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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etc.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유령이 망원동을 배회하고 있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10. 10.

아아, 자다가 공사 소리에 퍼뜩 깨는 이 심정을 알랑가.

지금도 들들들, 203호의 리모델링 공사 소리가 일주일 째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을에 어울리는 센치한 재즈보컬 목소리>라는 스트리밍 앨범을 공사 소음 대항마 BGM으로 깔아두고는

집에서 '버티고 있다'. 

곧 카페나 도서관으로 대피할지도! ㄷ ㄷ ㄷ   

우리 집 공사하고 이사 들어와 옆 집에 떡 돌릴 때 

"공사 소리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저는 밤에 일하고 낮에 자거든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 와 깨닫게 된 바, 우리 이웃들은 참말로 교양 넘치고 마음 넓은 양반들이었구나.

그렇게 화를 코딱지 만큼도 안 내면서 '오늘 해가 좋네요' 라고 말하듯 소음 이야기를 했다니!

아아, 죄송해요. ㅠ.ㅠ 몰랐어, 몰랐어. 

교양 없는 저는 걍 203호 쳐들어가 당장 공사 때려쳐! 라고 깽판 놓고 싶다고요.


그런데 더 큰 복병이 우리 망원동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유령이. 

망원동, 연남동, 경리단 길이 뜨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사는 망원 2동은 뭘, 끄덕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 망원역 근처에 있는 망원 1동과 성산동의 일이라고, 

이 동네를 보라고, 프랜차이즈 식당 하나 없는 참말로 정겨운 서민 동네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나고들 있다. 



우리 앞 집 건물은 재건축 이주 개시라는 왕 플랑카드를 걸어놓고 공사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공사 소음과 먼지와 낡지만 싼 붉은 벽돌 다세대 주택이 사라져가는 것을 서운해하고 있다.

뭔 놈의 경축이냐, 라는 마음과 함께.

이미 주변에서 '목련'처럼 '맥주양주 집' 이름인냥 아련한 한글 이름을 단 

20~30년 된 붉은 다세대 주택이 여러 채 헐려나가고 있다. 



 



망원동 맛집으로 손꼽히는 '정광수의 돈까스 가게'의 창고와 회합 장소 옆에 있는 

(영업은 안 하고 오밤중에 사장님과 그 친구들로 보이는 아쟈씨들께서 정겹게 모임하심) 

미광 세탁소가 폐업을 내걸었다.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쭈욱, 동네 토박이처럼, 터줏대감처럼 있던 세탁소였다. 

이번 봄에 맡긴 겨울 옷을 찾으러 세탁소에 방문한 나는 

'오지라퍼'의 특성을 발휘해 "아니, 오래된 가게를 왜 폐업하세요?"라고 묻고 말았다.

완전 슬프고 힘 빠진 얼굴로 세탁소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저도 참 서운하고 힘드네요. 이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린다고 하네요.

요새 망원동에 투기 자본이 들어와서 낡고 싼 건물을 사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우리 같은 가게들은 다 쫓겨나네요."

뭐야, 뭐야, 속상하게 괜히 물어봤어. ㅠ.ㅠ 

새로 생긴 으리 번쩍할 건물을 미워하고 말테다..... (그런들 어쩔겨...)


나는 말이다. 

이 동네 '집주인'이지만 제발이지, 집값도 안 오르고, 새 건물도 안 생기고, 한 박자 천천히 변하면 좋겠다. 

이 동네의 아우라를 형성해 온 사람들이 그대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이 이 동네 집세가 올라 은평구나 일산으로 떠나는 것을 보면, 

나도 떠나야 하나, 하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 매력 덩어리들이 다 떠나고 나면 마포가 뭔 재미인겨. 

물론 어르신들께서 보수적이라 나 같은 '정상가족' 논외 인간은 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런 분위기 마저도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게 이 동네니까. 

가난을 불편이 아니라 '불행'하게 만드는 

심하게 낡아 빠지고 허물어져 가는 건물은 손보고 다시 지어도 좋다.

새로운 유입자들도 좋다. 원래 도시란 역동적이고 유동적이고 섞이고 변하는 맛이 제격이니까.

나도 지역에서 올라온 새로운 유입자이자 유목민이자 떠돌이였으니까. 

다만 그 방향이 '합정동'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섭다.

내가 알던 합정동은 지금 망원동의 모습이었는데, 지금 합정동은... 음... 

'스몰' 신도림 디큐브나 영등포 타임스퀘어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 마르듯 연남동과 망원동으로 건너오는 것일테지. 나처럼.


쫓겨날 뻔 하다가 2년간 잠시 숨통을 튼 망원동의 커뮤니티 카페 '작은 나무'는 2년 후 어디에 자리 잡게 될까. 

마음 편히 장사할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마음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맘사모 회원의 가게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임대료, 권리금이 비싼 지역과 싼 지역을 비교해보자. 왜 임대료가 비쌀까? ...(중략)

넓은 도로가 있고,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으며 

학교가 좋거나 넓고 쾌적한 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공공투자가 많이 된 곳의 땅값, 임대료, 권리금이 높다. 

물론 그것만이 높은 임대료의 원인은 아니지만 

공공인프라가 좋은 지역이 아니면 임대료가 높게 형성되기 어렵다. 

공공투자는 누구의 돈으로 하는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으로 한다. 

즉 세금으로 투자했는데 그 열매는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한 

토호 세력과 권리금 장사치들이 챙긴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간단하다. 

공공투자로 발생한 투자이익은 다시 공공이 거둬들여야 한다. 

골목사장 분투기(강도현, 북인더갭, 2014.) 


지금도 물론 덜덜덜, 공사 소리가 골을 울리지만 

203호에 쳐들어가지 않고 젠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오래된 붉은 벽돌 다세대 주택을 사서 샷시까지 바꾸고 저렇게 오래 고치는 것을 보면 분명 실수요다!

(대부분 셋집으로 내놓을 집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싱크대랑 욕실 공사만 하고 예쁘게 꾸며서 집세를 올림, 

단열재나 샷시 공사 안 함) 

여기에 직접 거주할 집 하나짜리 집주인이라면 그렇게 마음껏 고쳐 살기 좋은 집, 

그리고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듭시다잉.

환영합니다!    

(비혼이나 비정상가족이라면 더욱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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