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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을 공개하니, 세계가 보이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4. 2. 23.

1994년에 나온 <우리집을 공개합니다>를 펼쳤다.

'응답하라 1994'가 정치색이 쏙 빠진 1994년이라면 <우리집을 공개합니>'응답하라 이 세계여' 쯤 되겠다.

'하나의 지구, 서른 가족, 그리고 1787개의 소유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Material World - A Global Family Portait)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때만 해도 글보다 사진이 많은 이 책을 화보집 넘기듯, 잡지책 넘기듯 부담없이 읽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통속적인 표현대로 천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드라마 보는 것만큼 책에 빠져들고 말았다. 세계인이 보아야 하는 교양 화보집이랄까. 취향을 드러내교양 말고 시민적 상식을 세우는 교양 :)





유엔 183개국 중 부유한 순위 180위의 에티오피아 가족의 '공개합니다'를 보면 이들은 소유물은 모두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 자산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소와 닭, 말은 심지어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다. 소 우리와 들판에서 모아온 쇠똥을 짚과 섞어 흙집을 세우고, 둥글넓적하게 빚어 말려 연료로 사용한다. 쇠똥 연료로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끓여 마신다. 커피라는 이름은 에티오피아 남서부에 있는 '카파'라는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쇠똥을 채집해 머리에 이고지고 돌아오는 소녀의 사진 옆에 쓰여있다.  



1994년의 베트남에서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유교적 풍경'이 펼쳐진다. 주당 노동시간은 119시간인데, 가족 소득 중 식비의 비중이 55%에 달한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현실이 통계적 숫자 안에 꿈틀댄다. 쓰레기 처리 방법은 '없음'인데 아무 것도 버리기 않기 때문이다. 쇠똥도, 음식물 쓰레기도 버릴 것이 없고 일회용품 따위는 없다. 미래에 갖고 싶은 물품으로 텔레비전과 오토바이를 말하다가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꿈일 뿐이지요"라고 체념하는데, 20년 뒤  2014년의 베트남의 도로는 오토바이가 내뿜는 향연으로 가득차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1994년의 중국도 베트남과 비슷하다. 사람과 돼지의 배설물을 모아 밭의 비료로 쓰고 물고기 양식장 사이에서 채집한 옥잠화를 썰어서 돼지 사료로 쓴다. 물 위의, 땅 위의 모든 것은 서로를 먹이고 먹히 존재의 일부분이 된다. 자원이 낭비되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가 되는 삶은 없다.   



그에 비해 석유로 만들어진 쿠웨이트 가족의 삶은 한 공터를 빌려 늘어놓아야 했다. 뒤 쪽의 안테나 달린 집이 이 가족의 주거지인데 그 집에 들어있던 물건에는 벤츠를 비롯해 4대의 자동차, 은제 티세트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교수로 재직 중인 집 주인의 자식들도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쿠웨이트의 외국인 학교에 다닌다. 자원은 넘쳐나지만 쓰레기와 불평등도 넘쳐난다. 쿠웨이트의 가정은 보통 이웃 국가들에게 건너온 가정부를 2인 이상 두고 사는데 그들은 '부엌데기'의 삶을 산다. 가족들이 미래에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소유물이다. 오직 보이시한 막내 딸만 종교는 이슬람이지만 여성들에게 좀 더 평등한 세계를 원한다고 말한다.



남아공 가족의 모습이다.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백인거주지역에서 일하고 흑인거주지역인 집까지 돌아오는데 날마다 왕복 4시간이 걸리지만, 가족들은 동네 사진관 벽에 가족사진 걸어놔도 좋을만큼 화목해보인다. 하지만 사진 아래 '저녁 8시면 집에 들어가 숨도 쉴 수 없을만큼 실내가 더워져도 꼭 닫은 문을 못 열고 밖에 있는 변소도 못 가 볼일을 요강에서 본다'는 설명을 읽는다. 불평등은 사회를 폭력적으로 만들고 그 댓가는 개개인 저녁의 삶을 박탈당한 채 요강 치른다.



스페인어를 하는 경찰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마야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순찰대를 조직해 가족의 삶을 지킨다. 사진 속 인물인 카우보이 모자를 쓴 젊은 아버지가 미래에 바라는 것은 그저 "살아 있는 것"이다. 2014년, 사진 속 그에게 물었다. '오겡끼데스까'



외과의사로 은퇴한 그는 어느 한 순간도 전기도, 수도도, 상하수도 없는 삶을 살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내전이 터진  보스니아에서는 길을 건너며 총탄을 맞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밤에는 촛불을 켜고 주어온 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해 먹는다. 전쟁이 나면 개인의 삶은 지워진다. 촛불 옆에 아롱거리는 은퇴한 외과의사의 표정이 살아있되 살아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1994년의 이라크는 미군의 폭격으로 한번에 9명의 자녀를 잃은 여성이 400명의 사망자를 기리는 장소의 관리인이 되는 곳이다. 에라스무스는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 전쟁은 달콤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보스니아, 과테말라, 이라크 가족들의 사진들을 보며 이 말을 몸으로 겪은 듯했다.


2014년 지금 우리 집을 공개한다면 가난한 '쿠웨이트적' 삶의 풍경이 찍힐 것이다. 많은 물건들을 늘어놓고 미래에 바라는 것은 더 많이 원하는 물건들로 가득찬.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지만 삶의 켜켜이 석유로 가득찬 삶. 개인 삶의 기반이 되는 전쟁과 불평등과 소유로 점철된 사회적 압력들의 자장. 그럼에도 꿈꾼다. '에티오피아 궁핍'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필요한 물건적절하게 배치된 삶, 이웃과 더불어 화로운 삶,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 '개인 비행기'가 소유물 목록에 들어있던 아이슬란드 가족은 소득 중 56%를 세금으로 냈다. 만약 세금이 그런 삶을 위해 쓰인다면 그 정도 세금도 나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제주 강정과 4대강 공사에 들어간 세금이 생각나 마음만 씁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