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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방을 빌려드립니다, 카우치 서핑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7. 30.

공유 경제가 뜨는 이 시절에 집에 남는 방이 있는 호사를 누리는 것이 어디메냐.

그 돈으로는 방 2개 밖에 찾을 수 없다는 복덕방에 맞서,

방 크기는 몸만 디비 누우면 되니 10평만 되도 반드시 방은 3개여야 한다고 고집부려

방 3개 짜리, 방이 하나 남아도는 집을 마련했다.

어거지로 마련해 헐렁헐렁 비워놓은 그 방을 위해 그 동안 눈팅만 해 오던 '카우치서핑'을 시도했다.

'카우치 서핑'은 여유가 있는 방이나 공간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또 나도 어딘가를 여행할 때 머무를 곳을 공짜로 제공받는 온라인 사이트이다.

우리 집에 누군가 누울 수 있는 '카우치 = 쇼파'만 있어도 서퍼를 받아서 '주인 역할'(호스팅)을 할 수 있다.



<카우치서핑 사이트의 https://www.couchsurfing.org 의 첫 화면>


우리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호스팅 가능'을 올린 후 5번 정도 카우치 서퍼(게스트)들의 메세지를 받았는데

그 때마다 부모님이 올라오신다던지, 내가 1박 2일 지방에 간다던지, 게스트가 내년 설날에 온다고 해서

요청을 번번히 거절했었다. 

요청을 거절하는 (declined) 메세지를 몇 번 보냈더니

정작 카우치 서퍼를 들일 수 있는데도 아무도 우리 집에 머무르겠다는 요청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카우치 서핑할 곳을 찾는다는 사람들을 내가 직접 '서핑'하고 나섰다.

참말로 용감도 하시지.

길을 걷다가 별로 친하지 않는 '아는' 사람을 보면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성격인데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서, 것도 영어로 블라블라 이야기를 나누려고 환장을 하다니. ㅎㅎ

성격도 그닥 프렌들리 하지 않은데 영어도 '후렌들리' 하지 않으니

이건 뭐, 개콘의 (...)에서 째각째각 시계 소리만 돌아가는 시츄에이션 되겠다.

(째각째각..을 예방하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했다. 환대 서포트를 해 준 복코, 씨앗, 주발녀 알라븅~

복코는 휘바휘바 흉내를 내서 이들을 빵 터지게 했고

씨앗은 지금 편집 중인 핀란드 관련 책 내용으로 핀란드인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주발이는 영어로 논문 쓴 녀자답게 유창한 영어로 영어 쏼라쏼라~ 관광 가이드를 해 주었다.

나는 참 인복도 타고 났지 ㅋㅋ)


그렇게 만난 핀란드의 커플! 한나와 이즈모.:)

총 4박 5일 동안 서울에 머무는데 그 중 2박 3일 간 첫 카우치 서퍼로 우리 집에 방문했다.

헬싱키에 사는 35살의 부부는 상테페트로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거쳐 시베리아 대륙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집에 돌아갈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여행을 기차와 배로만 움직이는 것!

헬싱키 집의 첫 카우치 서퍼도 한국인 남자였는데 그는 정확히 반대 경로를 타고 러시아를 통해 헬싱키에 온 사람이었단다.

시베리아 대륙열차에서 아이폰을 도난당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심카드가 없는 아이폰을 하나 구입하고

거기서 배를 타고 동해에 잠입했다. 무슨 북한 스파이들처럼 말이다!

동해에서 안동으로, 안동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제주로 갔다가 드디어 제주도에서 전라도로 이동한 다음

KTX를 타고 서울에서 나와 접선하였다.


우리 집에는 에어컨과 매트리스가 없었지만 6개월의 아시아 여행을 마음 먹고 온 인간들답게

그들은 캠핑용 에어 매트리스와 짱 강력한 체력, 더위를 좋아하는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다행인 것은 어찌나 말이 많던지, 뭐 하나면 물어보면 시계의 초침 소리가 안 들리게

셀프로 술술술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건 칭찬인데 영, 비난조로 들리네잉 -_-;;)


핀란드도 군대 의무병 제도라서 6개월~1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지만

대체 복무제가 잘 되어 있어 건강한 사람이라도 군대를 원치 않으면 대신 공공 일자리에서 근무를 할 수 있다.

누구나 대체 복무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혜 시비도 없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차별없이, 예외없이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에서 핀란드 하면 '핀란드 교육, 핀란드 디자인, 그리고 휘바휘바'라고 알려주었다.

핀란드에서 자기 전에 자일리톨 껌을 씹느냐?

