자수를 보고 있자니

동남아의 몽족이 천연염색을 한 천에 정교한 자수를 해서 공정무역 상품으로 내놓던 것이 생각났다. 

그 자수란 한땀 한땀 굉장히 세세해서 손가락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나노 입자를 조립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인도 출신 작가 쉴라 고우다는 종교와 지역 갈등을 겪은 과정에서 주류 경제에서 소외된 지역 여성들의 

전통적 공예품을 관심을 갖고, 실과 천 등의 재료로 수공예 작품을 선보인다고 한다. (전시 설명회 브로슈어에 따르면)

몽족 여성들도 민족적 억압과 소외에 맞서는 한 방법으로 (또한 가부장적 억압도 있지 않을까.) 

소수민족의 전통 문양을 자수 놓고 있었다. 

어쩌면 그 한땀한땀은 한풀이자 눈물이자 치유일지도 모르겠다.



정금형 Geumhyung Jeong


그리고 제일 앙징 맞고 위트 넘치는 작품은 정금형의 <휘트니스 가이드>라는 작품과 <문방구>라는 동영상!

문방구라는 짧은 동영상은 가서 보아야 할 듯. 

종이와 연필과 카메라로 이렇게 에로틱한 작품을 만들다니, 작가님은 지니어스!

휘트니스 가이드도 설치 작품만 봤을 때는 뭥미? 였는데

동영상 장면을 보니 뭐 하시는지 알겠다는 느낌이 왔다. 

일상의 오브제들과 파트너가 필요 없는 자기애적인 성적 판타지가 '깬다'. 


  

FITNESS GUIDE_Geumhyung Jeong from Geumhyung Jeong on Vimeo.



<문방구> 스크린 샷 

(이미지 출처: http://www.ubysound.com/113)

전시는 11/8일까지, 무료 관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3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