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입장도 아니고,
청소년 인권단체에서 문제 제기했듯 '아이들에게 핵없는 사회'라는 구호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주체적인 존재보다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수동적 존재로 자리매김 시킨다는
비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참담하고 이런 세상이 어마무시해서 봄날이 봄날 같지 않았다.
30-40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라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 <수짱의 연애>를 읽다가 멈춰서게 되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건네는 '많이 컸구나'라는 어른들의 말이
'우리보다 오래 살아라'라는 뜻이었다는 부분을 읽다가
가슴이 콱 맥혀서였다.
먹는다는 것은 큰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이 컸구나'가 칭찬이었던 시절
그 '많이 컸구나'는
우리들보다 오래 살아라,하는
어른들의 응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라가 융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밭 갈고 나무하는 한갓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고염무)
한갓 필부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합정동에서 망원동 사이,
개인의 이름을 단 노란 현수막 20여개가 길가 가로수에 묶여 있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4535
많이 컸구나, 라며
'우리보다 오래 살아라' 마음 속 응원은
이제 어떻게 해줘야 할까.
'Every d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같은 마음으로 Alone again. (0) | 2015.09.14 |
---|---|
[노래] 센티멘탈 시너리,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 (2) | 2015.04.20 |
자발적 멸종운동에 비자발적으로 함께한 우리 동네 고양이들 (2) | 2014.03.24 |
생일날 아침, 찬란한 유언장 쓰기 (2) | 2013.10.27 |
휴가라는 자체만으로, 일상은 여행이 된다. (0) | 2013.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