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it book

가난한 주거노래 말고, 스몰하우스 밀당!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2. 18.


책을 읽으며 마구 흥분해서 혼자서 찧고 까불다가 책 제목도 모르는 친구에게 교조적으로 책을 들입다 들이댄 적이 있는지.

좋아하는 작가의 야오이 만화를 읽으며 혼자서 좋아 죽은 적은 많지만 (아아, 야마다 유기님하!) 책을 읽으며 그런 적은 드물다. 책 읽기를 즐기지만 마구 신이 나서 마음이 떨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BL 만화도 아닌 '작은 집을 권하다'를 읽으며, 마음이 떨렸다. 이런 집을 직접 지어서 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못한, 그리고 향후에도 마련하지 못할 '88만원 세대'를 대안생활의 본거지에 입성시키자! 두둥!! 서울시의 공영 주차장 부지에 스몰하우스 모델하우스를 지어서 무단점거하자! 두둥!! 경의선 폐선 부지를 청년들의 '스몰하우스 타운'으로 만들자!! 두둥!!  혼자서 공유지 무단점거와 스몰하우스 타운을 꿈꾸며 잠시 설레었다.

 

'스몰하우스'는 말 그대로 작은 집을 뜻한다. 평수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50제곱미터(약 15평) 이하의 집이 여기 속하며, 책에서 소개하는 집들은 2.5평에서 4평 사이의 집이다. 땅값 비싼 서울에 흔해 빠진 오피스텔이나 빌라 원룸, 고시원 방도 다 '스몰'한데 스몰하우스가 뭐가 대수라고, 널린 게 스몰하우스인데. 나라고 모르겠는가. 방 한가운데 장판을 뚫고 나온 바위를 아랫목에 청국장 뜨듯 모셔둔 반지하방과 침대에 누워서 손만 뻗으면 싱크대 안의 그룻도 설겆이 할 수 있는 원룸의 크기를. 가난하다고 타워팰리스를 모르겠는가. (거기 지하 슈퍼마켓에서 샤본다마 파는지도 안다규 ㅎㅎ)


'스몰하우스'는 '가난한 주거노래'가 아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하는 시츄에이션과는 거리가 멀다. 이 모든 것을 버리긴 하지만, 가난해서가 아니라 내게 의미도 없는 이 모든 것들을 뒤치닥거리 하니라 인생 꼬일까봐 내다 버린거다. 왜 타워 팰리스처럼 환기도 잘 안되는 곳이 그렇게 비싼지 아헿헿하고, 60평 짜리 아파트가 공짜로 들어와도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집이다. 컨테이너 박스나 미국에서 간이 하우스로 사용하는 트레일러와도 다르다. '스몰하우스'는 크기의 개념을 넘어 어떤 삶을 살지, 내가 누구인지를 살림으로 웅변하는 바로미터다.

 

"물건을 소유하기보다는 가급적 손을 비우고 단순한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 집세나 기타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는 주거 공간에서 자유롭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 큰 집을 지어 환경에 부담 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 새로운 생활의 계기를 갖고 싶은 사람, 큰 집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일에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 조용히 책을 읽고 사색할 공간을 갖고 싶은 사람, 그냥 작고 소박한 생활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 지구가 우선 순위인 삶의 방식을 물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만들어낸 집이다. 언젠가는 좋은 집으로 옮겨갈 청운의 꿈마저도 사치인 청춘들이 토끼몰이처럼 고시원에 내팽개쳐지는 것과는 다르다. '스몰하우스'는 언젠가는 옮겨가고 싶은 좋은 집 자체이며, 평생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다. 합정역에 콧대 높게 세워져 어디서든지 한강의 조망권을 살라먹는 메세나폴리스에 입주하면, 서해안의 요트 이용권이 주어지고 관리비는 월 400만원 쯤 나오기도 한단다. 관리비 400만원을 마련하려고 한 평생 노동에 쩔거나 부당한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집이다.




우리 집에는 몇 개의 물건이 있을까.

