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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자발적 멸종운동에 비자발적으로 함께한 우리 동네 고양이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4. 3. 24.

자발적 인류 멸종운동(VHEMT·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이라고 들어봤는가.

나는 <인간없는 세상>이라는 책에서 '옴진리교'나 '호랑말코 교'처럼 사이비적이고 묵시론적 이름의 이 운동을 처음 접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국의 레스 나이트가 창립한 자발적 인류 멸종 단체는 지구가 인류가 없을 때 더 나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인류는 출산을 하지 말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이 물리력을 동원하여 사람들이 강제로 출산을 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자살 혹은 살인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극히 평화적인데, 오래 살되 지구의 평화를 위해 흔적없이 죽어 사라지자고 한다.  

 

"정의상 우리는 외계상의 침략자입니다.

아프리카 말고는 어디나 그렇지요.

호모사피엔스가 가는 곳 어디나 멸종이 뒤따랐습니다."


아프리카에만 유독 코끼리, 코뿔소 같은 대형 포유류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호모 사피엔스의 지능이 발달하는 사이 다른 포유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적응의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진화된 지능으로 발달한 인류가 쳐들어간 신대륙은 거의 모든 대형 포유류의 씨가 마른다. 박민규의 소설에도 나오듯, 모리셔스 제도의 도도새는 두려움 없이 스페인군에게 다가갔다가 몇 년 안에 멸종되었다.


자발적 인류 멸종이라니 너무 비관적이지만, 그리고 지구의 평화보다는 나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선택이지만, 나 역시 출산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에 동의해서다. 나는 한 해 102톤, 하루에 약 2kg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한 명 더 생산하는 것이 무섭다.


인간이 응축적으로 모여 사는 도시에 함께 꽈리를 튼 고양이와 비둘기도 개체수 조절 없이 평화롭지 못한 듯 하다. 도시 쓰레기에 의존해 인간과 자동차 이외에는 별 다른 천적 없이 무한 번식한 고양이와 비둘기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보여준다. 자연 수명이 12~13년 쯤 되는 길냥이는 평균 3년을 못 살고 죽는다. 하지만 고양이와 비둘기가 자발적으로 피임을 하거나 출산을 거부하거나 조용히 살다 흔적없이 죽기를 결단하기는 어렵다. 반어적이지만 '자발적 인류 멸종'은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 아닐까. 이런 '인간은 만물의 영장'격인 생각은 고양이의 자발적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양이 4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단행했던 밤, 찾아왔다.


난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귀엽기는 하지만 키울 만큼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왜 집에서 동물을 키우지 않았는지 울엄마가 이해가 가고도 남는 나이가 되었다. 한데 집을 이사하고 한 동네에 정착하면서 <모리한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선생님이 잘 사는 삶의 기준 중 하나는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라고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다.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 중 혼자서, 조용히, 신속하게, 집 바로 앞에서 할 수 있는 일로 길냥이들에게 밥과 물을 주는 일을 시작했다. (잘난 척 열라 해서 미안하지만 모리 선생의 기준에서 잘 사는 삶을 살고 싶었다냥~ 그게 왜 지역사회를 위한 길이냐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냥~)


우리 동네에 지하 주차장이 있는데 똑같이 생긴 젖소 고양이 5마리가 떼지어 살고 있었다. 퇴근하면서 밥과 물을 주되, 만지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고 친해지지도 않았다. 우리의 친분관계는 사료가 든 밥통을 흔들면 어디선가 젖소들이 알고 찾아오는 그 찰나의 순간 뿐이었다. 젖소들도 내가 가까이 있으면 경계하고 멀리 있으면 순번대로 밥을 먹었다. 삐쩍 꼴고 서열 순위가 가장 낮은 젖소가 불쌍해 매번 배불리 먹는 일인자 젖소를 '워워~'시키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냥이계의 일은 냥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집으로 총총 사라졌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삐쩍 꼴고 코를 흘릴 것 같던 가장 몸집이 작은 젖소가 보이지 않았다.



근엄하다냥~



쌍둥이 젖소들

쥐가 지나가나? 시선 집중!



일인자 젖소는 먼저 처묵처묵,

밤마다 일회용 용기를 획득하기 위해 폐지 수집 할머니들과 경쟁모드!

(저 디스플러스는 내가 버린게 아닌뎅 -_-;;)



옴마! 어느 날 퇴근이 늦어져 밥이 늦어진 날, 집 앞에서 이런 광경 목도.

아서라~CCTV가 녹화 중이다앙~



따사로운 초여름 제비꽃밭 위에서 냐옹냐옹~



냥이는 어디 있을까요? 배수관 위에서 선샤인


밥을 8개월 쯤 주고서 겨울이 지나자 고양이 카페들을 기웃거리며 중성화 정보를 수집했다. 길냥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동네 주민들의 평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4~5마리를 모두 중성화 시키자니 비용 부담이 상당히 컸다. 그리고 포획 장비를 구해서 고양이를 덫에 잡아 동물병원으로 이동시켜야 했는데 '고양이들 이름도 불러주지 않은' 데문데문한 사이다 보니 그 과정에 자신이 안 섰다. 난 차도 없다규!!

