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6. 2. 2 <삶과 문화>에 쓴 글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장의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우리 사회에서 ‘저녁 있는 삶’을 바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위기가 영웅을 부른다고 했던가. ‘창조경제’와 ‘노동개혁’을 주창하사, 창의성을 고양하고 일자리를 나누고 연공서열을 배제한 사회를 제시하는 지도자가 등장했다. 심지어 “의무교육은 좋을 수 있다, 의무휴가는 더 좋을 수 있다”는 말을 인용하며, 스웨덴처럼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사용기간을 정했다. 그리고 한여름에는 일주일간 사무실을 통째로 쉬어 전력난도 덜고 개인의 창조성도 강화하도록 재충전 휴가를 권고했다. 재충전 휴가에 각자 연차를 붙여 2주 이상 연속으로 쉬어야 진정한 휴가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가장 획기적인 것은 노동개혁과 ‘칼퇴근법’이 함께 추진된 것이었다. 주당 노동시간으로 정해진 최대 52시간을 30시간으로 줄여 일자리도 나누고 ‘저녁이 있는 삶’의 토대를 닦았다. 물론 고양이가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기존의 60%로 줄인 대신 기업은 고용을 보장하고 정부는 임금의 80% 정도를 지원하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를 참고했다. 또한 일본처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눈 회사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지급받았다. 이러다 경제가 ‘폭망’한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시리얼 업체 ‘켈로그’가 1930년에 시도한 바 있는 6시간 노동제를 들려주었다.
창업자 켈로그 박사는 “일에 쏟는 엄청난 에너지를 줄이고 건강해지는 것에 집중할 때까지” 일에 몰두하는 손자의 임금을 삭감했던 분이었다. 경영진은 시간당 임금을 높이는 대신 초과시간수당을 없애 노동효율성을 높였다. 이에 노동자들은 줄어든 임금과 노동시간을 받아들였다. 켈로그는 6시간 노동제 시행 일 년 후 그전에 비해 두 배의 이윤을 거뒀다. 또한 미국의 유타 주 관공서는 주 4일 근무를 하며 금토일을 연속으로 쉬는데, 이를 통해 에너지 비용을 13%나 줄이고 노동자의 초과근무와 무단결근 역시 줄었다고 한다.
한때 심상정 의원의 ‘사자후’ 동영상이 회자되기도 했었다. 그는 고액 연봉자인 장관과 국회의원을 향해 “당신들이야말로 임금피크제 적용 받습니까?”라고 호통을 쳤는데, 물론 그럴 리 없었다. 이후 국민투표를 통해 고위 공직자와 기업 경영진에게 임금피크제를 먼저 적용하기로 했다.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업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를 제한한 것을 참고로 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절감한 비용이 기업과 기관에 쌓이지 않고 청년 고용 창출과 잡 셰어링으로 이어지도록 다양한 정책들도 시행됐다. 그런가 하면 성과급제도 고위직에 우선 적용되었다. 예를 들어 대표발의 법안수가 1년에 1건 정도로 국회의원 평균 9건에 못 미치고 본회의 출석률 0%를 달성한 박근혜 전 국회의원처럼 활동할 경우 연봉이 삭감된다.
뭔 헛소리냐고? 노동개혁 기사를 읽다가 슬쩍 잠에 들었는데 꿈에서 이상적인 노동개혁의 모습이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꿈에서 깬 나는 더 나빠질 여지가 남아있는 이곳은 아직 지옥이 아니라고 일갈한 손아람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실현되면 52시간 노동시간에 특별연장노동시간이 더해져 오히려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일부 제조업과 전문직에까지 파견이 확대되고, 일반 해고가 일상이 된다. 지금도 114 안내원들에게 전신주에 올라 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실적이 나쁘다는 자술서를 쓰게 한 다음 경고장을 발부해 해고하는 곳에서 말이다.
지옥 타령 말고 투표나 참여하라고 윽박질렀건만, 이제 해외에서 닭털을 뽑고 있을망정 영영 ‘헬조선’으로 돌아오기 싫다는 젊은이들을 말릴 재간이 없어졌다. 네가 돌아오지 않아도, 이 땅에서 아이를 낳지 않아도 여당 대표께서 이미 ‘조선족 대거 이민’이라는 방안을 마련해놓으셨으니까. 닭털을 뽑더라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너는 현명했다. 우물쭈물하다가 ‘탈조선’하지 못한 나는 그저 꿈 내용이나 긁적이고 있다. 대통령님 말씀대로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줄지……모르잖아요?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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