폭스바겐 광고지를 보니 우리는 살면서 평균적으로 10,000개의 물건을 소유한다고 한다. 만 개라니, 그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숫자다. 몇 번 사용하다가 고릿적 나는 장농에 처박을 물건을 차곡차곡 쟁이니라 한 평에 약 2,000만원 정도를 내다니, 참말로 값비싼 창고다. (우리 집 집값을 땅 평수로 나누어 계산한 어림값) 미국 월마트와 타겟은 올해 블랙프라이데이에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는데, 그 물건들을 쌓아두니라 우리는 얼마씩을 더 내야할까. 식상하지만, 그래서 과연 행복하냐고.


미국의 경우 주택 평균 면적은 2009년 기준 167제곱미터다. 신축주택의 평균 면적은 2009년 기준 223제곱미터다. (American Housing Survey 2009) 미국에서 착공되는 주택의 평균 면적은 1950년에 약 100제곱미터에서 시작해 꾸준히 팽창해왔는데, 20082/4분기에는 244제곱미터였던 것이 20084/4분기(리먼 브라더스 사태)에는 218제곱미터로 다시 축소되기도 했다. 일본의 평균 면적은 종전 후 몇 년간 50제곱미터 정도였지만, 그 후 갈수록 커져서 2008년에는 129제곱미터에 이르렀다. 이는 유럽 선진국들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큰 수치다. (11쪽~20쪽)


책은 폭 2.5 미터, 길이 4 미터 정도 되는 '스몰하우스'에 사는 주인장들을 만난다. '스몰하우스'의 창시자 격인 셰퍼는 자신의 집이 미국에서 집으로 규정하는 최소 면적에 못 미쳐 승인을 받지 못하자 쿨하게 집에 바퀴를 달았다. 집이 아니므로 주택세도 안 낸다. 소로우가 오두막에 칩거하며 시민 불복종을 실천했듯, 스몰하우스를 자동차에 연결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집은 집이로되 주택은 아니다'를 보여주고 있다. 꼭 필요한 물건만 갖추고 살기에 집이 무겁지 않고 태양광 발전과 빗물저장장치를 사용하고 화장실은 실내에 있지만 퇴비를 만드는 생태화장실이다. '스몰하우스' 주인장 중 한 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라서 집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모두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한다. 난방과 요리는 화덕난로나 LPG통에 연결된 가스 스토브를 통해서 가능하다. 물론 수도와 전기 등은 원하면 연결할 수 있고 수세식 화장실도 옵션으로 설치할 수 있다.





필요치 않은 물건을 배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이 그 어떤 물건보다도 우위의 입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55)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건 우주만큼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을 갖고 관리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다. (63)




완벽한 디자인이라는 건 그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뭔가가 없을 때 비로소 달성되는 법입니다. (29)



침실의 천창을 통해 밤에 별을 보면서 잠에 든다고 한다. (별 헤는 밤...)

대충 '때우려고' 만든 집들이 아니라 단열과 창호, 미관에 공을 들여 만든 집들이다.


 

환경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사는 것이 그 어떤 방법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게 합니다. (82)


2014년에 영광 생명평화마을에 커뮤니티 센터를 세울 '십년후 연구소' 선생님들과 함께 꼬막을 까먹으며 물었다. 그래서 땅 값은 논외로 치고 (막 기냥 주차장 땅 점거 들어갈거라니까 ㅋㅋ) 패시브 하우스로 제대로 만들자면, 얼마면 되겠어요? 선생님들 지도 아래 친구들끼리 지을거니까 인건비도 빼고요. 

대략 500만원이면 짓는단다.

88만원 세대로 대학 학자금이 남아있는, 여성환경연대 상근자 복코가 '올레'라고 외쳤다. (오백은 있나부지?) 바로 내년에 문간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이 재개발 들어가서 롸잇나우 '스몰하우스'가 필요하단다. 팡세는 인간이 불행한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도시에 자리잡은 88만원 세대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적은 돈을 벌면서도 집 걱정 없이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를 수 있도록 '스몰하우스'가 모델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