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very day

[노래] 센티멘탈 시너리,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4. 20.





'센티멘탈 시너리'의 음악을 들었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며 따끈따끈한 커피를 한 잔 내리면서.

잔잔한 바람이 불고 갈대가 흔들리는 나지막한 언덕에서 쓸쓸해도, 좋은 걸쯤의 

센티멘탈이 솟아나는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음악을 들으며 아일랜드 여행을 하다가는 서정적인 책 한 권은 낼름 써 버릴 것 싶었다.

어떤 평론가의 말처럼 이번 앨범은 그루브를 덜어낸 자리에 

에피톤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갖춘 감성이 오롯이 들어차 있었다.    


타이틀 곡 서약 2번 연이어 듣다가 가만 동작을 멈췄다.

커피를 쪼르륵 내리다 쪼르륵 소리를 그만 두고 가사를 들었다.


"내 길고 긴 하루의 끝에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


 그대가 있고, 또 그대가 있길

내 귀는 그렇게 들었는데, 가사는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이었다.

어쨌거나, 뜻은 같았다.

내 입장에서 그대가 있길, 그리고 네 입장에서 그대가 있길 원한다는 말이니까.

멜로디도 그랬지만 말소리가 참말로 아름다웠다. 

 

중국어나 일본어, 심지어 영어로 써진 책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책이 두 배 정도 두꺼워진다.

책 편집과 디자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말은 표음문자라 표의문자보다 말이 길어진다.

그 덕에 컴퓨터 자판치고 채팅방에 다다다~ 실시간 대화하기는 쉽지만

번역 책 페이지수는 늘어나는 법.


그런데 이 노랫말을 들으며, 영어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생각했더니 (중국어랑 일어는 못 하니까 -_-)

이렇게 간결하고 간절하며 간지나는 문장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이라는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짧고 응축적으로 전한담.

영어로는 문장 두 개가 들어있는 종속절을 대동하는 주절의 주어와 술어가 필요하다.

막시밀리안 헤커노래 중에 I’ll Be A Virgin, I’ll Be a Mountain’가 있는데

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뜻을 두 문장으로 길게 풀어 쓴 이유는

 서정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말은 이승환의 노래 제목 그대가 그대를처럼 

간결할수록 더 애절하고 서정적이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도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


화분 분갈이 하다 선인장 가시에 여기저기 찔렸다.

이 놈의 선인장에 한두 번 찔린 것이 아니라 제발 얼어 죽어라, 라는 

잔인한 마음으로 겨울철 베란다에 두었는데 기어이 살아남아 버렸다.

눈에 보이는 가시는 혼자서 잘 제거했는데

시간이 지나 콕콕 쑤셔서 봤더니 가시가 남아있었다.

잘 보이지도 않고 손도 거의 안 닿는 자리, 바로 발바닥 바깥쪽 언저리에.

요가 수행하는 자세로 등을 바짝 구부려도 보고

다리를 바깥쪽으로 꺾어 올려도 보았지만 

가시를 빼낼 만큼 충분히 버틸 수 없었다.


된장 맞을.

 

그때 룸메가 집에 들어왔다.

오자마자 바늘을 들고 달라 들었다.

그리고 선인장 가시는 룸메의 손에 쉽게 빠져 나왔다.





 

타인이 선을 넘어 내 몸에 손대는 은밀한 사건에는 섹스, 안마, 귓밥 파기, 병원 치료가 있다.

섹스와 귓밥 파기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안마는 바디 프렌즈에 맡기면 되지만 (기계는 비싸지만!)

애매한 곳에 박힌 가시는 도대체 누가 제거해줄까.

내 손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발바닥에 박힌 쪼매 난 가시 하나에 병원 가기도 거시기하고

대략 아는 사람에게 발바닥을 들이밀기도 민망하고.

가시를 빼는 동안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이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4 18, 세월호 1주기 범국민 규탄 대회에 참가했다.

시청부터 광화문까지 20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낮 3시부터 밤 11시까지 8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경찰차 차벽에 막히고 근처를 돌고 돌아 다시 차벽에 막히고,

캡사이신을 얼굴에 맞고 (내가 매운 맛 컵라면이냐?),

물대포가 사람들을 향해 호수광장 분수처럼 치솟으며 쏟아지는 광경을 보며.





 

차벽에 분리되어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길 기다리며 

하릴없이 광화문 광장을 서성이는 동안,

실은 집에 오고 싶었다.

직장인에게는 끔찍하게 아까운 토요일 밤이었고

배가 고팠고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집에는 네가 있었다.

4 16일 밤처럼 막차 놓칠까 동동거리다가 

결국 헌화하지 못한 흰 국화꽃을 손에 들고 집에 가지 않을까

나는 무서웠다.   


차벽 너머에서 유가족과 차벽을 넘어간 일부 사람들이 함성소리를 내보냈다.

우리는 함성을 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지만,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 그렇게 버텼다. 

 

2008년 광우병 시위 이후 처음으로 경찰 차벽이 뚫렸다.

광화문 차벽 안에 고립되어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과 일부 시민들이 

차벽을 뚫고 걸어나와 기다리고 있던 5,000명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경찰 차벽 위에서 들리지도 않는 마이크로 정리 집회를 하는 동안 

마음이 한참이나 뜨거웠다.

이 순간 그대가 있고, 또 그대가 있는풍경이었다.





, 역시 우리말 가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대가 있고 또 내가 있길혹은 그대가 있고 그대가 있길’.    

오늘의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서글픈지. 





댓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