그래서 중성화 정보를 찾실행한 결과, 4마리 중성화된 고양이 표식인 한쪽이 살짝 잘린 귀를 가지고 건강하게 컴백했다. 캣맘 언니들은 정보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초보자는 나름 여기 저기 알아보느라 시간과 마음을 썼으니 정보 공유! 



1. 길냥이를 잘 알고 경험이 많은 캣맘의 경우


동물보호단체 '카라 kara'에서 아름다운 재단 후원으로 '우리 동네에는 중성화 고양이가 산다'라는 중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13년에 시작해 올해 시즌 2 사업을 3월에 시작했다. 마감되기 전에 어여 어여 무료 TNR 사업 궈궈~

직접 TNR장비를 대여해 길냥이를 포획해 동물병원에 이동시키고 돌보는 일을 해야 하고 간략한 보고서를 써야 한다.


신청하기

http://www.ekara.org/board/bbs/board.php?bo_table=community01&wr_id=3477



2. 한국고양이보호협회 회원하고 가실께요~


한국고양이보호협회 정회원이 되면, 즉 월 1만원 이상 납부하는 회원이 되면

여아 3만원, 남아 1만원이면 협력 동물병원을 통해 중성화 수술이 가능하다.


더 알아보기

http://www.catcare.or.kr/index.php?mid=actitnr&document_srl=4501

고양이보호협회에 중성화(TNR) 신청하기

http://www.catcare.or.kr/actitnr


3. 서울시 동물보호과에서 중성화 신청 혹은 시민봉사대로 활동하기


서울시에서도 길냥이 중성화 사업을 진행한다.

http://health.seoul.go.kr/archives/16413

그리고 길냥이의 포획, 중성화, 방사와 모니터링 등을 맡은 시민자원봉사자 사업도 진행했는데

2014년은 1월에 이미 마감되었다. 내년 연초에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찾아보면 좋을 듯!


4. 지자체에 문의하여 직접 신청 -> 강추!


마포구에 살고 있는 나는 마포구 '지역경제과'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면서 일부 중성화 비용은 내가 댈 테니

일부만이라도 지원이 안 되냐고 조심히 여쭤보았다.

우리의 공무원께서는 엄청 나이쓰하시게 서울시 사업이니 비용은 전액 무료고

통덫 설치와 이동, 방사 등을 모두 알아서 해 주신다고 연락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혹시 잡아 죽이는 것은 아닐까, 구청에 맡겨도 될까, 미심쩍어 오실 때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2주가 지나도 연락이 없어 카라에 무료 중성화 신청을 준비하던 차

"고양이 민원 넣으셨죠?"라고 연락이 왔다.

민원은 아니고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밤 11시가 약간 넘어 도착했는데 이 놈들이 마실을 갔는지 안 보이는 거다.

그러나 마법처럼 고양이 사료 통을 흔들자 4마리가 쪼르르, 1분도 안돼서 짠! Hey presto!!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5분 안에 차례대로 4마리를 모두 포획해 고양이를 실은 트럭은 사라졌다.

트럭에 실리는 순간 고양이의 눈을 보았더니 이놈들 완전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다.

고양이가 출산할 때 앞발을 꼬옥 잡아주던 하루키처럼 앞발을 잡으면 식은 땀이 배어나올 거 같았다. ㅠ.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연락처를 이미 받아서 3일 후 쯤 같은 자리에 방사할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있었다.


드디어 3일 후

방사한다고 연락이 와서 미안한 마음에 정확한 시간은 안 알려주셔도 된다고,

우리 젖소들을 알아서 찾아보고 영양 특식을 주려 했는데

방사 시간, 도착 일 분 전, 고양이 별일 없다 등의 '고객 감동 서비스' 문자가 연속 도착했다.

도착 일 분전 문자를 받고 파자마 채로 밤 12시, 집 앞에 나갔더니 때마침 도착하셔서 통덫 문을 열고 계셨다.

살다 살다 마포 구립 서강도서관 이용할 때 제외하고 마포구청이 이로코롬 사랑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니께.

내가 한 것은 그저 전화 한 통과 문자 몇 번!

포획부터 중성화, 방사까지 모두 원스톱 서비스였다.

덫에서 나온 고양이들은 잽싸게~지하 주차장으로 다이빙하듯 뛰어 내려갔다.

아아,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조용필님 빙의)

그리하여 봄날을 맞은 이 놈들은 봄볕을 맞으며 냥이계의 삶을 온전히 살고 있었드랬다. 




수술 후 돌아와 밥을 먹으려 준비 중인 일인자 냥이,
귀가 짝짝이다냥~

뭐 그래도, 건강하게 잘 늙어서 우리 흔적없이 사라지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