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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휴가라는 자체만으로, 일상은 여행이 된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8. 2.

놀랍기도 하여라~

금요일 낮 3시에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 질을 하고 있다니.

그렇다. 이 날들만을 위해 직장 생활을 견뎠다 할 수 있는, 바로 '여름 휴가'철이다.

작년 여름 휴가 때는 교토와 오사카를 어슬령거렸는데 그 후유증으로 이번 여름은 레알 '방콕'~

그 동안 박박 긁어모았던 비행기 마일리지를 다 탕진하기도 했거니와

콧구멍에서 나오는 들숨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것만 같던 일본의 무덥던 여름,

그리고 한 번 뜰 때마다 8만 킬로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비행기 여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여행은 무조건 해외 사대주의'를 접기로 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우글거리는 해변가에 가자니, 명절 대이동 때 막힌 고속도로에 머무는 기분이라 그건 또 절.


그리하여 이번 여름 휴가는 마치 백수처럼, 눈 뜨고 일어나 그날그날의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기로 했다.

(백수가 제일 바쁜데 무슨 백수처럼? 이람 -_-;; 그런 생각이 들지만서도)

하지만...'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처럼 오늘은 뭐를 해야 하고 이것도 챙겨야 하고 거기도 가야 하고 ... 등등

머리 속에서 '할 일 목록 to do list'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휴가 때 마저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증후군에 시달리는 나를 보면서

시민단체 다니는 나는 해당사항 없다고 생각했던 '동중독에 강박증세' 쩐다, 라고 자각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에 읽을 책 목록에 '피로사회'와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를 우선순위로 놓고!

하루 중 제일 싸랑하는 시간이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 끼우고 뒹글거리는 때인데

일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암만 좋아해도 책 세 장만 읽어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리곤 아침! 그리곤 출근!! 그리곤 밤엔!!!

직장일에 진액을 빨리고 난, 탈진 직전의 상태라고나 할까.


분주함은 결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분주함은 기존의 것을 재생산하고 가속화한다."

창조적으로 일하고 자신의 문제에 개방적일 수 있는 사람은 쉬지 않고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다.

산책하고, 잠을 자고, 꿈을 꾸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권태에 몸을 맡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 61쪽>


암튼 그래서 휴가에는 읽고 싶은 책을 한없이 읽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집 앞에 있는 한강을 정처없이 자전거로 쏘다니기로 했다.

더운 날, 한 낮에는 카페와 마포구립 서강 도서관과 망원 수영장으로 피신하고 말이지.


<한강 공원에서 책 읽다가 한 낮에는 망원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그리고 다시 책 읽고...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이 무릉도원에 앉아 휴가 때 하고 싶은 것 목록 (결국 목록 만들기 버룻은 못 고쳐;;)을 만들었다.


1. 휴가 첫날엔 성지 순례하꼭 들리는 '서울그린치과'에서 치아 스케일링 하기

올해부터 일 년에 한 번, 스케일링에 보험이 적용이 된다.

그 전에는 5만원이었던 스케일링을 13,000원에 해결! (짝짝짝!! 난 의료보험 완전 지지자)

대흥역 4번 출에 있는 서울그린치과 정말 왕강추인데,

대흥역 살 때 우연히 발견한 곳으로, 하도 좋아서 해마다 스케일링 받으러 가고 있다.

과잉 진료 안 하고 꼼꼼하게 관리해주고 스케일링도 의사가 직접 한다.

(시청역 유디 치과에서 110만원에 뭐랑 뭐랑 다 치료해야 한다고 해서 허벌라게 쫄았는데

집 앞에서 치료하려고 우연히 여기 갔더니 잇몸 파인 부분 씌우고 충치 하나 치료해서 이만 오천원 쯤 나왔다.

내가 주의해야 할 치아와 관리하는 방법을 주구리장창 설명하더니 아말감 튼튼해서 일부러 금니 안 해도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곳에서는 임플란트와 신경 치료는 큰 병원 가서 하라고 돈도 안 받고 상담해서 보내고 금니 치료도 안 한다. -_-;;

예약하려고 전화하면 전화 안 받기 일쑤인데

그게 다 간호사나 위생사 없이 혼자서 수납, 접수,치료하는 일인 치과라서 그렇다.