핀란드 사람들이 껌을 잘 씹기는 하지만 자기 전에 꼭 껌을 씹지도 않고, 껌을 씹으면 입이라도 헹구고 잔단다. ㅋㅋ

이딸라 접시나 마리메꼬 패브릭은 핀란드에서도 비싼 편이라 핀란드 사람들도 우리처럼(?) 이케야를 쓰고,

역사적으로 스웨덴과 러시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가까스로 독립했지만

일본과 우리와는 달리 스웨덴과 러시아와 악감정은 별로 없는 편이다.

스웨덴과 러시아의 일부일 때는 지금의 핀란드 지역은 변방으로 여겨져

귀족이나 왕의 멋진 건축물이 없고 그래서 핀란드 문화는 전반적으로 평등하고 서민적이다.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핀란드 교육제도와 사회복지제도는 그들 역시도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아! 그리고 영화 '카모메 식당'은 이미 핀란드에서 영화 덕에 유명해졌다고. ㅋㅋ

원래 핀란드 음식을 파는 그 식당은 지금 일본인과 아시아인들의 명소가 되어버렸다는 전언. ㅎㅎ


핀란드 부부는 우리 집을 떠나 서울에서의 나머지 2박 3일을 녹사평 근처에 위치한 독일인 집에서 보낸다.

이 독일인도 카우치 서핑을 통해 만난 사람이다.

경험해보니 호스트는 직장인이라 직장일과 생활을 해야 하는데 서퍼들은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여행자라서

호스팅을 오래 하는 것은 꽤 무리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길과 정보 등을 (내가 잘 몰라도) 찾아서라도 대령해줘야 하고

여행지에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놀고 잡아하는 여행자의 욕망에 어느 정도 편승해야 하니

방콕이든, 도쿄든, 그라나다든, 그저 카페에서 책이나 읽고 자빠져 있는 내 취향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고나 할까.

카우치 서핑의 경험이 많은 '이태원의 독일인'을 보니 메일로 주소와 찾아오는 길을 알려주고는 근처로 데리러 나오지 않았다.

흠, 카우치 서핑을 진득하게 하려면 호스트의 마음보다는

'공간을 줄테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의 마음 자세도 좀 필요하겠다.


한나와 이즈모와 한강 길을 걷다가 도로에서 느적느적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화단으로 옮겨준 적이 있다.

지렁이가 상당히 크길래 나는 지갑으로 그 놈을 밀어서 옮겨더랬는데, 

한나가 보더니 손으로 번쩍 집어들어서 한 번에 화단으로 옮겼다.

창덕궁도, 인사동도, 한강도 함께 갔지만

웬지 그들을 생각하면 이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지렁이가 징그러운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 도로에 있으면 깔릴 수 있으니 어딘가 땅으로 옮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알고 있었다.


한나와 이즈모는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과 대만을 함께 여행하다가

이즈모는 헬싱키의 직장으로 복귀하고 한나만 나머지 4개월 간 동남아 여행을 한다.

보통 핀란드의 여름 휴가는 4~5주일 지속되는데

이들 부부는 이번 기회에 특별한 휴가를 얻어 오랫동안 천천히 여행하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한다.

져도 상관없다. 부럽기 그지 없다.


한나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



제주도 한라산 사진

둘만 민간인, 다른 분들은 프로페셔널 산악인 포스 ㅋㅋ

불광역에서 비스무리한 등산객들이 전철에 타자 그들이 나에게 물었다.

여기는 산에 가는 90%가 다 '프로페셔널 하이커'냐?

그래서 말했지. 망원시장 가서도 작대기만 없지, 저 잠바랑 등산화 신은 사람을 볼 수 있단다.

우리나라 중년의 유니폼이며, 산이든 어디든 저렇게 프로페셔널이신께 그럴 줄 알아라~ 말했다.



부산 야경

부산에서도 이들은 한국인의 집에서 카우치 서핑으로 묵었다.


유경제가 뜨면서 남는 공간을 민박으로 게스트하우스로 내놓는 '카우치 서핑'류의 국내 사이트도 많아졌다.

그런데 카우치 서핑과 다른 점은 이 두 사이트는 숙박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점!

목 디스크 예방하고자 마르쉘 모스의 '증여론'을 노트북 아래에 깔아놓는 나로서는

조개껍질 목걸이가 트리브리안도 섬을 돌면서 공동체의 교류와 연대를 다지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 여행갈께! 그 때 누구라도 공간을 부탁해'를 매개로 만나는 카우치 서핑의 호혜 경제가 더 끌린다.


에어비앤비

https://www.airbnb.co.kr/



코자자
www.kozaz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