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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9. 18.



위화가 이렇게 젊은 작가인 줄 미처 몰랐었다.

그가 <허삼관 매혈기>에서 세상사 불평등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 

"좆털은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라고 눙을 쳤을 때

위화가 지금쯤 한 팔십은 먹은 할아버지일거라고 막연히, 그러나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의 소설의 밑감이 되는 소재는 할아버지가 무릎에 손자손녀를 앉히고 들려주는 구전 같았고

슬픈데도 해학적이고 충청도 사투리처럼 능청스런 표현도 그랬다. 

그저 말빨 좋은 젊은 작가가 내뽑을 수 없는 내공이 그의 소설과 문장 속에 박혀 있었다.


열 개의 키워드로 문화 대혁명기와 천안문 사태와 지금의 중국을 묘사하는 이 책도 그렇다.

구전같은 속세의 이야기와 세밀한 자기 어릴 적 이야기와 신문의 사회면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 코로 꿰어

중국의 면면을 이렇게 깊고 따뜻하고 슬프게 바라보는 작가가 또 누가 있을까 싶다.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6월 4일을 '호부호형' 겪으로 부르는 5월 35일,

짝퉁과 속임수가 하나의 단어가 되어 중국을 뒤덮고 

그 결과 카뮈의 부조리와 보르헤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현실로 펼쳐지는 산채와 홀유 현상,

하나의 극단인 문화대혁명기에서 자본주의의 나쁜 점만 극단으로 밀어부치는 지금의 중국이 

'5월 35일'식의 표현으로 호방하게 펼쳐진다. 


그가 묘사한 중국은 호메로스가 "신은 후대 사람들이 노래할 소재가 부족하지 않도록 불행을 만들었다"거나 

맹자가 말한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라는 거대한 세상사 편람에 그치지 않는다.

그랬다면 이 책이 중국에서 출판을 거부당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세상사 앞에 마주선 호메로스와 맹자의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태도와 더불어

새벽까지 횃불을 들고 천안문을 지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인민이 서로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회적 발언이 등장한다. 

이는 위화가 캐나다 벤쿠버에서 중국의 극심한 불평등에 대해 강연할 때 한 중국 유학생이 

"돈은 행복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닙니다"라고 주장하자, 그에 반박한 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행복의 기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회문제를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학생의 한 해 수입이 인민폐 800위안에 불과한데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학생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학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겠지요." (215쪽 '차이' 중에서)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견습생 생활을 통해 5년간 치과 의사를 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체 게바라, 루쉰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의사 출신인데 위화도 그와 같은 길을 걸었구나, 다 난 놈들'이라는

내 생각도 서양 기자들의 질문처럼 중국의 역사를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서양 기자들이 "왜 돈 많이 버는 치과 의사를 때려치우고 가난한 작가의 길을 택했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중국의 문화 대혁명기를 설명하는 에피소드가 된다.

위화는 치과 의사를 국가에 의해 '배정'받았고 한 번도 치대에 들어간 적이 없으며,

공산주의 국가 중국에서 치과 의사도 모든 노동자와 똑같은 급여의 가난한 월급봉투를 받았다.

치과의사도 몸을 다루는 일개의 기술직이다 보니 보따리 약상자를 어깨에 멘 뒤

마을의 공장과 유치원을 오가면서 노동자들과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아야 했다.

예방주사를 놓던 스무살 무렵의 위화의 일상은 치과의사와 일반의사의 구분이 없던  

중국의 그 때 그 시절 모습을, 그리고 그가 어떻게 깊은 대륙같은 글을 쓰게 되었는지 감 잡게 해 준다.


물자가 워낙 귀해 일회용 주사기를 만두 찌는 방식으로 소독해 며칠이고 수십명에게 주사를 놓다보니

주사 바늘 끝이 구부러져 팔뚝에 바늘을 꽂는 것도 힘들 뿐 아니라, 

주사기를 뺄 때는 작은 살점이 바늘 끝을 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공장에서 주사기에 살점이 따려 나오며 생채기를 낼 때마다 공장 노동자들은 극심을 고통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런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속으로 모든 주삿바늘이 그렇게 끝이 구부러져 있겠거니 생각했다. ...

그러나 다음 날 유치원에 찾아가 세 살에서 여섯 살 사이의 어린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을 때는 

전혀 다른 상황에 펼쳐졌다. ...

나는 아이들의 그런 눈빛을 바라보는 고통이 내가 직접 겪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다. 

고통에 대한 공포가 고통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

그 뒤로 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괴로웠다. 

나는 고통에 울부짖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서야 노동자들의 고통을 의식할 수 있었다.

내가 노동자들와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기 전에 먼저 구부러진 주삿바늘을 내 팔에 찔러보았더라면, 

그리고 바늘에 달려 나온 나의 피와 살점을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

이런 느낌은 내 뼛 속 깊이 새겨졌고, 그 뒤로 내 글쓰기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중국의 고통을 쓰는 동시에 나 자신의 고통을 함께 썼다."

(352~354쪽, 후기 중에서)


유치원에서 예방접종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온 그는 곧장 몸을 씻고 소독을 하지 않았다.

먼저 숫돌을 찾아 모든 주삿바늘의 구부러진 부분을 뽀족하게 갈고 나서야 몸을 씻고 소독을 했다.

오래된 주삿바늘은 아무리 갈아도 두세 번 사용하면 또 다시 구부러졌고 

그 구부러진 바늘을 매일 어두워진 밤에 숫돌에 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장기간 손을 물에 담그고 바늘을 갈다보니 손가락에 하얀 물집이 생겼다."

위대한 작가이자 지식인의 진정성을 이보다 애절하게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읽으며 

일본이 섬이고 중국이 대륙이라는 말이 

무라카미 하루키와 위화를 통해서 고스란히 이해되는 기분이었다. 

난 하루키 책을 좋아라 하지만 그의 글이 섬이라면, 위화의 글은 대륙같은 글이었다. 

대륙적인 면모의 진국이 그 자신의 고향인 중국으로, 그리고 동족인 인간을 향해 범람하는 장강처럼 흘러넘쳤다.