(보험 되는 것만 하니 고용할 만큼 이윤이 안 남는 듯 하다.)

치과가 아니라 네일샵에 온 듯, 진료 중에도 수다 쩌시고 썰렁한 유머까지 아주 열심히 하신다.

내가 '(휴가 아니에요?) 거기 오늘 열었어요?'라고 전화로 예약을 했더니

손님들이 자기 망했을까봐 아직도 가게 문 열었는지, 한 번씩 전화로 찔러본다고 썰을 푸셨다. -_-;;

그 날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는 치과에 들어갔는데 안에서 자다가 나온 부스스한 얼굴로

자기 안 망하고 이렇게 문 열고 있다고 (누가 뭐라고 한 것처럼) 치열하게(?) 강조하셨다.

하도 괜찮아서 인터넷 찾아봤더니 '의느님'이라고 불리는, 중졸로 알바 뛰다가 검정고시로 서울대 치과 간 인재였더라능;; 

스케일링 13,300원 나왔는데 괜찮다며 300원 깎아주셨다.

저번에 갔을 때는 지금 스케일링 안해도 된다고 관리만 이케 하라고 주의할 점만 백 만 번만 강조하다가 빠빠이.

당빵 진료비는 안 받으시고.

치과 가는게 휴가 때 놀러가는 것처럼 심적 부담이 안 된다.

스케일링도 피 안나게 살살, 아주 세삼하게 해 주시니 완소. 

(전화: 02 719 2879, 혼자서 진료하시니 필히 전화로 예약을 하고 가야 한다. 예약 환자 많으면 낭패 볼 수 있으무이다.)



2. 하루 종일 책 읽기, 하루 종일 영화 보기

으흐흐 에헤라 디야~


3. 하루는 특별하게 놀아야죠. ㅋㅋ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발 하권 예매!

지산락페에 자무로콰이가 오니 더 땡기지만, 대중교통편을 생각해서 인천으로 낙찰.

(이 나이가 되자 누가 나오는가보다 밤늦게 집에 편히 돌아오는 편이 더 중요해짐. 뭐 스웨이드도 멋있긴 하잖혀)


4. 망원+월드컵 시장 지도 만들기

휴가 내내 한강 망원지점에서 상암지점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그리고 짬짬히 망원과 월드컵 시장에서 외식과 군것질을 해 대면서 유유자적 거닐 듯한데

망원동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 젊은 영혼들을 위해

자그만한 정원에서 수제 버거먹을 수 있는 카페, 1,500원짜리 최저가 잔치국수를 맛볼 수 있는 곳,

유기농 먹거리와 생협 물건의 '콜라보레이션 셀렉트샵'이 담긴 지도를 그리고자 한다. (손으로 개발새발 그리지 뭐)

과감히 신선한 생선 가게와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정육점,

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백화점 지하매장서 파는) 아스파라거스를 취급하는 채소 가게 등 '살림형 식자재' 가게는 생략하고

시장 돌아댕기면서 군것질 하거나 잠깐 들려서 한 끼를 채우는 곳 위주로 지도를 만들 계획. ㅋㅋ

아우, 근처의 대형 마트만 들르지 마세용잉~ 망원시장도 있으니께요.

LED 전구 사러 홈플러스 갔는데 장 보러 나온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 아이코야. 망원시장 망해불겄네... ㄷ ㄷ ㄷ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건만, 여전히 '할 일 목록'을 만든 여름 휴가.

하지만 휴가라는 자체 만으로도, 일상의 삶 여행이 된다.

필요에 의해 장을 보고 금세 지나쳤던 망원 시장의 가게들, 동네 화단의 꽃들, 한강 너머로 보이는 양화대교의 실루엣,

일상의 사물과 풍경들이 한가한 시간을 틈 타 반짝반짝거리며 '저게 저랬단 말이야?'하고 새록새록오른다.

여행지에서 보이는 넉넉한 친절함처럼, 어제는 마을버스에서 내리면서 '고맙습니다'하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뭐, 생뚱맞았다면 할 수 없고. ㅎㅎ

휴가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일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미 인지한 나는 어쩌면 휴가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지도.

그래도 지금은 직장에 복귀할 날이 무섭고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