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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살다가 급기야는 맨땅에 펀딩!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0. 14.

환경운동을 한답시고 나불대고 있지만 자급을 위해 귀농하지는 못하고 산다. 여성환경연대서 일하는 동안 일 년에 한 명씩 약 5명이 귀농해서 사무처장은 '귀농 트라우마'까지 생겼고, 지금 일하는 몇몇 활동가들의 장래 희망도 역시 귀농, 귀촌에 있다. 생태운동과 자급적 관점의 궁극적 로망은 결국 농촌에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뼛 속까지 박힌 된장녀 기질과 약골 기질로 귀농이 무섭다. 아름다운 산천과 텃밭을 넘어서 어느 개울가 다리 밑에서는 개를 때려 잡고 서로를 북돋아주는 공동체 감정 너머로 우리 집 수저 갯수까지 입방아의 메뉴가 되는 곳에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 나는 동네에 꼭 카페도 있어야 하고. 어디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는 마음으로 서울살이를 나름 즐겁게 하고 있지만, 어딘가 2% 정도는 부족하다는 마음도 있다. 밀양 송전탑 공사 현장만 봐도 그렇다. 도시에 산다는 자체가 농촌을 얼마나 착취하고 억압하는가. 사죄하는 마음과 약간의 부러움을 담아 귀농, 귀촌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 그 중 단연 권산 작가의 책이 으뜸이다. 잘 삭은 전라도 삼합만큼 톡 쏘는 매력적인 글빨이 도시 사람의 감수성과 시골살이에 잘 버무려져 있다. 나는 그의 전작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과 이번에 읽은 <<맨땅에 펀드>>를 읽으며 웃고 울었다. 그리고 마음은 늘 짠했다.




땅, 농부, 이야기에 투자하는 발칙한 펀드



수석 펀드매니저 대평댁의 보무도 당당한 발걸음과 어록

"호랭이 똥구녕을 씹어불란게"

(내 고향이 구례라 '호랭이 물어갈"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호랭이 똥구녕까지 심화된 버전은 실로 처음이다.)


권산은 식탐에 빠진 부산 출신 중년 남자로서 '하방투쟁'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전라남도 구례에 내려왔다. '온실에서만 자란 연약한 도시 중년'답게 포도시~ 농사는 자기 집 먹을 텃밭만 짓고 주로 도시에서 들어오는 웹 디자인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지리산닷컴'도 그가 만들고 운영하는 사이트다. 그런 시골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을 썼다. 





유기농이나 친환경 농법을 농산물을 사는 소비자나 유기농 감정 기관이 아니라 농촌에서 본다면 어떨까. 책에서 만리장성보다 더 길게 늘어선 도시 거주민을 먹이려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 귀농해서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농사짓고자 하는 사람들, '농촌의 마을과 사람들을 그저 풍경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석유화학농법을 거부하면서도 정작 석유로 움직이는 트랙터와 포크래인으로 밭을 갈고 수로를 만드면서 유기농에 대해 질문한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 유기농이라 규정할 수 없다. 원론적으로 유기농이란, 토양에 살고 있는 가장 작은 생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태계 전체가 너도 나도 모두 건강해지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농사를 진행해야 진정한 유기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농사의 일부로 볼 수 있는 이런 수로 작업은 포클레인으로 진행하고 밭을 가는 작업은 트랙터로 진행한다.(42쪽)" 비닐멀칭은 또 어떤가. 도시에서 유기농을 사 먹는 소비자나 환경운동을 하는 입장에서는 석유화학성분으로 만들어져 썩지도 않는 검정 비니루가 땅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런데 이런 판단은 아지랑이 피는 퇴약볕 아래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풀을 뽑다가 울고 싶은 기분이 된 사람들이 내려야 하지 않을까. 왜 유기농이고 친환경농법이고 모든 판단은 소비자와 감정기관이 내리는 것일까. 농약을 약간 치더라도 땅을 갈아엎지 않는 무경운 농법으로 작물을 키운다면 충분히 '유기농'적이다. 무경운 농법으로 경작하면서 풀을 뿌리채 갈아엎지 않고 놔두면 풀뿌리가 땅속 깊이 들어가 땅이 깊게 호흡하게 되고 미생물과 박테리아도 서식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맨땅의 펀드가 나왔다. 소비자나 감정기관이 말하는 유기농 말고 농촌에서 알아서 만드는 유기농. '맨땅의 펀딩'은 농촌에 사는 당신들의 판단으로,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당신들 마음대로 농사를 지어보라고 지지해주는 증표이다. 신뢰와 배려로 무장한 '묻지마 투자'의 투자자들은 연초에 한 구좌당 30만원 씩 입금하고 수익률이나 배당금은 알아서 주는 농산물로 받는다. "흘 수 없제, 하늘 흐잔대로 흐야제 벨 수 있단가"라는 농사의 원리의 따라 투자는 전대미문, 하늘에 맡겨지는 거다.  그러나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음에도 농사는 왜 이렇게 힘들단 말이냐. '맨땅의 펀드' 일꾼들이 "이게요. 제가 뭘 잘못해서 벌 받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다가 눈물이 찔끔 났다. 게다가 펀드 매니저 '엄니'들은 맨땅의 펀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신 채, 공공일자리에 풀 뽑으러 나온 것맨치로 자신들의 농사 수완은 접어두고 하라는 일만 하신다. '엄니'들은 농약 한 번 정도는 "암시랑토 안혀"라고 여기고 작물들이 짠혀서’ 농약을 주고 주사기를 처방하시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그럼에도 이 좌충우돌 속에서 확인하는 진실은 "책으서 산수허고, 사는 산수허고는 원래 달른 것이여"라는 진심이다. 맨땅의 펀드 매니저들의 진심, 기획자들의 진심, 투자자들의 진심, 농부들의 진심. 그래서 농촌의 현실은 슬픈데도 책은 따뜻했다.




순영이 형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꼭 수확을 하라는 말씀이었다. 당신은 절대 농작물을 갈아엎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그 농부의 정신이었다.


<<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에서 권산은 구례에서 농사지은 우리 밀을 직거래로 유통시키며 이렇게 썼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언제나 ‘구체성’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이름난 싸움판에서의 승리 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밀가루 장사를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나? 그렇다. 나는 십만 개의 이름 없는 작은 싸움판 중 하나에서 나름대로 전투를 주도했다.(192쪽)" 이름 없는 작은 싸움판은 '맨땅의 펀드'로 다시 거듭났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구례에서도, 남원에서도, 밀양에서도, 보은에서도 맨땅의 펀드가 계속되기를. 귀농은 못 해도 맨땅의 펀드의 진심은 나를 농촌에 대한 로망으로 달뜨게 한다. 



우리는 즐거울 권리가 있다. 비록 낡은 양복에 머리털은 점점 줄어가고 핸드폰 문자도 팔을 멀리 뻗어야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 전체에 굳은살이 박인 것은 아니다. 살아봐서 알겠지만 상처는 반복될수록 익숙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즐거울 필요가 있다. (49쪽)                                                         

맨땅의 펀드 출사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